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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 - 평화도시 고양을 꿈꾸며


오랜 세월을 달려왔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국가 차원의 진실규명 이후에도 후속조치는 더디기만 하다.

끝이 보이는가 했는데,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하기야 국가 차원에서 금정굴 사건을 국가의 잘못으로 인정하고 책임을 표명하기까지 무려 57년이 걸렸으니, 단기간에 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기대하는 건 무리인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조금 긴 안목에서 초심과 원칙을 돌아보면서 문제의 근원적 해결 방안을 모색할 때인 듯도 싶다.

그런 의미에서 금정굴 사건을 비롯한 전쟁기 민간인학살 사건들의 진상규명에 착수할 때 상정했던 진상규명의 목적과 의미, 문제 해결의 원칙과 경로를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가 차원의 진실규명결정은 내려졌지만 진상규명은 아직 미흡하고 후속조치는 매우 더딘 상황에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을 점검해보자면, 무엇보다도 방향과 목표가 분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의 목적과 의미


첫째는 해원이다.

사건의 직접 피해자는 희생자와 그 유족들이다.

사건의 진상규명은 희생자와 유족들의 맺힌 한을 풀어주는 것, 즉 해원 과정을 통해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이 국가와 사회의 당당한 성원으로 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백만 원혼과 수백만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지 않고서 제대로 된 사회를 꿈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백만 원혼의 해원은 사회와 나라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다.


둘째는 인권이다.

전쟁 중의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집단학살은 최대의 인권유린이며, 인간성(인륜)에 반하는 최고의 전쟁범죄이자 국가범죄다.

진상규명은 우리가 인간이고 우리가 사는 곳이 인간사회임을 확인하는 가장 기초적인 일이다.

가장 근본적인 인권인 생명권을 국가권력이 박탈한 민간인학살 문제를 밝히는 일은 만연한 생명경시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인권에 대한 방호벽을 굳게 치는 일이며, 나아가 학살을 가능케 한 사회구조를 바로잡아 다시는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주춧돌을 놓는 일이다.


셋째는 평화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학살을 동반하며, 더욱이 최근에 올수록 전쟁은 전투원보다도 더 많은 비전투원 민간인의 피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진상규명을 통해 전쟁의 참상, 그것도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전쟁에 휩쓸려 들어간 수많은 민간인들의 피해를 추적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우리가 왜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넷째는 민주주의다.

전쟁기 민간인 집단학살은 대부분 국가가 주권자인 다수 국민을 적으로 간주하여 불법 살해한 논리 모순의 국가범죄다.

진상규명은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재확인하는 일이며, 집단학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거듭남을 통해 나라의 기초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다섯째는 공동체의 형성, 복원이다.

우리 사회는 내 손에 난 생채기 하나, 내가 당한 작은 불이익에 대해서는 핏대를 올리면서도 타인들의 아픔과 피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짝이 없다.

보신주의와 가족주의, 패거리주의도 수위를 넘어섰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도 심하다.

그 뿌리를 추적해보면 전쟁 중의 대규모 학살과 깊숙이 맞닿아 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방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공동체 의식이 해체, 마비돼버린 것이다.

진상규명은 더불어 사는 인간세상을 만들어가는 한 과정이다.


여섯째는 자주, 평등, 통일이다.

전쟁과 학살은 일제지배 후의 해방공간에서 어떤 나라를 세우느냐는 내부 진통을 겪고 있던 중에 외세가 개입하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전쟁의 결과로 분단이 완전 고착되어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은 이후 반세기 동안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고, 한동안 자주, 평등, 통일에 대한 지향 자체가 원천 봉쇄되다시피 했다.

전쟁기 민간인학살 문제의 해결은 자주, 평등, 통일로 가는 길목이다.


일곱째는 역사와 나라 바로세우기다.

진상규명을 통해서 숨겨지고 뒤집힌 역사를 밝히고 바로잡아 후대의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나 일제의 만행, 이라크 학살에는 치를 떨며 분노하면서도, 우리 역사의 그늘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왜곡된 역사, 사회의식이 만연해 있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는 거품 물고 항의하면서 우리 역사의 왜곡에는 침묵하는 것도 큰 문제다.

