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고양시 자치도시 추진 8년


 

- 1910년 지방선거 이후 등장한 민선5기 고양시정부는 자치도시 추진을 목표로 다양한 제도를 만들고 시민참여와 주민자치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펼쳤다. 자치도시를 설계한 초기 주체는 고양시민회가 주축이 된 고양무지개연대였고, 이를 구체화하여 자치도시 추진 로드맵을 만든 것은 당시 고양시민회의 부설기구였던 고양지역사회연구소였다. 이 설계안을 고양시가 전폭 수용하면서 민선 5, 68년 동안 고양시는 시민 우선의 자치도시를 추진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은 크게 변질되어 절름발이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 질곡의 과정 또한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므로 새로운 미래를 위해 이를 간략하게 정리해둔다.

 

 



1. 이야기의 시작

 

(1) 민선 지방자치의 재개와 지역 시민사회의 형성

 

1990년대 들어 다시 시작된 지방자치는 태동기부터 숱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고, 여러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복잡성을 더해갔다. 중앙정부는 지방자치체에 자신의 권한을 과감하게 위임하기보다는 여전히 지방자치체를 하급 행정기관으로 부리려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중앙정치권 또한 지방자치체의 장이나 의원들을 피후견인으로 삼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1987년 민주항쟁은 지역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이른바 접경지대인 경기북부의 서울 주변부 농촌지역이던 고양군은 국내의 다른 지역보다도 보수성이 짙었고, 산업시설도 별로 없어서 노동운동이나 여타 민중운동도 매우 취약한 상태였는데, 이후 진보개혁적 시민사회단체들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진보 시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198712월 대통령선거 공정선거감시단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1988년 창립한 고양군민주실천주민회(1992년 시 승격 후 고양시민회로 개칭)가 출범하였다. ‘주민회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주민자치의 기치 아래 주민권익옹호 활동과 지역 민주화운동을 실천하는 주민주체의 조직을 표방했다. 이어 1989년 전교조 고양지부가 발족했고, 두 단체는 당시 소모임으로 존재하던 고양농민회와 고양대학생향우회, 몇 개의 소규모 노동조합, 그리고 때로는 항공대총학생회와 연대하며 지역과 중앙의 현안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신도시가 들어서고 젊은 층의 대거 이주로 주민 구성이 크게 바뀌기 시작한 1990년대 중엽 이후 2000년까지 고양환경시민연합(이후 고양환경운동연합으로 재창립), 고양청년회, 고양파주여성민우회, 참교육학부모회지부, 녹색소비자연대, 버스일터, 어린이식물연구회 등이 결성되고, 2000년대 들어 5개 생협, 민주노총지구협의회, 민족문제연구소지부, 노점상연합회, 경기장애인인권포럼, 지역아동센터연합회, 고양작가회, 고양평화누리, 미디어시민연대, 아시아의친구들, 창작21작가회, 청소년정치참여네트워크 등의 단체와 크고 작은 연대기구들이 속속 결성되면서 고양지역 시민사회의 새로운 기반이 형성되었다.


고양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때로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사안별 또는 상설 연대기구를 결성하여 각종 현안에 공동대처하며 상호 신뢰를 쌓아갔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1993년에는 유족들과 함께 금정굴사건진상규명위, 2000년에는 금정굴사건공동대책위를 결성하여 금정굴 문제에 공동대처했고, 1996년에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쓰레기소각장대책위를 만들어 백석동 소각장 문제를 파고들었으며, 1998년에는 고양시민단체 대표자회의에서 가칭 고양지역시민단체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상설 연대체를 발족했다. 이 상설 연대체는 2001년 고양시시민단체대표자협의회, 2003년 고양지역시민단체연대회의(사무국 구성)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가며 이후 고양지역 시민사회의 구심 역할을 한다.


각종 연대기구 중에서도 고양지역 시민사회연대를 널리 알린 것은 러브호텔 반대운동이었는데, 그 시초는 1999년 결성된 도시 외곽 지역의 준농림지러브호텔반대대책위로서 시민 17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 조례를 개정하는 성과를 거둔다. 이어서 2000년에는 학교 주변의 러브호텔반대대책위가 규모 있게 결성되어 대규모 도심 시위를 조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 도심 속 러브호텔의 무분별한 건축을 막아내는 중심 역할을 한다.

 

(2) 지역 시민사회의 정치 및 시정 참여

 

민선 지방자치의 재개는 지역주민 주체의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 공동체를 갈망하는 고양지역 시민사회에 또 다른 고민을 안겨주었다. 지방자치를 어떻게 바라볼 거냐는 거였다. 한수 이북 접경지대의 농촌 지역이던 고양군은 이른바 보수 풀뿌리를 기반으로 한 만년 보수여당 지역이었고, 다시 열린 지방자치 공간은 지역 유지들의 철옹성이 되었다.


1992년 일산신도시와 대규모 택지개발이 시작되고 고양군이 고양시로 승격되면서 지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대부분 젊은 층인 새로운 이주민들은 새로운 정치, 새로운 삶터, 새로운 도시를 갈망하고 있었다. 1995년 고양시민회에서 한 회원을 무소속 후보로 내보내 당선시켰다. 참고로, 당시 기초의원의 경우에는 정당공천제가 아니었다. 1998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몇몇 단체 일꾼들 중심으로 지방자치연구모임을 꾸려 함께 공부하면서 지방자치대학을 개설하고 선량들을 발굴했다. 그해 열린 지방선거에서 시민사회 출신 후보 4명이 시의원에 당선되었다.


고양지역 시민사회는 전국단위 시민사회와 발맞추어 총선에도 적극 개입했다. 2000년에는 총선시민연대, 2004년에는 고양총선연대를 꾸려 낙천, 낙선, 당선 운동을 벌인 결과 만년 보수여당지역이던 고양시의 정치 지형을 바꾸는 데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 이런 경험 등을 통해 지역 정치권과의 교류도 부분적이나마 시작되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2002고양시민행동을 결성하여 시민후보의 대거 당선을 꾀했다. 시장후보 포함 총 16명의 시민후보를 내세웠는데, 시장후보는 11% 득표에 그쳤고 시의원 8명이 당선되었다. 조직적인 선거연대의 경험이 없던 고양지역 시민사회는 잠시 의원들의 활동을 개인 또는 집단적 자율에 맡기다가 2003년 연대회의와 시의원 간의 의정협의회를 정례화하여 각종 현안을 함께 논의하며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이어 2005년에는 연대 차원에서 시민자치대학을 열어 2006년 지방선거의 조직적 준비에 착수했으나, 정당들이 기초의원에까지 정당공천제를 도입하고 대부분 1선거구 2인 선출의 나눠먹기식 중선거구제에 합의하면서 2006고양시민행동은 발족한 지 얼마 못 가서 활동을 중단하고 만다. 정당공천제와 2인 선거구제가 풀뿌리정치의 싹을 잘라버린 것이다.

