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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공동체 활동가의 눈에 비친 이동환 고양시장 100

주민자치와 공동체는 지방자치의 척도다

 

 

지방자치는 두 부분의 합이다. 지방분권과 주민자치다. 중앙집권 경향이 압도적인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연혁도 짧고 권한 이양도 극히 제한적이며 자치 역량도 튼실하지 못하다. 지방분권은 그나마 지방자치법 등의 관련법규 제개정 등으로 꿈틀거릴 단초나마 마련됐지만, 주민자치의 앞길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중앙과 지방의 위정자들 모두 주민들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데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각급 선거 때마다 시민이 주인이니, 시민 우선의 도시를 만들겠다느니, 주민만 보며 일하겠다느니 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그러나 그런 슬로건은 선거철 한때일 뿐, 선거가 끝나고 나면 시민들은 다시 지배당하는 노예’, 아니면 기껏해야 행정서비스의 대상자나 도시경영자의 고객으로 되돌아간다.

 

이런 풍토 속에서 주민자치, 즉 주민을 지역의 주인이자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세우는 일은 지난한 과제지만, 한편으로는 복잡다단한 현대사회가 빚어내는 온갖 문제를 푸는 해법이기도 하다. 오늘날 주민 동의 없이, 주민들의 힘과 지혜를 모으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주민들의 일상생활 영역에 깊숙이 관계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지난 71일 민선 8대 이동환 고양시장이 취임했다. 이 시장은 취임사에서 고양 성공시대, 시민 행복시대를 향해 오직 고양시민만 바라보고 가겠다고 선언했다. 몇 가지 낯선 정책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시민들은 시민과 함께 하겠다는 시장의 거듭된 언명에서 한 가닥 기대와 희망을 품었다.

 

그로부터 100, 고양시 각 부서와 기관에 전달된 시장의 2023년 예산 편성지침을 통해 이동환 시장의 시정 방향이 얼추 드러나고 있다. 그중 자치 관련 부분을 살펴보면, 시민 참여와 협치는 대폭 축소하고 관치형 행정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오직 시민만 바라보며 일하겠다는 시장의 거듭된 발언 속의 시민이 한낱 행정서비스의 대상일 뿐이었는지 의심케 하는 흐름이다.

 

먼저, 풀뿌리 지방자치의 밑바닥 기초조직으로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동 주민자치회의 활동을 대폭 축소하려 하고 있다. 자치지원 전담공무원제 폐지, 조례에 규정된 주민세(개인분) 환원 유보에 더하여, 44개 동 주민자치회의 2023년 자치사업비를 일률적으로 3,500만원(주민총회, 마을신문, 마을축제 포함)으로 책정하고 있다. 2022년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로,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마을 사업들은 거의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공식 풀뿌리 주민자치기구인 동 주민자치회 지원 축소는 지방자치와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역행하는 조치다. (** 최종 편성과정에서 추가 삭감)

 

다음으로, 자치공동체 활동 지원을 크게 축소하려 하고 있다. 자치공동체지원센터에 2023년도 예산을 2022년 대비 40% 축소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한다. 운영비가 예산의 약 50%인 것을 감안하면, 사업은 사실상 하지 말라는 말이다. 센터의 사업비는 주민 공모 공동체사업비, 마을공동체 및 주민자치 활동 지원비 등으로 구성되는데, 사업비의 삭감은 주민 공모 마을공동체 사업의 대폭 삭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주민자치의 뿌리인 마을공동체의 형성, 활성화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최종 편성과정에서 75% 삭감 - 사실상 센터 운영중단 조치)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이해 부족도 드러난다. 중간지원조직은 민이 중심이 되는 지원조직을 꾸려 민에게 친숙한 방식으로 민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민과 관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자치공동체 활동 외에도 도시재생, 청소년사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간지원조직의 기능 및 역할 축소 움직임이 감지된다.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주민참여를 어떤 방식으로 활성화할지 염려된다.

 

시의 정책 결정에 대한 주민참여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시청 신청사 건립 재검토, 자유경제구역 지정 등 시의 주요 현안에 대해서조차 주민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이 매우 부족하고, 기왕에 구성돼 있는 시민참여기구조차도 활용하지 않고 있다. 시민참여 없는 전문가와 관료 중심의 정책 결정은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동환 시장은 취임 100일 기념사를 통해 미래를 바꾸는 힘! 고양을 민선 8기 시정 슬로건으로 발표하면서 ‘108만 고양특례시민이 고양의 미래를 바꾸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의 말대로 고양시 최대의 자산은 시민이다. 도시기반도, 산업기반도 몹시 취약한 고양시에서 가장 확실한 자산은 거대 베드타운인 이곳 고양시에 지금 살고 있는 108만 고양시민이다. 고양시의 정책은 108만 고양시민의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에너지를 최대로 끌어낼 수 있을 때 빛을 발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에너지를 끌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민들에게 기회와 권한을 주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다양한 참여의 기회를 주고,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부여하는 권한과 예산을 차츰 늘려가며 참여의 효능감을 느끼게 하고, 민과 관이 머리를 맞대고 이를 엄밀히 평가하여 제도화함으로써 주민자치의 기틀을 갖추고 발전시켜가는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민선 8기 초의 자치 관련 정책 중에는 오히려 주민자치와 지방자치의 발전에 역행하는 정책들이 적지 않다. 얼핏 무심해 보이는 주민들은 보기보다 현명하고 눈도 귀도 밝다. 더 늦기 전에, 자치에 역행하는 제반 지침은 속히 철회 또는 보완하고, 시민들의 무한한 가능성에 더 큰 날개를 달아줄 방안들을 다각도로 모색해보기를 촉구한다.

 

20221024일 *

 

* 1달 일주일 전에 쓴 글을 여러 사정 감안하다 이제야 싣습니다.

** 본문 중 예산 감액안은 시 집행부의 최종 예산편성과정에서 다시 대폭 삭감되어 11월 21일 무늬만 남은 예산안으로 고양시의회에 제출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곧이어 재정리, 발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