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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주변에서 ‘맹박이’가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70-80%도 아니고 기껏해야 40-50% 정도니 사실 특별난 건 아니지만, 작년 이맘때 10-20% 대에서 쩔쩔 매던 것에 견주어보면 ‘고공 행진’이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돌이켜보면, 왕조 시대의 임금보다도 훨씬 더 큰 권력을 갖고서 수십 개의 칼을 동시에 휘두를 수 있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40-50%에 그치는 것을 ‘고공 행진’이라고 위안하는 작자들이나 그 정도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나 모두 정상은 아닌 것 같지만, 만사가 상대적이다 보니 그런 착시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문제는 철저하게 가진 자들을 위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무려 40-50%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가진 것도 없고 빼앗길 것도 없는 이들의 상당수가 왜 가진 자들의 이익을 철저하게 옹호하는 이명박 정부를 지지할까, 아니 지지하는 것처럼 비칠까?

여론조사의 함정

비밀의 열쇠에 접근하기 전에, 먼저 확인할 게 하나 있다. 이 부분만 확인해도 비밀의 절반은 풀린다. 바로 여론조사가 가진 함정이다. 여론조사가 타당성을 가지려면 응답률이 최소 30%는 돼야 한다는 것이 정석이다. 응답률이 그에 미치지 못할 경우 사람들이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했다 하기 힘들므로 그 결과는 사실상 별 의미가 없어진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웬만한 여론조사는 통상 신뢰도 ±3.5% 따위의 그럴듯한 포장을 쓰고 발표된다.

하지만 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야말로 웃기는 소리다. 여론조사기관 종사자들도 먹고 살아야 하고 그 조사결과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럴듯한 포장이 필요하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는 식으로 서로 눈감아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응답률은 어느 정도일까? 놀라지 마시라. 우리나라 여론조사에서 실제 응답률이 15%가 넘으면 최상급으로 친다. 국제 기준으로는 여론조사 결과로 발표할 수도 없는 수치가 최상급인 것이다.

여론조사 전화를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대강 알 것이다. 먼저, 여론조사 표본으로 추출되었는데 몇 차례 전화를 해도 전화를 안 받는 경우는 어찌할까? 합리적인 방식으로 표본을 재추출할까, 아니면 다른 표본으로 대충 때울까?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버리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처음에는 모처럼 시간을 내어 응답하다가 문항이 맘에 들지 않거나 다른 사정이 있어 중간에 전화를 끊어버릴 때 그 응답은 어떻게 처리될까? 대부분 알바인 조사원들은 유효 응답수로 대가를 지불받는 경우가 태반인데...

물론 조사 항목이 비교적 중립적인 것일 때에는 응답률에 따른 신뢰도가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정치관계 설문, 특히 위정자나 권력기관에 대한 설문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절대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여 끝까지 응답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아니면 설문 자체가 짜증나는 사람들이 많을까? 설문 자체가 짜증나는 사람들 중에는 정권에 대한 지지자가 많을까, 반대자가 많을까?

확실한 것은 응답률을 최대 15%로 가정할 경우 그중 50%의 지지를 받았다면 확실하게 확인된 지지율은 7.5%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실제 응답률이 15%에도 미치지 않는 여론조사에서 그걸 갖고서 신뢰도 ±3.5% 운운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다.

오늘의 한국사회에는 맹박이가 조금만 잘하면, 아니 잘할 것 같은 기색이라도 비치면 언제라도 지지의사를 표명해줄 잠재 지지층이 30%는 있다. 바로 지난 대선 때 맹박이를 찍은 사람들(60% 남짓한 투표율에 50% 가까운 지지율)이다. 이들은 자기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추스르기 위해서라도 맹박이가 조금이라도 잘해주기를 원한다. 대선 지지율이 50%에 육박했으니 집권 후 여론조사에서도 50%는 나오는 것이 정상이고, 그동안 문제 많은 여론조사에서도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가 나왔다는 것은 맹박이가 얼마나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지지율 50%의 함정은 국민이 유일하게 주권자로 대접받는 선거기간, 이번 10.28 재보선 기간에도 여실히 확인되고 있다. 5개 선거구에 20조 이상의 국가예산을 집중투입하겠노라고 설레발을 쳐도, 잘나가던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죽을 쑤던 야당 후보의 지지율은 올라간다. 주인 대접을 받으며 잠시나마 주인 의식이 깨어나는 선거구 주민들에게 가진 자들의 이익만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옹호하는 현 정부의 실체가 까발려지면서, 그간의 여론조사가 얼마나 허구였는지 생생하게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한국의 여론조사 기법이 예전에 비해서는 눈에 띄게 진일보했다 해도, 그 문제점과 한계는 선거 때마다 거듭 확인된 바 있다. 요컨대 맹박이의 실제 지지율은 여론조사 상의 수치보다는 당연히 훨씬 낮다.