 

 

2. 민선 5기 초기의 고양시 시정공동운영 시도

 

(1) 전사 : 고양무지개연대와 정당협의

 

지역 시민사회는 20093월 한동안 느슨해 있던 연대망을 추슬러 고양지역시민사회연석회의를 결성, 지역과 전국 사안에 공동대응키로 했다. 연석회의에는 지역의 25개 시민사회단체 외에도 민주노동당, 민주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이 차례로 참여했다. 연석회의의 다양한 활동 과정에서 2010년 지방선거 공동대응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연석회의는 9, 10월의 토론회와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며 공동대응방안을 숙의하고 실무팀을 꾸려 실무준비에 착수했다. 연석회의는 본디 제 시민사회단체와 제 정당이 함께 하는 선거연합조직을 결성하려 했으나, 선거법상의 선거운동 유사기관 금지 규정을 피하여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원 포함 시민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연합시민운동체와 야5당의 정당협의체를 분리 운영하며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20101월 발기인대회와 준비위원회를 거쳐 좋은 정치 실현을 위한 고양무지개연대(약칭 고양무지개연대’)’가 공식 발족했고, 그와 함께 야5당의 정당협의회도 열어 기본 합의문을 채택했다. 정책연대와 후보연대를 포괄하는 전면적 선거연합을 추진한다는 합의였는데, 고양무지개연대는 첫 회의부터 정당협의회에 중재, 조정자로 참여하며 선거연합의 중추 역할을 담당했다.


고양무지개연대는 대표단과 집행위원회, 자문위원회, 기획단, 조직위원회, 정책단, 홍보단, 사무국의 조직(각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자와 활동가 중심 50여 명)과 약 1천 명의 회원(1만 명을 목표로 했으나 그 1/101천 명에 그침) 체계를 갖추고 단순한 후보단일화 차원을 넘어선 정책연대와 시정공동운영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포함하는 실질적이고 수준 높은 연대”(김범수, 2010)를 지향했다. 미흡한 회원 조직은 활동가들의 기획력과 집행력, 헌신으로 벌충했으나, 선거 이후 당선자들의 견인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고양무지개연대가 품을 가장 많이 들인 사업은 정책사업이었다. 각 분야의 담당자들이 내놓은 정책들을 두고 정책단 워크숍과 내부 토론회, 시민 상대 공개토론회를 갖고 시민공약공모대회도 열었으며, 이렇게 다듬은 정책들을 고양시의 야5당과 후보자들에게 제안하는 발표회도 갖고, 예비후보자들과의 간담회도 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고양시정 10대 개혁의제와 100대 정책공약이 만들어져 나왔다. 이 정책공약을 골자로 범야권 야5당과도 정책연대에 합의했고, 연합후보 확정 후에는 후보자 전원과 고양무지개 정책협약도 맺었다. 협약식에는 대부분의 후보자가 함께 했으나, 정책합의 과정에는 함께 하지 않은 후보들이 상당수 있었고 그중에는 협약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 또한 민선5기 출범 이후 개혁정책 이행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정책협약 중 정책 기조와 자치 관련 핵심정책 10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정책 기조

1. 개발보다는 사람에 투자하며 주민들의 생활상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따뜻한 도시

2. 풀뿌리 주민자치가 생동하는 초록평화상생의 공동체 도시

......

 

9. 넓고 깊은 자치를 구현해가는 민주도시

81. 자치헌장 제정과 자치 로드맵 작성

82. 고양시 거버넌스 이사회, 동별 자치위원회, 분야별(과별) 정책협의회 운영하여 민관협력, 민민협력의 자치 시스템 구축

83. 참여예산조례 제정, 정보공개팀, 시민배심제와 시민감사위원회 운영 등으로 시장 중심의 행정에서 주민 중심의 자치로

84. 여야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와의 협의 제도화

85. 행정기구화된 주민자치위원회를 살아 있는 자치단위로, 각종 위원회의 실질화, 투명화

86. 동별, 지역별 타운미팅과 공청회, 토론회 수시 개최, 주민투표제 시행

87. 의원투표 실명제, 정책 실명제 도입

88. 홈페이지를 정보제공과 소통의 매개체로 전면 개편

89. 주민참여 운영위원회 제도화 등, 시 산하기관의 민주화와 효율화

90. 시장과 시의원은 정책결정자가 아닌 정책조정자로-고양시 거버넌스 체제 이행 약속

자료 : 고양무지개연대(2010: 303-309)

 


또 한 가지 역점을 두고 추진한 사업은 정당 간 협상의 중재, 조정이었다. 선거 때까지 15, 선거 후 몇 차례 더 열린 고양시 5개 야당 정당협의회, 수없이 가진 공식, 비공식의 간담회와 회의에서 무지개연대는 중재, 조정자 역할을 하며 야권연대를 견인했다. 정책연대까지는 비교적 순항을 했는데, 문제는 역시 후보연합이었다. 중앙의 회의가 질척대면서 지역에까지 악영향을 끼쳤지만, 험난한 과정을 이겨내고 전면적 선거연합을 이루어낸 밑바닥 힘은 중앙의 합의 성사 여부와는 무관하게 고양시에서는 반드시 합의를 이루어내자는 초심의 거듭된 확인이었다.


54일 지난했던 협상 끝에 고양시 야5당 대표들이 고양무지개연대의 중재 하에 전면적 선거연합 합의서에 서명했다. 고양시장 후보로는 민주당 후보가 선정되었고, 선거구가 8개인 광역의원 후보로는 민주당 5(1명은 시민사회 출신 무소속 영입), 민주노동당 1, 진보신당 1, 국민참여당 1명이 5당 단일후보로 뽑혔으며, 선거구 13개에 지역구 의원 정수가 27명이던 각 당의 기초의원 후보 25명에게는 5당 연합후보라는 타이틀을 주었다.