전쟁기의 학살과 관련해서도 ‘머리에 뿔난’ 인민군과 공비, 간첩들의 만행만 이야기했지, 우리 국군과 경찰, 우익단체, ‘우방국’ 군대인 미군의 만행에 대해서는 침묵, 왜곡해왔다.

가끔은 가해자를 뒤바꾸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다시는 이런 뼈아픈 역사와 역사왜곡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의 아픈 부분인 전쟁기 민간인학살의 진실을 소상히 밝히고 그 교훈을 세세토록 새겨야 한다.

민간인학살 진실찾기는 왜곡된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이고, 그것은 또한 나라와 사회를 다시 세우는 일로 직결된다.


문제 해결의 4원칙과 경로


사건과 배경의 특수성에 따라,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문제 해결의 원칙과 경로는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지만, 인류의 지혜는 국가범죄나 반인륜범죄 문제 해결의 원칙과 경로에 관한 몇 가지 합의를 이끌어냈다.


첫째, 진상규명이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한 진실규명이다.

진상이 밝혀져야만 후속 조치도 취할 수 있고, 길을 잃지 않고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와 더불어 학살의 배경과 함의를 연구, 정리하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


둘째, 원상회복(피해 및 명예회복)이다.

불법 살해당한 이들을 이제 와서 되살려낼 수는 없지만, 이제라도 그에 상응하는, 아니 최소한이나마 책임을 다하는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진실을 밝히고 이를 널리 알리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희생자들의 정치적, 법적, 사회적 지위를 회복하고 사회적 오명을 바로잡아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공권력이 불법 행사됐음을 시인하는 법적 절차인 피해배상도 적정 수준에서 고려해야 한다.

대다수 희생자 가족들이 입은 재산피해를 최소한이나마 복구할 수 있는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또한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위로와 보호 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추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돌보는 기관의 설립과 지원 등의 조치도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책임자의 처벌과 사죄다.

국가의 책임 인정, 국가와 가해자의 사죄와 처벌은 공권력의 불법적 행사를 시인하는 것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또한 사회정의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가해자 처벌은 시간적 격차와 사회통합 등을 감안하여 책임자에 대한 상징적 조치로 국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불법 행위로 취득한 부당한 부와 명예는 박탈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할 것이다.


넷째, 재발방지책 마련이다.

법령 개폐 및 보완 등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위령공간과 교육관 건립, 위령제와 평화예술제 등의 각종 위령사업과 문화예술학술 사업, 역사 기록 재정비와 교육, 경찰·공무원·학생·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평화인권 교육 등을 통해서 끔찍한 학살의 진상을 널리 알리고 기억하여 인권과 평화의 중요성, 더불어 가는 인간사회의 의미를 되새기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성찰하고 다짐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럴 때라야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고 인간세상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임을 확인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2007년 6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금정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결정이 있은 뒤에도 그 후속조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진실화해위의 ‘고양금정굴 사건’ 진실규명결정 중 권고사항


참고로, 진실화해위원회의 고양금정굴 사건 진실규명 내용 증 권고사항을 보면 다음과 같다.

위에서 이야기한 문제 해결의 원칙과 경로에 비추어보면 포괄적인 진실규명 후속조치의 일부를 담고 있는 것인데, 국가기관의 공식 권고이므로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 사과

국가는 고양 금정굴에서 비무장 민간인들이 아무런 적법절차 없이 집단희생되었으며 그 유족들이 오랜 세월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온 데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권고한다.


나. 명예회복

정부는 희생자의 호적 등에 ‘행방불명’으로 기록되어 있거나 사망신고를 하지 못하여 유족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정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다. 재발방지

정부는 비록 전시나 국가비상사태 하에서라도 사법심사 없이 민간인이 임의 처형되는 일이 발행하지 않도록, 전시하 비무장민간인의 인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는 국가보안법, 계엄법, 위수령, 군형법 등 제반 법률 내의 관련 조항들을 개정하여 국민의 인권보호에 최선을 다하기를 권고한다.

