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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른봄이던가, 고양시 능곡의 반디교실 개소식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 끝나고 갈 곳도 없이 방치돼 있던 저소득층 맞벌이가정, 한부모가정, 조손 가정의 아이들을 모아 무료 방과후 교실을 열었던 거지요.
보금자리는 달랑 18평짜리 연립주택 한 채, 개소식도 집 안은 공간이 너무 비좁아 집 앞 놀이터에서 했었지요.
겨우내 준비하여 간신히 공간을 열었건만, 지원 요건을 갖추지 못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도 한 푼 받지 못하고 무임금 자원 교사에 후원금만으로 겨우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을 맘껏 뛰어놀게 하다 보니 아래층에서 연일 성화라더군요.
어떻게든 후원금을 모아 아이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조금 넓은 공간을 마련하고 지원금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 당시 어려운 사정에도 반디교실을 열었던 이은영 교장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어제, 6돌을 맞은 반디후원의밤 행사가 있었습니다.
장소는 능곡동 주민센터 5층의 회의실, 비교적 널따란 공간에서 아이들이 그동안 익혀온 온갖 장기를 맘껏 펼치며 학부모와 교사진, 후원자들이 한데 어울려 공동체적 정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아이들은 푸른학교반디교실에서 배운 오카리나 연주도 하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마술 쇼도 펼치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은 자신감에 차 있었고, 학부모와 교사들의 표정에서는 뿌듯함이 배어나오고 있었습니다.

6년 전 생각이 떠올라 이은영 교장과 송영주 후원회장, 이교장의 남편인 강명용 전 민노총 고파지부장에게 간간이 저간의 사정을 물어보았습니다.
어렵게 후원금을 모으고 빚을 내어 간신히 상가 2층 42평짜리 교실로 이사를 했고, 그후로 고양시비와 국비도 조금씩 지원받을 수 있게 되어 사정이 많이 나아졌답니다.
물론 지금도 운영비가 부족하여 여전히 상당액수를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상근교사 외 5-6명 자원교사들의 도움을 받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지원금과 후원금으로 상근교사 두 명의 월급도 주고 아이들 밥도 유기농 식품으로 먹이고 월세와 운영비는 낼 정도가 됐다는 거지요.
물론 아이들의 다양한 특기 적성 교육, 중학생 아이들의 보충수업은 아직도 자원활동 교사들의 노고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몇백만원에 불과한 지원금과 그보다 적은 후원금으로 30명 초등학생과 16명 중학생을 어떻게 건사할까 하는 걱정이 떠나질 않아 결국 자리를 뜨지 못하고 뒤풀이 자리에까지 함께 갔는데, 거기서 이은영 교장과 교사들, 함께 한 이들의 뿌듯한 미소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고서야 비로소 시름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반디교실을 이끌어온 것은 가진 건 없어도 공동체적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 사람들의 협동의 힘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뭉치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힘이 나오는 거지요.
그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6년을 성장해온 반디교실이 새 세상의 밑돌을 놓는 교육공동체로 굳건히 자리잡아 재도약의 계기를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자면 이 사회와 국가의 교육관이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이 아니라, 출신기반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고 각자가 가진 개성과 적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으로 바뀌는 게 우선이겠지요.

이 사람이 바로 자신도 넉넉지 못한 생활에 지난 6년 동안 뚝심으로 반디교실을 일구어온 이은영 교장입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이라고요? 얼마 전까지 한동안 <민중의 소리 방송>의 한 꼭지를 진행했던 바로 그 후덕하게 생긴 아줌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