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여름, 답답한 날들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시장 붕괴의 여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상전벽해란 말이 무색할 만큼 한때 잘 나가던 공장들이 속속 문을 닫았고, 나라마다 식량자급과 내수충족을 위한 생산을 늘리느라 아우성들이다. 달러화의 폭락이 세계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불러오면서 그렇잖아도 휘청거리던 세계무역에 치명타를 가하더니, 국제사회가 연일 머리를 맞댄 끝에 이제야 겨우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국가간 결제통화로는 이제 달러보다 유로와 위안화가 더 강세다. 핵전쟁의 고비는 겨우 넘겼지만, 지금도 중동과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는 총성이 끊일 날이 없다. 세계의 경찰 행세를 하던 미군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면서 국지전이 더 빈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
1. 들어가며 “내 생전에 이 얘기를 하고 죽을 날이 올까 생각했다.” “가슴 깊이 파묻어 애써 갈무리해둔 이 아픈 상처를 다시 도지게 했으니, 치료비 내놓고 가라.” “세상이 본시 그런 세상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우리 같은 농투성이 인생은 예나 제나 늘 그 모양 그 꼴이지 뭘.” “이 한 많은 인생, 누가 되돌려줘? 누가 해결해준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문제에 한 발짝이라도 들여놓은 사람이라면 귀가 닳도록 들은 말들이다. 절망, 상흔, 통한, 체념, 냉소, 원망이 뼛속 깊은 곳에서 배어나오는 이런 말들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전율도, 분노도,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세상은 으레 그러했고, 또 언젠가는 이런 상태가 역전되어, 아니 교정이라도 되어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번번이 좌절돼..
금정굴사건 진상규명운동이 시동을 건 지 어언 16년 여, 그 발동주체였던 고양시민회의 창립 21주년을 맞아 운동의 역사와 현황, 과제들을 정리해본다. 1. 금정굴학살 규명운동과 고양시민회 고양시민회가 금정굴과 연을 맺은 것은 1993년이다. 당시 금정굴사건을 개인적으로 조사하고 있던 김양원 씨가 93년에 시민회 회장으로 선임되었고, 그해 여름 시민회에서 금정굴사건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정하면서 금정굴학살이 역사와 사회의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시민회는 당시 고양지역의 4개 민주단체들과 공동으로 금정굴사건진실규명위원회를 꾸려 금정굴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작업에 나섰고, 그와 동시에 당시 김양원 회장이 파악하고 있던 유족들을 중심으로 유족회가 꾸려져 공동활동을 하게 된다. 1993년 9월 25일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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