국가위기 상황에서 경찰이 직권을 남용하여 민간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경찰대상의 인권교육 실시를 권고한다. 또한 본 사건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잘못된 기록을 수정하고, 향후 역사관련 교재에도 위의 진실규명 내용을 수록할 것을 권고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한국전쟁기 고양 금정굴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비극과 잘못을 이후 세대가 망각하지 않기 위해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여 이를 연구, 교육할 수 있는 고양지역의 역사관 건립을 적극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


라. 화해와 위령사업

정부는 현재 서울대병원 법의학교실에 임시 보관되어 부식되고 있는 유골․유해를 영구봉안 할 수 있도록 시급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무하고 지역민과 국민들에게는 역사적 교훈을 남기기 위해 금정굴 지역에 평화공원을 설립하고 적절한 위령시설을 설치할 것을 권고한다.


고양금정굴 사건 피해유족들의 요구사항


금정굴 유족들은 진실화해위원회의 미흡한 권고 사항조차도 거의 이행되지 않는 등 후속조치가 행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십수 년간 활동을 함께 해온 고양지역 시민사회와의 협의를 거쳐 다음과 같은 요구를 내놓았다.

향후 우리의 과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그 골자를 한번 살펴보자.


1. 유해 안치

- 서울대에 임시 보관중인 금정굴 유해의 영구 안치(2011년 9월 고양시 고봉동 소재 납골당 창아공원에 임시 안치)

- 유해 안치 시 개별 안치가 아니라 한 개의 총으로

- 유해 안치소 앞의 위령탑 건립은 평화공원 조성과 함께 추진


2. 사건 현장 보존

- 금정굴 현장을 향후 전쟁과 인권평화의 산 교육장이자 순례지로 긴요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잘 정비하여 보존

- 금정굴 현장을 근대문화제로 지정하여 국가 차원에서 현장을 보존할 수 있도록 지원


3. 평화공원 조성

- 금정굴 현장과 유해 안치소, 위령탑, 역사관을 중심으로 그 일대를 평화공원으로 조성

- 평화공원은 상징성, 소요 예산 등을 감안하여 경기도립공원 또는 고양역사공원으로 추진


4. 위령제 및 평화인권예술제 지원 확충, 평화축제 추진

- 많은 시민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평화를 염원할 수 있도록 위령제 지원예산 증액

- 위령제 사전행사로 매년 거리 상여행렬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사라져가는 전통문화의 재현이라는 의미도 살림)

- 많은 예술가와 시민, 학생들이 참여하며 평화를 노래하고 다짐할 수 있도록 평화인권예술제(‘높빛평화예술제’) 예산을 대폭 증액

- 위령제와 시일이 비슷한 행주문화제를 평화축제로 전환하는 방안 검토(행주대첩은 한반도에 평화를 불러온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만큼, 지금의 색깔 없는 행주문화제를 평화축제로 전환하여 평화 관련 각종 행사를 동시에 추진한다면 그 의미가 더 깊어질 것임)


5. 희생자 및 유족들의 피해 및 명예회복

- 사건으로 인해 후유증을 앓고 있는 부상자의 치료사업, 유족들에 대한 원호사업 시행

- 사건으로 인해 흩어졌지만 아직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족들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조치

- 피해 유족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사회의 당당한 성원으로 설 수 있게 하는 제반 조치와 지원

- 인권평화의 산 증인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족회 활동을 공식 지원


6. 책임자 및 관련자의 사죄와 참배, 그리고 화해

- 책임자 및 관련자의 사죄와 참배 추진

- 전쟁기의 아픈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는 전시민적 화해사업 추진


7. 기록, 교육, 재발방지

- 국가의 각종 기록물과 고양시사를 비롯한 고양시의 모든 공식 간행물의 제반 오류를 바로잡고 금정굴 사건을 비롯한 전쟁기의 피해를 상세히 수록

- 금정굴 사건과 고양부역혐의사건은 물론 아직까지도 알려지지 않은 전쟁기의 숨겨진 피해를 일제히 조사 정리 기록하고 이 자료와 유물, 유품 등을 토대로 역사관을 만들어 후세의 교육공간으로 조성

