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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벗은 권력이 우리를 너무나도 초래한 존재로 만드는 오늘,  한병철 선생이 지은  <권력이란 무엇인가>에서  눈길 끄는 내용들을 조금 정리해보았습니다. 바꾸려면 우선 알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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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폭력보다 더 넓은 공간을 갖는다. 폭력이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되면 권력이 된다. 이런 점에서 권력은 더 많은 공간과 시간에 근거하고 있다. ... 권력은 가상의 형태로라도 그런 시공간을 필요로 한다.”

 

권력은 세인으로 등장할 때, 즉 자신을 일상성에 기입할 때 높은 안정성을 갖는다. 강제가 아니라 습관의 자동주의가 권력의 효과를 상승시킨다. 절대적 권력이란 모습을 드러내거나 자신을 지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명성과 완전하게 합치되어 있는 권력일 것이다. 권력은 부재를 통해 빛을 발한다.”

 

인간은 서로의 관계에서 자유로울수록 타자의 태도를 규정하는 데서 더 큰 쾌락을 느낀다. 타자의 태도를 유도할 때 얻는 유희가 다양하고 자유로울수록 쾌락은 더 커진다, 그에 반해 이러한 유희 가능성이 없는 사회에서는 권력이 가져다주는 쾌락도 줄어든다.”(푸코)

 

권력은 그 이상의 권력이 되려고 의욕하는 한에서만 권력으로서 존재한다. 이러한 의지가 중단되면, 원래 지배하던 것이 아직 자기 힘의 테두리 안에 있을지라도 권력은 이미 더 이상 권력이 아니다. ... 인간이라면, 아니 살아 있는 유기체라면 그것이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더 많은 권력을 의욕한다.”(하이데거)

 

사유하는 정신은 타자를 꿰뚫어 관통하고, 타자를 철저히 밝혀냄으로써 타자의 타자성을 제거한다. 그를 통해 정신은 자아의 연속성을 관철해낸다. ‘의지또한 자신의 내면성을 객관화하려고, 외적인 것에 자신의 내적인 것을 각인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자아의 연속성을 심화한다. 의지의 이러한 근본 특성은 자신으로의 회귀이다. 이렇게 보자면 권력 의지는 늘 자기 자신에 대한 의지인 것이다.”(헤겔)

 

“‘결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 것, 그것이 권력이다.’라고 말한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권력의 공간성을 잘 알고 있다. 좁은 총구로는 어떤 공간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총구는 근본적으로 지극히 고독한 장소다. 공간을 창출하고 권력을 선출해내는 것은 타자에 의한 정당화이다. ... ‘권력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공동으로 행동할 때 생겨난다.’”

 

정치적 소통이 전략적 행위와 분리될 수 없는 한, 정치는 언제나 권력 정치이다. 단지 상호이해만을 지향하는 존재란 정치적 견지에서뿐만 아니라 인간학적, 나아가 존재론적 견지에서도 추상에 불과하다. 정치적 행위를 구성하는 것은 동의가 아니라 권력 균형으로서의 타협이다. 타협한다는 것은 한 사태의 결정을 심판의 선언에 맡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치란 권력과 결정의 실천인 것이다.”

 

권력은 자기중심적이다. 권력에는 그 자체로 자기성이 내재한다.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장소는 모두 자기로 향하고 자기를 주장한다. 자기를 향한 의지는 권력 개념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 추구 없이는 어떤 권력 구조도 생겨나지 않는다. ... 자기의 절대적 면역성, 절대적 통치성에 바로 권력의 절대성이 있다. 그래서 데리다는 권력의 윤리를 자기성을 약화시키는 자기 면역성과 관련시킨다.”

 

지배관계란 권력관계가 안정성을 원하고 있는 상태이다. 나아가 놀이의 개방성이 권력의 본질적 특성은 아니다, 오히려 권력은 개방성을 축소하려는 경향을 띤다. 개방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불안이 권력에 대한 욕구를 증가시킨다. 자신을 확고하게 안정시키려는 권력은 열린 놀이 공간이나 예측 불가능한 공간을 제거한다. 권력 공간은 전략적인 공간이다. 전략적 개방성은 놀이에 내재하는 쾌락적 개방성 또는 불확실성과 다르다.”