핵심 지지층의 결집

수치상의 함정이 의문의 절반은 풀어준다 해도, 나머지 절반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바로 추세의 문제다. 여론조사의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같은 여론조사에서 맹박이의 지지율이 눈에 띄게 올라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실제 지지율이 50%까지는 아니라 해도, 예전에는 10%에도 미치지 못하던 실제 지지율이 두 배 이상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일단 언제든지 맹박이에게 박수를 쳐줄 태세가 돼 있지만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짓만 해대는 바람에 그럴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의 결집 효과가 큰 영향을 미친다. 맹박이의 핵심 지지층인 한 줌도 안 되는 ‘강부자들’과 기독교 왕국을 꿈꾸는 골수 ‘개독인들’, ‘통일신라’의 영광을 천년만년 이어가려는 골수 ‘영남 패권주의자들’은 물론, 전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선전과 술수에 자신의 영혼을 판 ‘무늬만 중산층들’과 순진한 일부 서민들이 맹박이가 내세우는 ‘친서민 중도실용’의 깃발 아래 다시 모이고 있다.

일견 회복되는 듯이 보이는 경제상황이 얼어붙었던 이들의 마음을 조금은 녹여주면서 그래도 내가 뽑은 (경제) 대통령인데 하는 기대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그 숫자가 줄잡아 20%는 될 테니, 응답률이 15%에도 못 미치는 여론조사 상으로는 경우에 따라 50%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맹박이가 내세우는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이 완전 사기이고, 따라서 서민들의 팍팍한 삶은 전혀 개선될 리 없으며 개선될 여지조차 전혀 없는데도, 그것이 왜 일부 국민에게 먹히느냐는 것이다. 거기에 오늘의 한국사회의 딜레마가 있고, 진보개혁 진영의 과제도 거기서 출발한다.

노골적인 계급정치

주지하듯이, 이명박 정부는 노골적인 계급정치를 펴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제아무리 반대해도, 이들은 자신들의 진로를 수정하려 들지 않는다.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면 잠시 비를 피했다가, 비가 그치고 나면 다시금 고개 빳빳이 쳐들고 ‘의연하게’ 제 갈 길을 간다. 100조 이상의 부자감세로 나라 재정이 거덜날 수 있다는 경고가 빗발쳐도, 부자감세를 되무르기는커녕 요리조리 서민들의 주머니를 후려칠 잔머리만 굴린다.

22조 이상이 투입되는 4대강 사업은 건설족들의 주머니를 불려주기 위해 금수강산을 파괴하여 후대에 큰 짐을 지우고 서민복지 등에 쓰일 예산에 압박을 가져오는 백해무익의 사업이라는 비난이 빗발쳐도, 건설족 살리기라는 ‘대의’는 저버릴 수 없단다. 재벌기업의 계좌에 뭉칫돈이 쌓이고 수도권이 미어터져도, 있는 놈 더 밀어줘야 경쟁력이 강화된다며 부의 양극화, 지역간 양극화를 부추긴다. 부의 대물림을 고착시키는 교육제도에 대한 항의가 빗발쳐도, 자신의 부를 대대손손 물려주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는 투로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정책만 골라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

저들은 한국사회를 노골적으로 계급사회, 신분사회로 재편하려 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귀하신 몸과 천한 것들의 격이 다르고 씨가 다르거늘, 어찌 거렁뱅이와 부자들이 한 상에 앉아 같은 밥을 먹고 한 교실에서 같이 공부하며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려 드느냐는 것이다.

저들은 지난 10년간의 ‘민주정부’를 통해 커다란 교훈을 얻었다. 천한 것들에게 기회와 권리를 주면 기어오르려 든다는 것이다. 백성들은 공포와 술수로 다스리는 것이 훨씬 간편하고 효과적이며, 어설프게 아마추어처럼 지배하려 들면 시끄럽고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큰 것은 자기네들이 몽땅 다 차지하고 가끔씩 떡고물을 떨어뜨려주며 그에 감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20% + 선전과 협박 + 욕망 자극 + 억압과 매도 + 정치 혐오 유발

그런데 왜 일부 국민에겐 그런 지배방식이 먹힐까? 일단 자신이 지배계급이라고 여기는 사람들(2-3%?)에게는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다음으로 그들에게 빌붙어 비교적 유복하게 사는 상머슴들(대기업이나 금융기관 종사자, 공무원, 전문직 등, 10-20%)에게도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다. 합해서 약 20%의 국민들에게 그런 지배체제는 그리 나쁜 게 아니다. 그런데 그 20%가 똘똘 뭉쳐도 선거를 통해 집권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술수를 부려야 한다.

