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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국주의와 제1차 세계대전(1900-1918)

1900년을 전후하여 강대국들의 세계 분할이 끝났다. 아시아.아프리카는 물론 태평양의 섬나라들까지도 7-8개 강대국이 나눠 차지하며 거대한 식민 제국들을 형성했다. 선두 주자는 여전히 영국이었지만, 제국주의 열강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영국이 미국에 세계 제일의 공업국 자리를 내 주더니, 곧 독일에까지 따라잡혔다. 일본이 러시아를 물리치며 동아시아의 새끼 호랑이로 나서더니, 이내 우리 나라를 집어삼켰다. 유럽에서는 전통 강대국인 영국.프랑스.러시아(3국 협상)와 신흥 세력인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3국 동맹)간의 갈등이 깊어 갔다.

강대국들에 짓밟힌 식민지와 반식민지에서는 민족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멕시코와 투르크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 인도에서는 자치 운동이 활발해졌으며, 우리 나라에서도 의병 투쟁과 무력 항쟁이 펼쳐졌다. 의화단 운동이 꺾이며 제국주의 열강의 밥이 되었던 중국은 신해 혁명으로 중화민국을 세우고 민족 자주와 근대화를 향한 몸부림을 친다. 제국주의 국가 안에서도 노동자와 여성들이 노동권과 참정권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을 활발하게 벌였고, 후진 자본주의 국가인 러시아에서는 혁명운동이 열기를 띠어 갔다.



탐욕스런 제국주의는 기필코 전쟁을 불러왔다. 대립하던 강대국들이 발칸 문제를 구실로 제1차 세계대전을 시작하여 온 국민을 총력전으로 몰고갔다. 4년 남짓한 전쟁 끝에 2천만 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고 유럽 대륙의 많은 지역이 잿더미로 변했다. 1918년 말의 독일 혁명으로 독일 제국이 무너지며 제1차 대전은 결국 협상국 쪽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중에 획기적인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소비에트 정부는 국내의 반혁명 운동과 제국주의 열강의 간섭전쟁을 물리치며 세계 지도 위에 사회주의 국가를 올려놓았다.

발명될 건 다 발명되었다는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20세기 들어 더욱 놀라운 발견과 발명이 계속되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고, 무선통신이 대서양을 넘더니 이내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었다. 혈액형이 발견되고 진공관도 발명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여 뉴턴 물리학을 뒤흔들었다.

20세기 초에는 이 밖에도 여러 방면에서 현대의 시작을 알리는 변화들이 일어났다. 야수파와 입체파 등이 현대 미술을,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 등이 현대 음악을 선보여 큰 충격을 주었다. 노벨 상과 올림픽 경기는 세계가 하나 되는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새로운 대중매체로 떠오른 영화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더니, 할리우드 시대가 시작되면서 영화 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올랐다. 포드 자동차에서는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하여 대량생산의 시대를 열었다.


2. 두 차례 대전 사이의 세계와 파시즘(1918-1937)

1차 대전이 끝난 뒤 베르사유 체제가 등장했다. 베르사유 체제는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다지기 위한 체제였으나, 전쟁 책임을 몽땅 독일에 지우고 미국이 참여하지 못하는 등, 많은 문제점과 불씨를 안고 있었다. 그래도 1920년대에는 국제연맹이 설립되고 국제 조약들이 맺어지면서 세계가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1차 대전 직후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고 독일에 바이마르 공화국이 세워지는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향상되었다. 전쟁의 덕을 본 미국에서는 자동차 혁명, 매스컴의 발달과 더불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기반으로 하는 대중사회가 열렸다. 라디오와 음반의 보급을 계기로 재즈 열풍이 불면서 대중문화가 대두하고, 사람들이 영화에 빠져드는 가운데 TV까지 등장했다. 독일의 바우하우스에서 시작된 건축물의 혁명도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중국에서는 5.4운동의 물결이 대륙을 휩쓴 뒤 1928년 국민 혁명이 완수되었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난 뒤 다양한 민족운동들이 전개되었다. 인도에서도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고, 투르크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터키 공화국이 들어섰다.

1929년의 세계 대공황은 1차 대전 뒤의 짧은 호황을 바탕으로 한 세계의 안정을 한순간에 날려 버렸다. 생산 과잉으로 경제가 무너지며 침체에 빠져든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공황은 곧 전세계로 퍼져,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생산이 크게 줄고 실업자가 크게 늘었다.