 

권력의 남용은 자기쾌락의 노예가 됨으로써 발생한다. 그것은 자유의 상실을, ‘자신에 의한 자신의 노예화를 초래한다. ... 푸코는 자기배려의 실천을 권력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능력과 연결시킨다.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그들에게 독재적 권력을 행사할 위험, 푸코에 따르면 자기 자신을 배려하지 못하고 자기 욕구의 노예가 되었기에생겨난 것이다. ... ‘자기 자신에 대한 왕이야말로 왕 중의 왕이다.(플라톤)’”(푸코)

 

“‘유기체의 근본 기능인 착취는 생명의 본질에 속한다. 그것은 삶의 의지 그 자체인 권력 의지의 결과이다. 모든 살아 있는 육체는 성장하고 , 주변을 장악하고, 자라나며, 몸무게를 늘리려 한다.’...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자신을 강요하고, 타인보다 더 커지며, 타인을 뒤덮어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타인에게 연속시키거나 타인을 관통해 자기의 연속성을 확장하는 것이다. ... ‘권력 감정은 처음에는 점령하고 다음에는 지배한다(조직한다). 그것은 자기 유지를 위해 극복된 것을 규제하며, 그를 통해 극복된 것 자체를 얻는다.’”(니체)

 

권력이 먼 곳을, 또 먼 곳에 살고 있는 것들을 넘겨볼 수 있는 것은 권력이 권력이 아니며 자기중심적이지 않은 어떤 것과 접촉했을 때뿐이다. 따라서 높고도 명확하고, 깊고도 온화하게 바라보는 객관성을 갖는 정의는 순수한 권력 작용이 아니다. 사소한 것과 탈주자에게까지 향하는 정의의 사려 깊은 눈은 권력의 눈이 아니다. 권력은 온화하게 바라보는 친절함의 살가운 감정을 알지 못한다. 권력이 더 넓고 길며 우호적인 시선을 갖게 해주는 것은, 권력에 속할 수 없는 권력 외재적 성질이다.

... 권력에는 하나를 향한 특성이 내재한다. 그렇기에 권력으로부터는 다수적인 것, 다종적인 것, 다양한 것, 부차적인 것 혹은 빗나간 것에 대한 호의가 나오지 않는다. 그에 반해 정의는 모두에게, 살아 있건 죽어 있건, 현실적인 것이건 생각의 소산이건, 자신의 몫을 주려고한다. 그러하기에 정의는 자기중심적이지도 중앙적이지도 않다. 한발 더 나아가 정의는확신의 반대자이다. 정의로운 자는 자기 자신보다 사물에 더 귀를 기울인다. 확신에 거리를 두는 것은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도 거리를 두는 것이다. ... 정의로운 자는 늘 너무 빨리 오는 자신의 판단을 보류한다. 그런 판단은 이미 타자에 대한 배신일 것이기 때문이다. ... 자신에 대한 확신과 타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유동적으로 열어두고, 듣고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판단, 곧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제하는 자는 정의를 행하는 자이다. ...

오직 넓게 돌아보는 권력’, 다시 말해 사려 깊은 눈을 가진 권력만이 ... ‘모든 것그들의 몫을 주는 정의로운 장소를 정초할 수 있다. 하지만 니체는 이러한 종류의 정의에는 만족하지 않는다.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무 경계 없이 모든 것을 환영하는 경계 없는 친절함이다. ‘... 생성하고, 방황하고, 구하고, 도망하는 모든 것은 내게로 오라! 환대는 나의 유일한 친절함이다.’ 이러한 유일무이한 환대는 모든 것에 그들의 몫 이상을 준다.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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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넘쳐흐름을 선사하고 싶고, 다 선사해버리고 싶어하는 그대여,/ 그대 자신이 쓸모없을 정도로 넘쳐흐르는 자이니,/ 풍요한 그대여, 지혜롭게/ 우선 너 자신을 내어주어라’”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