- 고양교육청 및 경기, 서울교육청과 협의하여 고양시 및 수도권 각급 학교의 모든 학생들에게 금정굴을 비롯한 전쟁기 학살 관련 인권특별수업(현장답사 포함)을 실시하고 고양시 및 수도권 소재 학생들의 금정굴 순례 추진

- 고양시 경찰을 포함한 고양시 전 공무원의 금정굴 참배를 추진하고, 경찰 대상의 특별 인권교육 실시

- 군, 경찰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전쟁 중 민간인 보호에 관한 법률과 국제 인도법 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국민의 생명과 인권의 소중함을 자각하는 평화인권교육을 실시하고, 전 시민을 대상으로 평화인권교육 강화


금정굴 현장 보존 및 유해 안치, 평화공원 조성 제안


그와 더불어, 금정굴 사건 현장 보존 및 유해 안치, 평화공원 조성 방안도 정리하여 제안했다.


1. 사건 현장 보존

- 이전의 국가기관의 부당한 권력행사의 증거이자 우리의 슬픈 역사의 생생한 단면인 학살 현장을 잘 보존하여 후세에 교훈을 남기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 사건 소재지의 지방자치체와 국가는 그 한스런 역사의 현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인권평화 교육장으로 승화시켜 보존해야 할 책무가 있고, 또 인권평화통일의 가치가 갈수록 중요시되는 지금 이를 잘 활용할 경우 의미있는 가치들을 다양하게 창출해낼 수 있다.

- 금정굴 현장은 이제까지 밝혀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지 중 수도권 최대의 학살지이고, 1995년 유족들의 자체 발굴로 이미 전국에 널리 알려진 역사의 현장인 바, 국가 차원의 진실규명이 내려져 국가의 책임이 확인된 지금에 와서도 이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학살지 소재 지방자치체와 국가의 수치이자 명백한 직무유기다.

- 금정굴 현장은 이미 수도권 인권평화통일 기행의 주요 순례지로 정착했고, 앞으로는 그 수와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 학살 현장을 잘 정비하여 보존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경찰과 고양시, 경기도, 대한민국의 인권평화 이미지 고양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다.

- 지방자치체와 경찰에서 앞장서서 이를 적극 추진할 경우 중앙정부나 경기도의 지원을 충분히 받아낼 수 있고, 그 부대효과도 훨씬 커질 것이다.

- 현장 보존책의 내용: 1) 벽면 보강, 2) 안전장치, 3) 평화의 탑 또는 평화의 종각, 4) 평화의 벽(학살 사실을 알리는 글·그림, 발굴된 유해를 상징하는 조각품, 평화와 상생을 염원하는 글·그림 등을 부조로 새김), 5) 진입로, 6) 안내판 등


2. 유해 안치

- 권력의 불법 사용으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의 유해가 책임있는 국가기관의 직무 유기로 방치되고 있는 것은 문명국가의 크나큰 수치다.

- 국가의 학살 책임이 인정된 유해를 하루 빨리 양지바른 곳에 안치하여 그 넋들을 위로하고 유족들의 마음을 달래며 국가와 지자체 차원에서 제를 지내주고 후세의 교훈으로 삼는 것은 인권과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와 지방자치체의 기본 책무다.

- 현재 유족들의 모아진 의견은 금정굴 현장 아래 양지바른 곳에 합동묘소를 조성하자는 것이다(국가 배상 완결 시 화장하여 봉안할 수 있다).

- 유해 안치소는 금정굴 현장의 남쪽 사면(탄현근린공원 부지 내)이 바람직하며, 유해 안치소 앞에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탑을 건립해야 한다.