그와 함께 511일 무지개연대는 총 21명의 후보를 따로 지지후보로 선정, 발표하면서 이들에게 고양무지개연대 선정 좋은 후보라는 타이틀을 준다. 같은 지역구 내 기초의원 연합후보 간 경쟁, 연합후보와 고양무지개연대 좋은후보 간의 괴리는 선거 이후 연합정치가 질곡을 겪는 배경의 하나로 작용한다. MB, 반한나라 연합으로 잠시 묶여 있던 동상이몽의 당선자들이 각자 제 갈 길을 가면서 적나라한 모순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한편, 513일에는 고양무지개연대와 야5당 대표들이 고양시정 공동운영방안에 합의하면서 지방정부 공동운영과 시민참여 거버넌스의 기초를 놓는다. 이어서 518일에는 고양무지개연대와 고양시의 야5당 대표, 고양시장을 비롯한 고양시 범야권 연합후보들이 고양무지개 정책협약식을 갖고 2010 지방선거 고양시 선거연합을 매조지었다. 이때 합의한 고양시정 공동운영방안과 고양무지개정책협약은 이 글에서 다루는 민선 5,6기 고양시 로컬 거버넌스의 밑그림이자 대 시민 서약이 된다. 이후 고양시장 인수위원회 활동을 거치며 우여곡절 끝에 630일 고양시정 공동운영방안에 최종 합의하였다.

 

고양시정 공동운영방안

 

1. 대원칙

 

- 고양시 야5당과 고양지역 시민사회단체는 고양시 야5당과 고양무지개연대, 범야권 연합후보들이 협약한 정책기조와 고양시정 10대 개혁의제, 100대 정책공약을 근간으로 상호 신뢰와 협력 하에 고양시정을 공동운영한다.

( * 정책기조 - 1. 개발보다는 사람에 투자하며 주민들의 생활상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따뜻한 도시, 2. 풀뿌리 주민자치가 생동하는 초록평화상생의 공동체 도시)

- 고양시 야5당과 시민사회단체는 고양시정 공동운영체계를 지역별, 분야별 대표성을 갖춘 시민들에게 단계별로 개방하여 참여와 자치의 기반을 확대해간다.

- 범야권의 야5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소속 정당 또는 단체의 각급 당선자(시장, 경기도교육의원, 경기도의원, 고양시의원)의 시정 또는 의정 활동을 지원하며 함께 책임진다.

- 범야권 출신의 고양시장과 경기도교육의원, 경기도의원, 고양시의원 당선자는 소속 정당 또는 단체의 일원으로서 협약한 정책 이행 등의 맡은 바 책임과 소명을 다한다.

 

2. 기본 운영체계

 

- 시장 직속으로 고양시정운영위원회를 둔다.

- 분야별(.과별) 정책협의회, 시 산하단체 운영위원회를 단계별로 만들어간다.

- 동 주민자치위원회를 실질적인 자치기구로 만들어간다.

- 시민감사위원회, 시민배심단 등 다양한 시민참여구조를 만들어간다.

- 시정운영위원회 직속으로 풀뿌리 거버넌스 모니터링 실무팀과 매니페스토 모니터링 실무팀을 두어 거버넌스 운영실태와 정책공약 이행상황을 점검한다.

- 시장 직속으로 정책기획팀(개방직, 계약직 위주)을 두어 고양시정운영위원회와 거버넌스 체제 전반을 뒷받침한다.

- 시정운영위원회의 책임 하에 주민자치아카데미를 개설하여 시민들의 자치역량을 배양하고 시민참여의 통로로 삼는다.

(이하 줄임)

자료: 고양무지개연대(2010: 193-194)

 


그러나 동상이몽의 불완전한 선거연합은 민선 5기 출범 직후부터 그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낸다. 71일 민선 5기 시작과 동시에 가동키로 한 고양시정운영위원회는 발족도 하기 전부터 표류하기 시작했다. 고양시의회는 의장단 선출 과정에서부터 13명의 민주당 시의원들이 진보개혁적인 선거연합 지지파와 반대파의 두 파로 갈리면서 대립했고 그 여파로 소수야당 소속 시의원들은 독자행보를 결정한다. 선거과정에서 맺은 정책협약과 시정공동운영 이행 약속이 처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선거연합의 바통은 공동정부의 현실 구현체인 고양시정운영위원회로 넘어간다.

 

(2) 고양시정운영위원회 활동

 

고양시정운영위원회는 고양시의 야5당과 시민사회의 합의에 따라 출발한 무지개연대정신의 구현체로서, 민관정을 대표하는 시정공동운영 주체, 주민참여 거버넌스 기획 조직자, 정책협약 이행 점검자를 자임했다. 본디 구성원은 민주당 지역위원회별 1명씩 총 4, 다른 야 4당 대표 1인씩 총 4, 무지개연대가 추천한 시민사회대표 5명으로 총 13명이었으나, 발족 초기 시장의 요구로 시장 추천 2인을 추가하여 총 15명이 되었다.


규정하자면 선거연합에 함께 한 민관정 거버넌스의 주체로서 향후 보다 폭넓은 민관협치의 토대를 놓는 산파 역할을 상정하고 있었다. 회의는 초기에는 주 1회 전원회의, 상임위원단(위원장 1, 상임위원 3) 수시 회의 체계로 운영하다가 후기에는 월 2회 전원회의로 조정했다. 전원회의는 2010715일부터 2011930일까지 총 32회를 진행하며 당면한 안건들을 논의했다.