미국은 뉴딜 정책으로 상황을 돌파하고자 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본국과 식민지의 경제를 한데 묶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독일과 일본도 발칸 지방이나 아시아 국가들과의 단일 경제권 수립을 꾀했다.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다시 갈등이 불거지며 전쟁의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강대국 중에서는 소련만이 대공황의 영향에서 비껴나 있었다. 이 시기에 소련은 1, 2차 5개년계획에 성공하여 강대한 공업국으로 변신했다. 그와 함께 지나친 중앙집중과 관료주의, 지도자 숭배 등의 문제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위기를 타고 폭력으로 독재 체제를 유지하려는 파시즘 세력이 날뛰기 시작했다. 파시즘 체제가 처음 등장한 것은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에서인데, 이후 히틀러의 독일에서 가장 야만적인 형태를 드러냈다. 히틀러는 반공주의, 국수주의, 보복주의, 인종주의를 부추기며 미친 개처럼 국민들을 전쟁으로 몰고갔다. 일본도 만주 사변을 일으키는 등 노골적인 침략에 나섰다. 독일.일본.이탈리아의 세 나라는 파시스트 집단을 형성하여 세계 정복의 야망을 드러냈다.

그러자 각 나라의 진보 진영은 파시즘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모아, 몇몇 나라에서 진보적인 공화 정부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파시즘 세력이 독일.이탈리아를 등에 업고 반란을 일으켜 내전이 벌어졌다. 스페인 내전에서 서방 여러 나라는 불간섭 정책을 취했고, 공화 정부는 국제 의용병의 지원하에 분투를 계속하다 무너지고 말았다. 일본의 전면적인 침략에 직면한 중국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이 이루어져 항일 민족통일전선이 결성되었다.


3.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 체제 확립(1937-1950)

1935년쯤부터 독일.일본.이탈리아 등 파시즘 세력들이 노골적으로 세력을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자기 나라의 안전과 이익을 우선한 나머지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미국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했다. 1937년에는 중일 전쟁이 전면전으로 발전했고, 1939년에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마침내 불안한 타협이 깨어지며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1941년에는 독일-소련 전쟁과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면서 온 세계가 전쟁에 휩싸여 들어갔다.

2차 대전에서는 1차 대전 때보다도 더한 총력전이 펼쳐져 경제력과 기술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커지고, 피해도 훨씬 컸다. 6천만에 이르는 소중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고, 나치스의 대학살로 6백만 유태인이 학살당했다. 제트 기와 로켓, 미사일 등이 새로운 병기로 등장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원자폭탄이 떨어져 한순간에 두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2차 대전은 제국주의 전쟁인 동시에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전쟁, 식민지의 독립 투쟁이기도 한 복잡한 성격의 현대전이었다.

1945년 독일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며 2차 대전은 마침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고, 전쟁중에 미.영.소를 비롯한 연합국의 정상들은 여러 차례 회담을 갖고 전후 세계의 새로운 틀을 짰다. 대전 후에는 이전의 국제연맹보다 훨씬 짜임새를 갖춘 국제연합이 국제 평화유지 기구로 설립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 전쟁에 질려 버린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와 안정을 갈망했다.

그러나 전쟁중의 소련의 활약과 희생, 피압박 민족들의 투쟁에 힘입어 사회주의가 큰 세력을 얻으면서, 전후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의 두 편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두 진영 사이에 언제 다시 불붙을지 모르는 ‘냉전’이라는 이름의 대립과 긴장 상태가 시작되었다.

오랜 동안 제국주의의 압박에 시달려 온 아시아 민중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압제의 틀을 깨고 해방과 독립을 쟁취했다. 인도는 종전 직후 세 나라로 갈라져 독립했고, 중동과 동남아에서도 대부분의 나라가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중화 인민공화국을 세웠고, 우리 나라는 해방 후 동서 냉전의 영향으로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한편, 2차 대전중에 대포의 탄도를 계산하기 위해 개발한 컴퓨터가 대전 후에 공개되어, 여러 분야에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 컴퓨터의 성능이 점점 좋아지며 새로운 문명의 싹을 틔우는 총아로 떠오른다.


