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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이야기

20세기, 그 광란의 질주

주홍산 2009. 10. 16. 02:37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많은 사람들이 20세기는 평화와 번영의 시기가 되리라고 내다보았다. 과학도 충분히 발달했고 발명될 것도 다 발명되었으니, 이제 그 성과를 기반으로 모든 인류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곧 올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20세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과 폭력, 갈등과 대립, 지배와 억압과 저항으로 얼룩진 시대였다. 끝났다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후 점점 더 속도가 붙어 모든 방면의 변화를 부추겼고, 그 성과가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많은 문제를 낳았다. 모든 분야에서 광란의 질주가 벌어지면서, 인류를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의 시대’로 몰고갔다.



바야흐로 세기가 바뀐 지도 이제 어언 10년, 갖가지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는 있지만, 앞으로 100년 뒤, 아니 50년 뒤, 아니 20년 뒤의 세계조차도 자신을 갖고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예측을 우습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불확실한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큰 흐름까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큰 줄기를 잡아 보고 거기에다 몇 가지 변수들을 결합시키면 21세기의 큰 흐름은 예측할 수 있다. 20세기를 큰 눈으로 한번 훑어보자.

20세기는 제국주의의 거대한 물결과 함께 시작되었다. 세계의 7-8개 강대국이 전지구를 나누어 차지하여 거대한 식민 제국을 형성했고, 이들의 다툼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불러왔다.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가 터지면서 세계의 한 부분에 사회주의권이 대두했고, 20세기 중엽부터는 자본주의권과 사회주의권 사이의 동서 냉전이 세계를 지배했다. 1990년경 동서 냉전이 해체되면서 세계는 전지구적인 자본주의 체제로 돌아갔고, 이 새로운 제국주의는 이제 세계화라는 포장을 뒤집어쓰고서 온 세계를 자신의 발 아래 무릎 꿇려 가고 있다. 20세기는 제국주의로 시작하여 신제국주의로 마감한 셈이다.

제국주의의 가장 큰 동력은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이었다. 19세기 말의 과학혁명과 제2차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선진국들의 세계 진출 기반이 되었고, 20세기 초의 과학기술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체제를 가져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동서 냉전시에 개발된 첨단 기술들은 다시 20세기 후반의 과학기술혁명의 토대가 되었고, 그 성과를 재빨리 흡수하는 데 성공한 자본주의 체제가 사회주의권을 무너뜨리며 세계를 다시 단일한 자본주의 체제로 만들었다.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과 생명공학의 쌍두마차가 이끄는 20세기 말의 과학기술은 이제 우리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 가며, 온 인류를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세계로 몰아가고 있다.

발달한 과학기술은 이 밖에도 인류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의학과 농업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세계 인구는 20세기 초의 16억 5천만에서 이제 67억으로 늘었다. 라디오.TV.통신 등 대중매체의 발달은 대중의 영향력이 커진 대중사회를 여는 한편, 시간과 거리의 간격을 크게 좁혀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널리 퍼진 대중문화를 통해 세계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문제는 발달한 과학기술이 이윤 창출을 위해 쓰이며 빚어 내는 온갖 폐해들이다. 최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한 최근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흐름에서 그 극단화된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다. 무한경쟁이 최고의 가치로 숭상되는 가운데, 이긴 자는 살아남고 진 자는 죽는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위한 보호 장치는 줄어들고, 국민경제를 지키기 위한 장벽들은 제거된다. 자본의 자유를 늘리기 위해 노동시장은 크게 유연화되어, 불완전 취업자와 실업자가 크게 늘어난다. 실물경제에서 떨어져 나온 뭉칫돈들이 세계의 금융시장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국가간, 계층간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공동체는 파괴되며, 환경은 악화된다.

이에 대한 저항이 없을 리 없다.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대안을 모색해 온 20세기의 사회주의와 민족해방운동은 일단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약육강식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계속 불거져 나오면서 다양한 형태의 저항 운동들이 거세게 일고 있다. 21세기는 무한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떠받드는 세력과 이에 맞서 자유롭고 평등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열려는 폭넓은 진보 세력 사이의 한바탕 큰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