201071일 민선 5기 시작과 동시에 각 그룹의 대표자들은 이미 합의한 대로 위원회를 공식 발족하고 활동에 들어가려 했으나 시장(공무원)과 위원들 사이의 견해차로 갈등을 빚으면서 난항을 겪었다. 갈등을 빚은 사안은 위원회의 공식 발족 시기로 시작하여 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자문기구냐 시정공동운영기구냐), 위원회 체계, 위원장 제도 및 위원장 선출, 시정현안 협의, 시장 공약 추진 점검, 위원회와 시민참여 제도화, 행정지원 문제 등 다양했다. 시장은 시의원 설득, 제도적 제약 등을 이유로 위원회의 발족 시기 조정, 위원회의 자문기구화 등을 계속 주장했고, 관계 공무원은 제도화 이전까지는 지원이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곡절 끝에 715일 제도 밖 비공식기구로 발족한 시정운영위원회는 4차 전원회의에서 위원장 선출 문제로 한바탕 내홍을 겪은 후 곧장 체제를 재정비하고 협의를 요청했지만 시장은 위원회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합의 파기냐 이행이냐의 갈림길에서 6주 만에 시장이 결국 복귀하긴 했으나 이후로도 실질적인 협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당면 현안 처리에 급급했다. 결국 민선5기 출범 첫해인 2010년 말까지 개혁예산 확보, 혁신조례 제정 시기를 놓치며 한동안 각종 개혁정책이 표류하게 된다.


시정운영위에서 무지개연대의 정신을 살려가며 지방공동정부와 지역공동체의 초석을 놓으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던 위원들에게 민선 5기 출범 후의 1년은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은 시간이었지만,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성과는 실로 빈약했다. 대내외적으로 정치연합의 상징성을 근근이 유지한 부분을 제외하고 얻은 제한적 결실들은 그나마 시민사회 대표들의 끈질긴 요구와 무보수 과외 활동의 결과물들이었다. 시민사회 대표들을 비롯한 위원들의 속마음은 열린 공간을 이용하여 입지라도 강화하자’, ‘끈질기게 요구하여 이듬해인 2012년 예산에서라도 꼭 기반을 마련하자는 거였다.


시정운영위의 시정공동운영 기능은 사실상 전무했다. 시장과 시 공무원들은 위원회를 시정운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고, 위원회를 부담스러워하며 여러 자문기구 중 하나 정도로 여겼다. 위원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던 시민참여의 제도화 및 활성화, 개혁정책 추진 역시 이런 상황에서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함께 힘을 모아 난관을 돌파하기에는 다양한 참여 주체들 간에 시정공동운영거버넌스시민참여에 대한 의식과 상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고, 정치와 진보개혁에 대한 인식 차도 매우 컸다. 같은 자리에서 서로 바라보는 곳이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2010년 말부터 제도화된 후속 기구를 준비해오던 시정운영위는 2011년 봄 위원회의 진로와 후속 대책 논의에 착수했다. 위원들은 준비한 후속 기구인 시정주민참여위원회에 주민참여 활성화 및 제도화, 개혁정책 이행점검이라는 위원회의 역할을 부분 위임하고, 포괄적인 시정공동운영 역할은 따로 논의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은 시정운영위에서 시정주민참여위, 참여예산위, 주민자치위(개선안)의 운영안 또는 기본 계획을 승인하고 시정운영위원회는 해소하며, 시정공동운영 역할은 시민사회연대 및 제 정당과의 개별 협의회로 대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20119월에 열린 마지막 전원회의에서 결국 시장의 뜻대로 되면서 위원회는 해소된다. 시정위의 제도화된 후속 기구로 상정된 시정주민참여위원회를 둘러싸고도 시(시장, 공무원)와 위원회 사이에 인식 차가 있었다. 시에서는 처음부터 시정참여위가 자문기구 이상의 실질적인 참여기구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평가하자면, 선거연합에 함께 한 민관정의 협치 시도였던 고양시정운영위원회는 초기에 시장과 위원회가 시정을 함께 운영하면서 보다 폭넓은 민관협치의 토대를 놓고자 했으나, 처음부터 합의 정신이 사실상 유실되면서 공동정부는 작동하지 않았고, 이는 실질적인 민관협치의 구현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시정공동운영기구를 처음부터 부담스러워하며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운영하려는 시장과 그 핵심 입안자로서 합의를 관철시키고자 했던 시민사회 대표들의 갈등과 대립으로 민관협치의 잠재적인 1차 파트너십 관계가 처음부터 소원해지면서 권한 배분과 위임을 골자로 하는 협치의 기본 토대도 형성되지 못했다. 정당 간 협의를 통한 협치도 아예 처음부터 거의 기대 밖이었고, 심지어는 시장의 출신 정당인 민주당 내에서조차 내실 있는 협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연대연합 정신은 유실되고 밑으로부터의 힘도 모아지지 못한 상태에서, 고양지역 시민사회는 위로부터의 개혁전략 하에 넓고 깊은 시민참여와 주민자치의 제도화 및 구현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고, 시정공동운영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시장도 원칙적으로 이에 동의하면서, 판은 이제 시정주민참여위를 비롯한 각종 시민참여기구의 구성, 형식적인 민관협치 기구들의 실질화, 주민자치와 시민참여의 확대라는 새로운 과제의 이행으로 전환된다.

 

 

3. 고양시 자치도시 추진 입안 및 구현 과정

 

(1) 입안 및 로드맵 구축

 

민관정 거버넌스의 시정공동운영 시도가 어그러졌다고 해서 도시를 주민 주체의 따뜻한 공동체 도시로 만들어가려는 노력마저 포기된 것은 아니었다. 고양무지개연대의 자산 목록에는 아직 ‘10대 의제, 100대 정책공약의 무지개협약이라는 자산이 있었고, 더욱이 시장은 이를 100% 자신의 선거 공약으로 수용하여 공표한 바 있었다.


고양시를 자치도시로 만든다는 설계의 발원지는 바로 이 무지개연대 정책공약의 10개 분야 중 하나인 넓고 깊은 자치도시였고, 여기에 시정운영위원회 설치, 운영을 포함한 10가지 굵직한 정책공약 하에 조금 거칠긴 해도 세부 내용까지 담겨 있었으며, 다른 분야들에도 자치공동체의 정신이 깊게 밴 공약들이 다수 있었다. 한편, 민선 5기 지방선거 직후에 만들어져 20일간 활동한 고양시장 인수위원회에서도 말미에 시정목표 등을 논의, 결정했는데, 여기에서도 시민들의 참여가 일상화된 자치도시5대 시정목표의 하나로 정해지며, 이는 시장 취임 직후 고양시에서 다음과 같이 예쁘게 다듬어 공표된다. ‘시민 우선의 자치도시가 민선 5기 제1의 시정목표로 자리잡는 것이다.