4. 냉전 체제하의 대립과 발전, 균열(1950-1973)

동서 냉전은 동서 두 진영, 특히 미국과 소련의 군사력과 정보력, 경제력을 총동원한 ‘차가운 평화’ 속의 총력전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모든 분야에서 날카롭게 대결하며 세계를 긴장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런 중에 간간이 6.25와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 전쟁 등 ‘뜨거운 전쟁’이 벌어졌고, 미.소간 핵무기 경쟁의 과열로 지구를 수십 차례나 파괴할 수 있는 양의 시한폭탄이 만들어졌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에는 핵전쟁 직전까지 치닫기도 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냉전 체제도 스탈린의 죽음 이후 천천히 누그러지기 시작하여, 1970년대 초 ‘긴장 완화’ 물결과 함께 해체될 조짐을 보이기에 이른다.

1960년을 전후해서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 해방과 독립을 쟁취했다. 아시아.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은 제3세력을 형성하여 발언권을 키운 뒤, 선진국을 향해 ‘남북 문제’(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정치적 독립이 경제적 독립으로까지 이어지질 못하고 이전의 종주국이나 다른 선진국에 경제가 얽매이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한편, 엄청난 전쟁 피해를 복구하고, 군사 목적으로 개발된 기술들을 산업에 이용하게 되면서, 서방 자본주의 세계는 ‘황금기’를 맞았다. 냉전과 그에 따른 군사 수요도 오히려 경제 성장을 도왔다. 전후 자본주의 세계는 미국의 뒷받침하에 전에 없던 황금 시대를 맞으며, 거의 한 세대 동안 고도 성장을 계속한다. 서유럽과 일본은 곧 전쟁의 잿더미를 헤치고 일어났고, 서방 여러 나라에 ‘복지국가’가 출현했다.

사회주의권에도 이 시기는 황금기였다. 소련은 그 동안의 계획경제가 빛을 보면서 빠른 속도로 전쟁 피해를 극복하고 사회주의 체제의 기틀을 다졌으며, 동유럽 등 사회주의권의 여러 나라도 소련을 모범삼아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갔다. 소련은 또 제3세계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여러 나라가 완전 독립을 달성해 사회주의적인 방향으로 나라를 발전시켜 가도록 이끌었다.

동서 두 진영은 평화 공존 정책을 취하며 체제 경쟁에 돌입했다. 두 진영은 서로를 비난하고 견제하고 싸우면서도, 알게 모르게 서로를 닮아 갔다. 서는 동에서 계획과 복지의 개념을 받아들였고, 동은 서에서 경쟁과 이윤 요소를 도입했다. 그러는 사이에 중.소 대립이 거세지고, 제3세계의 발언권이 커지고, 서유럽과 일본이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권으로 자리를 잡아 가면서, 세계는 미.소 양극 시대에서 다극 시대로 접어든다.

이 시기에 과학 분야에서는 DNA 구조 발견으로 생명의 신비가 벗겨지기 시작했고, 우주 개발이 진행되어 인공 위성이 발사되고 인간이 처음으로 외계에 발을 내딛는 쾌거를 이루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대중음악이 활짝 피면서 대중문화를 이끌었고, 1968년을 전후해서는 서방 선진국들에서 청년들의 반체제 운동이 거세지면서 신사회 운동이 태동했다.


5. 위기와 붕괴의 시대(1973-1991)

오랜 고도 성장은 1973년 고정환율제 붕괴와 석유 파동을 계기로 막을 내렸다. 자본주의 경제는 1974년에 전후 최초의 대불황을 맞은 이래 다시 큰 폭의 오르내림을 반복하기 시작했고, 성장률도 황금기에 비해 눈에 띄게 떨어졌다. 고도 성장기에 축적된 자본은 무한경쟁을 부추기며 세계화의 속도를 높여 갔고, 갈 곳 없는 자본은 돈 자체에 대한 투자를 시작하여 금융시장을 팽창시켰다. 1970년대 들어 한층 더 속도가 빨라진 과학기술혁명은 생산과 유통, 정보통신 부문에 커다란 혁명을 일으키며 인간의 생활 방식을 크게 바꾸어 가기 시작했다.

