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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우리에게 희망인가?
어느 때부턴가 마을이 부쩍 우리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세상을 웬만큼 산 이들에겐 먼 옛날 고무신 끌고 동네 마실 다니던 아련한 추억으로, 좀 덜 산 이들에겐 각자도생하는 살벌한 요즘 세상의 의지처나 대안, 치유책의 하나로. 사라진 것 같던 마을이 화려하게 귀환하면서 마을을 둘러싼 담론 또한 무성하다. 마을, 그것은 우리에게 과연 희망일까?
당위로서의 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이웃사랑은 모든 종교와 관습과 도덕의 핵심가치 증 하나였고, 이웃사촌의 소중함은 어느 사회에서나 증명이 필요없는 공리였다. 그렇게 당연한 가치와 공리가 그토록 강조돼온 것은 그만큼 실천하기가 어려워서였을까? 인류역사는 이웃들과의 공생만큼이나 서로간의 이전투구로 점철돼왔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류의 당위는 저들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존재론적 공포감과 늘 공존해왔다.
사람들의 삶의 지평이 확대되고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공생과 대립의 갈등 또한 증폭돼왔다. 인간관계와 인간의 감정까지도 물질화하여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서는 그 갈등이 극에 이르렀다. 공동의 생산물이 개인 소유가 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면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존재론적 당위는 남을 밟고 일어서야 내가 산다는 또 다른 존재론적 당위의 하위 명제가 되어갔다. 불행히도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크고 작은 마을들의 현주소다. 마을에는 공생의 욕구 못지않게 대립과 투쟁의 욕구가 엄존한다. 문제의 해결은 현실의 모순의 냉철한 직시로부터 시작된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다시 마을은 우리에게 희망일까?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자인 다수 민초들에게 삶의 터전인 크고 작은 마을들은 마땅히 공생을 전제로 한다. 함께 만든 것을 함께 나누어 먹고 쓰는 건 지당한 일이니까. 대립을 부추기는 것은 공동의 생산물을 개인 소유로 돌리는 사회의 지배 메커니즘이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다수 민초들에게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가리키면서 살려면, 더 잘 살려면 올라타라고 끊임없이 유혹한다. 한때는 그나마 널찍했던 사다리의 2단, 3단, 4단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좁아진다. 한 단 한 단 더 높이 기어오르려는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낙상자들이 수없이 생겨난다. 사다리를 왜 기어올라야 하는지 회의가 일지만, 딱히 다른 방도도 없다. 먹고 살려면 그래야 한다니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다리를 오르기도 힘들거니와 애써 올라가도 그다지 행복할 것 같지 않다면, 사다리를 타고 오르지 않아도 되는 다른 세상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가려면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눈앞에 놓인 사다리를 무턱대고 오르는 것보다는 외려 더 보람있고 더 현실적인 일 아닐까? 단번에 상전이 벽해가 되지야 않겠지만, 크고 작은 노력들이 모이고 쌓이다 보면 물줄기가 바윗돌을 뚫듯 천지가 개벽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갈수록 희망을 잃어가는 우리 사회에서 우리의 삶의 터전인 마을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만능의 칼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새로운 공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현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아가는 크고 작은 마을에서 수많은 갈등이 표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과 마을 공동체는 그만큼 성숙해져갈 것이다.
그러자면 우선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그 계기는 마을의 현안이든 품앗이 육아든 모여서 놀기든 그 무엇이든, 공동의 관심사나 공동의 이해관계만 맞으면 된다. 그런 일들을 혼자서 하지 않고 모여서 함께 하는 것이다. 때론 싸우고 화해도 하면서 되도록 신나고 재미있게.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는 열 사람의 한 걸음, 이것이 마을 공동체의 제일 원칙이다.
함께 모여서 떠들고 놀다 보면, 공동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공동육아에서 공동의 먹을거리, 마을 환경으로, 마을 자치에서 마을 교육, 마을 문화로, 마을 계획에서 마을 경제로, 무엇부터 시작해도 상관없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신나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더더욱 좋다. 장기지속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경제적 뒷받침이 매우 중요하므로, 최근에 와서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의 다양한 접목이 시도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고양시에서도 자치공동체 활동의 기초를 놓기 시작한 지 어느덧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고양시의 아파트, 연립, 다세대, 주상복합, 단독, 다가구, 농촌 마을을 모두 아우르는 고양시 천 개의 마을 마을마다에서 마을공동체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사람들의 팍팍한 삶을 보듬어 안아주는 그런 날을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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