 

<그림> 민선 5기 고양시 시정목표


 

이후 시정운영위원회에서도 자치 관련 의제들이 여러 차례 핵심의제로 다루어진다. 사상 초유의 민관정 거버넌스 시도였던 시정운영위 자체도 넓은 의미의 자치 의제였을 뿐 아니라, 시정운영위의 후속 기구로 논의된 시정주민참여위를 비롯한 각종 참여기구들의 구성은 핵심적인 자치 의제였고, 주민자치아카데미가 최우선의 자치 사업으로 상정, 논의된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시민들의 참여자치가 활성화되는 것을 상당한 부담으로 느꼈으며, 시장도 굳이 속도감 있게 이를 추진하려 하지 않았다. 시정운영위원회에서 자치 관련 제1사업으로 주창한 주민자치아카데미 예산조차 결국 2011년도 본예산으로 수립되지 못하는 등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시정위의 시민사회 대표들과 시장 사이에 갈등이 깊어졌다.


2011년 봄 몇 가지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 고양지역 시민사회 핵심 활동가들 중심으로 설립된 고양지역사회연구소에 자치도시 추진 관련 연구용역이 맡겨졌고, 주민자치과장과 새로 온 팀장이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4월 추경에서 주민자치아카데미 예산이 수립되고, 주민참여조례가 제정되었다.


고양지역사회연구소에서는 척박한 고양시의 토양을 감안하여 시장과 관련 핵심 공무원들의 마인드를 일깨우는 데 초점을 맞추어 <참여와 자치를 통한 새로운 도시상 연구>라는 일종의 자치 입문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자치도시의 기본 틀과 고양시 적용 방안을 제시했다. 그해 7월 보고서를 읽고 주변의 의견을 들은 시장이 곧바로 연구소에 2차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고양시의 자치 로드맵을 작성해 달라는 거였다. 그와 함께 고양시의 제1회 주민자치아카데미가 규모 있게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고양시장과 고양지역 시민사회가 민관협치의 긴밀한 파트너십 관계를 회복한 것은 아니었다. 1회 주민자치아카데미 프로젝트는 고양시 외부의 업체에 맡겨졌다가 수탁 업체의 요청으로 그동안 자치교육의 밑그림을 그려온 지역사회 성원들이 운영을 지원하는 선에서 봉합되었다. 지역 시민사회에서 큰 관심을 갖고 제안한 바 있는 고양시의 새로운 미래 청사진 ‘2020 고양시 종합발전계획연구 프로젝트 역시 공개입찰을 거쳐 서울의 한 대학에 맡겨졌고, 지역사회에서 고양시의 따뜻한 공동체 미래를 고민해온 활동가나 전문가의 참여는 극히 제한적이거나 배제되었다. 시와 지역 시민사회의 파트너십 관계는 매우 지엽적인 수준에 머물렀고, 이후 자치도시나 개혁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이 같은 일이 거듭 반복된다.


고양지역사회연구소는 3개월간의 집중 작업 끝에 201112<고양시 자치 로드맵 작성 연구>를 마무리한다. 이때 작성된 고양시 자치 로드맵이 향후 자치도시 고양의 밑그림이 된다. ‘고양시 자치 로드맵은 고양시의 참여자치 체계를 시행정 주민참여와 지역별 주민자치의 투 트랙으로 잡고, 그에 대한 행정지원체계와 함께 향후 3년 동안의 조직 체계, 사업 및 일정을 상세하게 그려 제안한다. 그 기본 체계와 핵심 사업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자료: 고양지역사회연구소(2011: 61)

<그림> 자치도시 체계 총괄


 

<> 주요 사업 연간 로드맵(2011.12~2014)

구 분

기 구

201112

2012

2013

2014

시행정

참여

체계

시정주민참여위원회

운영 로드맵 및 실행계획 수립

로드맵의 실현

참여예산위원회

로드맵의 실현

과별 주민참여제

(과별 정책협의회,

온라인 시민참여단)

운영계획 수립

시 본청 10개 과 시범실시

시 본청 20개과 시범실시

시 본청 모든 과 실시, 구청 통합 실시

시 직속기관, 사업소, 산하기관 주민참여제

운영계획 수립

3곳 시범실시

전체의 1/2 실시

전체 기관 실시

시 부서별 위원회 활성화

운영계회 수립

로드맵의 실현

고양 정보 제공 2.0’

운영계획 수립

업무 협약 및 체계 구축

운영

주민참여 감사제

사례 검토

정책전환운영

운영

지역별

참여

체계

동 주민자치위원회

조례 개정 및 운영체계 수립

39개 주민자치위원회 개편 운영

체계 정착

권역별 협의회

마을별 자치회

실행계획 수립

시범실시

전면실시

자치공동체사업

실행계획 수립

점진적 확대실시

(20125, 201315, 201430)

행정지원

체계

시청

참여자치 업무 분산 대책 수립

자치도시 추진단

협의체로 전환

주민자치팀

주민자치팀

참여자치팀

주민자치 전담과

자치도시국

구청

주민자치팀, 주민자치 담당자

구청, 동의 주민자치 전담자 운영

자치공동체사업 지원

지원센터 설립운영계획 수립

고양 자치공동체사업 지원센터설립

운영

주민자치 교육

사업 위탁

자치

헌장 제정,

자치

도시 선포

자치헌장 제정, 자치도시 선포

계획 수립

자치헌장 제정위원회구성 및 초안 작성

의견 수렴 및 주민투표

201310월 자치헌장 제정 및 자치도시 선포, 전국 주민자치 박람회 개최

자료: 고양지역사회연구소(2011: 263)



2011년 말 고양시가 이 로드맵을 전폭 수용하고 이행계획을 수립한다. 그러나 주민자치과 외에는 참여자치 마인드가 전혀 형성돼 있지 않던 다른 부서들의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역시 자치도시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자치도시 추진을 시장의 정치기반 확대 의도로 의심하던 시의회 주류세력(한나라당 + 민주당 선거연합 반대파)이 이에 제동을 걸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시장도 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로드맵의 이행은 계속 지연되며 수정된다. 시 전체 차원의 자치도시추진단과 과별 정책협의회, 핵심 중간지원조직인 자치공동체 지원센터 등의 추진 보류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럼에도 고양시는 2012년부터 몇 가지 자치 관련 정책사업을 추진하고 새로운 기구와 지원체계를 마련하면서 고양시의 자치도시 플랜 추진을 본격화한다. 고양시정주민참여위원회와 5개 주민참여단이 발족하고, 자치공동체사업이 발을 내딛고, 주민자치교육이 계속되고, 민간 전문가가 함께 하는 자치 T/F가 활동하고, 자치 관련 1개 팀이 증설되면서 공동체 자치도시를 지향하는 새로운 발걸음이 시작된다.