황금기의 종말은 그 시대를 주름잡던 케인스주의에도 사망 선고를 내리고, 그 뒤를 이어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을 출현시켰다. 신자유주의는 위기에 몰린 자본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주어 위기를 헤쳐 나가게 하는 데 일차적인 목표를 두는 이론으로서, 그 과정에서 많건 적건 자유 시장의 원리를 거스르는 국민국가와 복지제도, 노동운동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자본간, 국가간, 개인간의 무한경쟁이 불붙으면서, 불평등과 불안정성이 확대되고 실업이 늘어나며 사회보장은 후퇴하고 환경과 공동체는 파괴된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무한경쟁을 다시금 제일의 지도 원리로 받아들인 자본주의 체제는 과학기술혁명의 성과를 재빨리 흡수하여 위기를 돌파하는 데 일단은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한때 서유럽과 일본에 추격당하는 듯하던 미국이 다시 주도권을 거머쥐었다.

반면에 관료주의에 빠진 사회주의권은 사회주의의 이상도 구현하지 못하고 자본주의의 성장 속도도 따라잡지 못한 채, 마침내 체제 경쟁에서 손을 들고 말았다. 1990년을 전후하여 사회주의권은 자유화의 광풍이 밀어닥치는 가운데, 그 동안에 쌓아 온 탑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다시 자본주의의 변두리로 전락하고 만다. 그와 더불어, 미.소 양극의 냉전 체제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더 벌어지던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는 1980년대 이후 더욱 크게 벌어지면서, ‘남북 문제’를 인류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게 했다. 한쪽에서는 소화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건이 만들어져 갖가지 문제가 빚어지는 반면에, 한쪽에서는 10억이 넘는 인구가 굶주려 죽어 가는 상황이 벌어지기에 이른 것이다. 드문 예외로서 몇몇 신흥 공업국이 착실하게 산업화를 진전시켜 선진국에 버금가는 상태에 이르는가 싶었으나, 1980년대에 라틴 아메리카의 몇몇 나라가 거센 경쟁과 금융시장의 파도에 휩쓸려 시지프의 바위처럼 굴러떨어지며 그 가능성에 짙은 의문을 안겨 주었다.


6. 새 천년을 향하여(1991-1999)

점점 빨라지는 과학기술혁명은 20세기 말에 인터넷과 생명 복제라는 두 가지 뜻깊은 성과를 일구어 냈다. 인터넷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한 WWW(월드-와이드 웹)는 실제 세계를 모방한 가상 세계를 출현시켜, 그 무한한 가능성을 개척해 가고 있다. 역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생명 복제 기술은 한편으로 인간 복제의 가능성을 상기시키며 인류에게 다시금 과학의 유용성과 윤리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남아도는 세계의 뭉칫돈은 정보통신의 발달에 힘입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국경을 넘나들며 전세계의 금융시장을 헤집고 있다. 우루과이 라운드의 타결로 탄생한 WTO(세계 무역기구)는 전세계의 완전한 자유무역지대화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뛰고 있다.

냉전 해체 이후 세계의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발달한 정보산업과 금융시장을 토대로 경제적으로도 최강의 자리를 다시 굳혔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물론 2차 대전 직후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미국은 부강한 나라’를 노래하기에는 충분한 정도다. 미국은 정치적으로도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라크와 유고 등 여러 나라가 미국의 비위를 거슬렀다가 큰 코를 다쳤다.

유럽은 옛 명성을 되찾고자 대대적인 통합에 나섰다. 일본은 불황의 굴레에 빠져 버둥거리고, 우리 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신흥 산업국들은 라틴 아메리카에 이어 다시 세계 금융시장의 파도에 휩쓸렸다. 소련을 비롯한 옛 사회주의권은 여전히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

무한경쟁의 논리가 판치고 약육강식의 세계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남북 문제’와 빈부의 양극화, 환경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세계화 자체에 대한 의문도 강력하게 일고 있다. 무한경쟁과 세계화의 논리는 막힘 없이 툭 터진 거대한 시장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거대 자본의 논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류는 국가간, 지역간, 집단간, 민족간, 자본간, 개인간에 그야말로 사활을 건 경쟁을 치르며 21세기를 맞았다. 그와 함께, 이러다가는 함께 망할지도 모른다며 더불어 사는 세상의 근본 원리를 돌이켜보자는 이성과 양심의 소리 역시 갈수록 높아 가긴 하지만,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야수성의 고삐를 틀어쥐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듯하다. 인류의 21세기는 그 야수성을 부추기는 요인들을 어떻게 제어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