언론을 장악하여 부자감세와 4대강 사업과 수도권 집중과 수월성 교육이 경제살리기 방략인 듯 선전해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고달픈 것은 (연봉 8,800만원짜리나 강남에 집 한 채밖에 안 갖고서 피눈물 흘리는 ‘서민’이 아니라) 진짜 서민들이므로, 경제 살린다는 명분을 들이대며 융단폭격을 가하면 일부는 넘어온다. 아파트 한 채라도 가진 사람들에게는 기회 있을 때마다 부동산 부양정책을 내놓아 한 쾌에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정치적 반대세력은 아예 입을 틀어막아버리거나 아니면 평생을 들여 애써 마련한 내 집 한 채마저도 헐값으로 만들어놓을 게 뻔한 과격하고 무능한 무리들로 매도하여 선택지를 좁힌다. 공익에 반하는 무리한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며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에 넌덜머리를 내게 만든다.

그런 술수들로 10-20%만 더 당기고 국민의 1/3 이상을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들면,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없다. 그런 고전적인 술책들이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면서 맹박이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역량도, 의지도 부족한 진보개혁세력

게다가 한국사회의 진보개혁세력이 이렇게 뻔한 술수를 막아낼 역량도, 의지도 부족한 현실이 이들의 지배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한다. 10년간의 ‘민주정부’는 과연 서민대중에게 이전 정부들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을 주었는가? 시민정치적 권리의 면에서는 분명하게 진일보했지만, 사회경제적 평등과 권리의 확대 면에서는 이전 정부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민대중의 삶은 그전 정부들이나 ‘민주정부’에서나 여전히 팍팍했다. 진보세력도 서민대중에게 다른 사회에 대한 뚜렷한 비전과 희망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대중들의 눈에는 모두 다 오십보백보일 뿐이고, 어차피 별 차이 없는 바에야 무모하게 지배세력에게 도전하기보다는 힘있는 세력에 빌붙어 삶을 구하는 방략을 택하는 편이 더 나은 선택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한때 축 처졌던 맹박이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발걸음은 가볍다. 경제위기가 심화될 가능성이 상존하는 등 디디고 선 땅은 위태롭기 그지없지만, 어차피 국민 전체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세력에게 위기는 늘 기회고, 제아무리 위기가 닥쳐도 지들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으니 가끔씩 모험도 즐겨가며 분탕질을 해댄다.

불쌍한 것은 국민들, 서민대중들인데, 대중들을 지배의 대상으로 여기는 저들의 발목을 낚아챌 힘있는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집권경험이 있는 한 세력은 이제 변방으로 밀려난 주제에 자신들도 넓게는 지배집단의 일원이라는 안이한 인식을 갖고서 늘 주변적이고 미봉적인 대응에 그친다. 그런 대로 먹고살 만한 그들 중에는 뒤가 구린 사람도 상당수 있으니 집단적 대응은 항상 맥이 없다. 다른 한 세력은 늘 주변부에 있었던 탓에 내가 책임져야 할 ‘내 나라’ ‘내 백성’이라는 의식이 약하고, 근본을 꿰뚫으면서도 폭넓고 유연하게 사고하는 훈련이 덜 돼 있다.

계급사회와 공동체 사회

길을 찾으려면 먼저 근본과 바탕을 돌아보아야 한다. 저들의 계급사회 추진 전략 및 그 허와 실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저항전선을 폭넓게 쳐야 한다. 전선이 추구하는 핵심 이념과 가치는 저들이 추구하는 바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공동체 사회와 공동체적 삶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지들만 잘 살려는 세력과 더불어 함께 살려는 세력간의 일대결전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한시바삐 태세를 갖추고 약한 고리부터 쳐들어가야 한다. 계급지배에 능숙한 저들에게 삶의 현장인 지역사회는 매우 약한 고리일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부터 세상을 바꾸어가는 움직임은 저들에게 커다란 타격이 될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가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