 

자료: 고양시정주민참여위원회(2013: 11)

<그림> 고양시의 자치도시 추진 체계도




(2.) 구현 과정

 

자치도시 고양플랜의 초기 추진 주체는 고양시 주민자치과와 지역 시민사회 활동가들이었고, 고양시정주민참여위 구성 후에는 위원회 기획분과와 주민자치과가 긴밀하게 협의하며 중심을 잡아 나갔으며, 위원회가 시장과 관련 부서의 협조를 끌어내며 이를 뒷받침했다. 전 시 차원의 자치도시추진단 구성이 늦어지면서 한때 민관이 함께 하는 별도의 자치 T/F를 구성하여 자치정책 전반을 조율하기도 했다.


고양시는 고양지역사회연구소에서 제안하고 자신들이 현실적으로 조율한 로드맵을 따라, 지역별 주민자치 활성화와 시행정 참여자치 체계 구축이라는 두 날개를 펼쳐가며, 그에 대한 행정지원 체계를 정비, 강화하고자 했다. 그중 일부는 조금 더뎌도 차츰 자리를 잡아간 게 있는가 하면, 일부는 너무 지연되거나 아예 무산되면서 로드맵을 절름발이로 만들기도 했다. 자치도시 추진을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던 시의회 주류는 추진 정책과 예산에 계속 제동을 걸며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자치공동체사업이나 주민자치위원회 활성화, 주민참여예산 등 주민 주도의 사업이 더디게나마 일정 궤도에 오른 뒤에는 더 이상의 확대와 확산을 막는 소극적 견제 태도로 전환했다.


주민자치교육과 자치공동체사업, 시정참여 활동 등이 일정 궤도에 오르며 고양시는 자치 관련 상도 여러 차례 받으며 새로운 동기를 부여받기도 했으나, 이는 한편으로 보여주기 식 활동과 행정에 치중하는 폐단을 낳기도 했다. 시기별 자치도시 추진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기반 확립기(2011-2012)

 

2011년은 준비기였고, 2012년부터 자치도시 플랜이 본격 가동된다. 다만 주민자치교육만은 2010년 고양시정운영위에서 고양시 자치도시 추진의 1순위 사업으로 적극 제안하면서 이듬해인 2011년부터 시작된다. 고양시정위의 제도화된 후신으로 상정된 시정주민참여위원회와 주민참여예산제도 2011년에 법제화 제정을 거치며,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센터 운영 관련 조례와 규칙도 재정비되고, 2011년 말에는 고양시의 자치 로드맵이 완성된다.


2012년에는 지역별 주민자치와 시행정 참여자치의 투 트랙을 따라 다양한 사업들이 펼쳐진다. 주민자치교육과 함께 자치공동체사업을 시작하고, 동 주민자치위원회 활성화 사업도 착수한다. 시정주민참여위와 주민참여단, 주민참여예산제, 시민감사관제가 발족하고, 위원회 관리 조례가 제정되어 각종 시 위원회의 통합 관리가 시작되며, 시민감사관제도 운영된다. 거버넌스형 급식지원센터가 설립되고, 복지나눔 1촌맺기 사업과 일자리창출, 노사민정 거버넌스도 모습을 드러내며, 온라인 시민참여 확대 플랜도 가동된다. 행정지원 면에서도 주민자치과에 1개 팀이 보강되고, 주민자치 관련 예산이 확대된다. 시민과의 소통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시도되고, 여러 사업에서 민관협치가 모색된다.


자치 로드맵 외에 이 과정의 또 다른 동력 기반은 시장의 공약이었다. 지역 시민사회는 시 공무원들과 함께 여러 차례 테이블을 갖고서 공약의 실질적 이행을 촉구했다. 공무원들과 얼굴 붉히는 논쟁도 여러 차례 벌어졌고, 부분적이나마 상호 이해를 돕는 진지한 협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시민들과의 협력 경험이 부족한 공무원들에게 이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이런 과정을 통해 민을 대하는 공무원들의 태도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그러나 법과 제도의 형식적 틀 속에 익숙해 있던 공무원들이 혁신적인 정책을 혁신적인 방법으로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했다.


시의원 다수는 대체로 자치도시 추진 정책에 부정적인 의식을 갖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며 초기 기반 구축에 오히려 제동을 거는 역할을 했다. 시민들의 시정 직접 참여를 자기 영역의 침범이나 권한의 침해로, 적극적인 참여자를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같은 선거구에서 2-3명의 동료 의원이 경쟁하며 활동하는 중선거구제도 시의원의 주민자치 적극 지원을 자극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2) 확산기(2013-2014)

 

2013년에는 시정주민참여위원회와 주민참여단이 2012년의 준비 및 시험 가동 과정을 거친 후 연중 활동에 들어간다. 주민참여예산제도 준비기간을 거쳐 본격 가동을 시작하고 시민감사관도 활동에 착수했다. 100개가 넘는 시의 각종 위원회도 운영 매뉴얼에 따라 정보를 공개하고 공개모집을 통해 민의 참여를 늘리고 민관협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며, 도시재생갈등조정위원회를 비롯한 새로운 거버넌스 기구들도 만들어진다. 또한 온라인 참여의 체계적인 첫 발걸음으로 고양시 주민자치 온라인이 선을 보이며, 시의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소통도 강화된다. 대규모 주민자치교육이 계속 이어지고,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센터의 활성화 노력도 강화되고, 자치공동체사업도 소폭이나마 예산을 늘려가며 다양하게 확산되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일종의 자치헌법인 자치헌장 조례 제정도 시도했다. 이와 함께 서울시 주민기피시설 문제 해결이나 생태하천 살리기, 복지나눔 1촌맺기, 나눔장터 등의 사업에서 민관협력 모델들이 만들어져 나오기 시작하며, 지역경제공동체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들도 다수 창설된다. 민선 6기 지방선거가 있던 2014년에는 새롭게 시도된 사업들은 별로 없었지만, 대체로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다.


2012년에 이어 2013년에도 고양시 주민자치는 전국주민자치박람회 주민자치제도정책 분야 최우수상 등 큰 상을 몇 개 더 받는다. 이를 계기로 시장은 주민자치와 시민참여의 발전도 치적이 될 수 있음을 실감하면서 다소 적극적인 태도로 전환한다. 자치도시나 시민참여, 민관협력을 강조하는 시장의 목소리에 조금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민들과의 협력에 익숙지 않던 공무원들도 협의 경험이 쌓이고, 시민 접촉면이 넓은 부서들에서 시민 협의가 일상화되면서 서서히 자치 마인드에 눈을 뜨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대규모 주민자치교육이 계속되고, 각종 시민참여기구나 자치공동체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제한적이지만 주민참여의 확산도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다. 시의회 주류는 여전히 자치도시 플랜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자치공동체지원센터 추진, 예산 증액 등에 제동을 걸었지만, 주민들 속에 뿌리내려가는 자치공동체사업 등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나마 인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중 자치헌장 조례 제정 시도와 좌절은 자치도시 추진이 그나마 가장 탄력을 받고 있던 2013년 당시 고양시의 민관협치 지형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자치헌장 제정은 2010년도의 고양무지개정책협약과 시장 공약, 그리고 2011년도의 자치 로드맵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진 정책으로, 자치도시 고양시의 상징과도 같은 일종의 자치헌법이었다. 자치헌장 조례는 2013년 한 해 동안 고양시 자치헌장제정위에서의 10여차에 걸친 심도 깊은 토론과 고양시정주민참여위의 논의를 거쳐 기본안이 성안되었으나, 2013년 말 결국 추진 주체와 경로의 문제로 보류되고 2014년 이후에는 더 이상 핵심 의제로 다뤄지지 못한다.

 

3) 정체기(2015- )

 

2014년 민선 6기 지방선거에서 시장은 재선에 성공했으나 민선 5기 때와 달리 강력한 야권연대연합의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연합정치와 시정공동운영 좌절의 후유증을 크게 앓고 있던 고양지역 시민사회도 선거에 비교적 느슨하게 개입하면서 낮은 수준의 선거연대를 추진했다. 선거 직전에 만들어진 무지개연대 2.0’은 야권의 일부 후보를 지지후보로 선정하고, 그들과 정책연합이 아니라 낮은 수준의 정책연대룰 추진했다. ‘무지개연대 2.0’의 정책을 제안하고 지지후보들이 이에 동의, 수용하는 수준이었다. 정책연합 차원에서 무지개연대의 정책공약을 자신의 핵심 공약으로 전폭 수용했던 민선 5기 때와 달리, 시장의 정책공약은 고양무지개연대 2.0’의 정책 제안, 고양지역사회연구소의 <고양100만대도시 준비를 위한 학술연구>에 수록된 ‘100만 대도시 고양100대 정책과제 등을 수용, 참고하며 시장 스스로 준비했다. 민선 5기 때에 비해 지역 시민사회와의 약속의 강도가 훨씬 약했다.


시의회에서는 4년 전과 거의 유사한 과정이 되풀이되었다. 시민들은 이번에도 민주당 + 소수야당(정의당)에 의회의 다수파 권력을 위임해주었으나 이번에는 민주당 보수파 일부 의원들이 아예 탈당하면서 의회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사실상 의회를 장악했다. 이러한 의회 지형은 개혁 정책 추진이 막힐 때 시장에게 좋은 빌미를 제공했고, 이런 조건들 하에서 시장은 독선적인 자기 정치를 시작했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민선 5기와 6기 사이에 정책기조나 방향에 별다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민선 6기는 민선 5기의 연속선상에 있었고, 자치도시를 지향한다는 큰 흐름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자치도시의 초기 입안, 구현자들이 1기 또는 2기의 임기를 채우고 또는 중도에 실망하거나 지쳐서 그만두고 새로운 멤버들이 충원되었다. 중요한 참여기구의 대표급 인사로 고양지역사회의 정체성이 거의 없는 외부 명망가를 영입하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정책지향이나 참여의지보다는 구색 맞추기나 연고를 중시하는 위원 선정 경향도 좀 더 강화되었다. 여차하면 시민참여기구가 종전의 형식적 자문기구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었다.


민선 5기 때 신설된 시정주민참여위와 주민참여단을 비롯한 각종 시민참여기구들은 여전히 활동을 계속했고, 자치공동체위원회와 인권증진위원회 등의 새로운 거버넌스 기구도 신설되었으며, 주민자치교육이나 자치공동체사업도 이전과 큰 차이 없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성장 속도의 둔화 또는 정체는 위기의 신호이기도 했다.


자치도시 추진의 가장 큰 애로점은 민선 5기 때 시도했다가 좌절된 자치도시 추진 사령탑, 즉 시장 또는 부시장 직속의 자치도시추진단, 민과 관의 가교 역할을 하며 자치공동체의 성장을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의 부재였다. 자치도시추진단은 자치도시 추진 주무부서인 주민자치과로서는 버거운 업무, 즉 시의 각 부서들의 시민참여 행정을 조율하며 시민참여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는 상설 기구로 상정된 것으로서 시장이 강력한 의지를 실어주어야만 설치될 수 있는 것이었으나, 민선 6기에 들어와서는 결국 시도조차도 거의 못한 채 포기하고 만다.


중간지원조직인 자치공동체지원센터는 실로 4년여의 우여곡절 끝에 20169월 문을 여는데, 지역 정체성과 전문성, 조직 체계에 심각한 의문이 가는 3자 컨소시엄이 기관의 수탁 운영자로 선정되면서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주민자치교육 위탁 등의 문제에서도 여러 차례 드러난 바 있듯이, 주민들의 자치역량을 배양해가는 원칙과 경로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3자 컨소시엄이 회계 부정 문제로 중도 탈락한 뒤에도 다시 한 번 비슷한 과정이 되풀이되며, 민선 6기는 마침내 씁쓸한 종말을 고한다.


초기 약 4년간 다양한 기구둘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사업들이 펼쳐지면서 확산돼오던 시민참여가 정체되면서 그들만의 리그의 함정에 빠진 듯한 경향을 보이는 것도 큰 문제다. ‘그들은 여기저기 참여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데, ‘리그바깥의 시민들은 제도나 기구의 존재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멋지고 폼 나는 자리를 좋아하는 시장의 성향에 시민참여가 들러리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도 자치도시 추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 요소였다. 그럼에도 저 밑바닥에는 시민들의 강력한 참여 욕구가 꿈틀거리고 다방면에서 그 욕구가 분출되고 있다. 저간의 이러저러한 시도와 노력들이 대의민주제라는 답답한 틀 속에 갇혀 있던 시민들의 주체 의식의 뇌관을 건드린 것만은 분명하다.

 

(3) 평가와 반성

 

자치도시 추진은 긴 여정으로서, 단 몇 년 만에 성과를 내며 정착하기는 힘들다. 그런 면에서 지난 8년에 대한 평가는 중간 평가일 수밖에 없다. 고양시의 자치도시 추진 8년을 한마디로 평가하면, 제도는 나름 훌륭하고 겉보기엔 화려해 보이나 속은 채워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국 주민자치박람회 제도정책 분야 최우수상 등 지금까지 30개가 넘는 큰 상을 받았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고 일반 시민들의 체감도도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전국 최고의 자치도시를 지향한다는 고양시로서는 지난 8년을 아프게 돌아보며 새로운 모색을 해야 할 시기다.


제도는 여전히 보완할 점이 많지만 비교적 두루 갖추어진 편이다. 그러나 매너리즘을 경계하고 늘 피드백을 받으며 재정비, 보완을 해가야만 살아 있는 제도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고, 제도와 기구들을 총괄하는 사령탑을 시급히 구축해야만 통합 조정 기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시민참여 측면에서는 한동안 적극적인 시민참여가 크게 확산되었으나, 증대 속도가 느려지면서 정체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들만의 리그를 탈피하여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늘려가는 새로운 시도와 노력들이 필요하다.

 

1) 참여 주체별 평가

 

먼저 자치도시 추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던 단체장을 살펴보면, 시장 자신의 미래와 공동체 고양시의 미래가 겉도는 경향이 심해졌다. 시장이 바라보는 지점과 고양시민 공동체가 지향하는 지점이 본디부터 차이가 있었는데, 그 간극이 갈수록 더 커져간 것이다. 시장이 진정성을 보이며 지역의 폭넓은 시민사회와 시민들을 동원 대상이 아닌 진정한 파트너로 여길 때 시민들은 참여에서 보람을 느끼며 공동체를 발전시켜가게 된다.


관치행정에 익숙해 있던 시 공무원들은 그동안 많이 달라졌으나 아직 멀었다. 주어진 업무에는 성실한 편이나 적극성이 아쉽다. 시민의 공복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시민들과의 협력 마인드를 키워가야만 내외의 조건들에 휘둘리지 않고 시민과 함께 하는 공복으로서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의회를 보면, 시의원 상당수가 여전히 자치도시 추진에 경계심을 품고 있거나 소 닭 보듯 하는 경향이었다. 대의민주제와 시민참여자치는 대립물이 아니고 보완재라는 의식을 가질 때 자신의 성장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대의민주제에 시민참여자치라는 직접민주제가 긴밀하게 결합돼야만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 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시민사회는 그들만의 리그로 정체돼 있다. 일반 시민들과의 접촉면을 확대하여 힘을 키워가야만 다른 주체들을 견인하며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고, 시민 일반의 욕구에도 부응할 수 있다. 주민들의 다양한 참여 창구를 활짝 열어 참여의 기회를 갖고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하면, 주민 모두가 철학자, 전문가가 되어 사회의 주역으로 우뚝 설 수 있고, 그런 과정을 통해 권력과 자본의 과두지배에 맞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민의 역량이 축적된다.

 

2) 참여기구 및 핵심 사업 평가

 

제도는 다양하게 갖추었으나, 사령탑이 취약하다. 사령탑을 확실하게 구축해야 일관성, 지속성, 책임성을 담보하고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또한 여전히 실질적인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고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기구가 많다. 참여자들이 확실한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의 적절한 배분과 위임이 필요하다. 다소 미흡하더라도 시민제안 사업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시민참여가 활성화된다.


자치도시 추진 관련 제1차 우선 사업으로 추진해온 주민자치교육은 지난 8년간 7천 명 가까운 수료자를 배출했으나, 중복 수강자가 많아 총 4천 명 정도가 교육을 이수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한 성과이나, 향후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실행해야만 정체 국면을 타파하여 한 단계 비약할 수 있다. 고양시 사정을 잘 모르고 전문성도 의심스러운 외부 업체나 기관에 주민자치교육을 맡기는 것은 명백한 예산낭비일 뿐 아니라 오히려 주민자치의 성장에 해를 끼치는 행위다.


자치공동체사업은 지난 7년간 22억여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300여 개 사업을 추진했다. 새로운 사업 주체들이 계속 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나 여전히 개선할 점도 많다. 공모사업보다는 공동체활동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지원 인프라와 플랫폼 구축에 힘쓰며, 자산 취득, 최소 운영 인건비 지급 등을 가능케 하는 길을 찾고 회계처리 행정을 최대한 간소화하는 등 운영 방안을 개선해야 보다 다양한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고, 공동체 형성, 발전이라는 목표도 보다 크고 넓게 달성할 수 있다.


공동체 활성화와 주민역량 강화, 네트워크 구축 등을 목표로 설립된 중간지원조직인 자치공동체지원센터는 지난 2년 반 동안 파행적으로 구성, 운영되며 사실상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25억 원 가까운 피 같은 예산을 공중에 흩뿌려버렸다. 중간지원조직이 어떤 가치와 목표 하에 어떤 사람들로 어떻게 구성, 운영돼야 하는지에 대한 값비싼 수업료를 치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