3. 평화공원

- 수도권 최대의 민간인 집단희생지이자 통일의 길목에 있는 금정굴 현장과 유해 안치소, 위령탑, 유품과 자료를 보관하는 역사관 등을 연계하여 ‘고양평화공원’을 만든다.

- 향후 예상되는 많은 순례객, 수도권 일대의 인권평화통일 견학 및 기행 인구 등을 미리 감안하여 금정굴을 인권평화의 순례지로, 고양시를 인권평화통일의 상징도시로 만들어가는 구상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 국제전시장 부대시설과 국제회의장에 각종 인권평화통일 관련회의를 유치하면서 이 평화공원과 연계하여 평화도시의 이미지를 고양시켜간다면 고양시와 경기도의 또 하나의 상징 브랜드로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 금정굴 현장이 고봉산과 황룡산 축의 등성이에 자리잡고 있는 점을 활용하여, 현 고봉산주유소 남쪽, 고봉로 위에다 생태다리를 놓고 ‘평화의 다리’라 명명한다면, 단절된 녹지축 및 산책로 연결의 의미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 금정굴 현장의 남쪽 사면이 대부분 탄현근린공원 부지이므로 평화공원 조성에는 별도의 부지가 거의 필요없으며(우선 매입 필요), 공원 진입로 300여 평만 추가 매입하면 된다. 탄현근린공원 부지 전체 또는 공원 부지 동측의 골짜기 일대를 평화공원으로 설정하고 관련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고양평화공원’은 고양시는 물론 수도권 일대의 학생과 일반인들이 오며 가며 들러 인권과 평화와 통일을 명상, 체험하고 돌아가는 명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평화공원의 기본 시설물: 1) 평화의 탑(또는 종각)과 평화의 벽, 2) 희생자 유해 안치소, 3) 희생자 위령탑, 4) 평화박물관(사료관), 5) 평화교육관, 6) 평화의 길, 7) 평화의 다리, 8) 평화의 숲, 9) 평화의 정원, 10) 평화의 광장 등

* 이외에는 시설물을 최대한 억제하고 시설물의 규모도 되도록 작게 만들고 자연경관도 그대로 살려 조용히 명상, 산책하며 평화를 피부로 느끼고 돌아가는 명소로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 2011년 11월에 나온 서울대 정근식 교수팀의 ‘고양시 평화공원·평화교육관 설립 타당성 조사’는 금정굴 및 고양시 현황과 국내외 사례를 검토한 뒤 고양평화공원을 고양시 ‘평화산업 진흥 마스터플랜’의 일환으로서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즉, 초기에는 금정굴 현장 보존시설과 산책로, 추모관 및 유해 봉안시설, 평화교육관 등의 핵심시설만을 설치하고, 국비 지원 등 제반 여건이 조성된 후 평화기념관(유품 전시 및 수장고), 도서관(멀티미디어 자료실), 다목적 전시관, 멀티미디어관(대형 강의실), 평화공원(야외공연장), 야외체험공간 등의 발전단계 추가시설을 건립하며, 궁극적으로는 ‘생태·평화단지’ 조성을 목표로 하여 다음과 같이 4단계로 사업을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

- 1단계 : 교육문화 프로그램 활성화 및 시민의견 수렴

- 2단계 : 핵심시설 건립 및 운영 거버넌스 확립

- 3단계 : 발전단계 추가시설 건립 및 실질적인 ‘생태·평화 교육문화센터’구축

- 4단계 : 금정굴 문화재 등록 및 ‘생태·평화 교육문화센터’의 종합적 발전계획 수립


남은 과제들


앞서 금정굴 사건을 비롯한 전쟁기 민간인학살 문제 해결의 4원칙과 경로에서 진상규명, 피해의 원상회복, 책임자 처벌과 사죄, 재발방지책 마련의 4원칙을 확인한 바 있다.

그에 비하면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나 유족들의 요구는 지엽적인 것처럼 비친다.

아직까지도 남북 분단과 대립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 현재 상황에서 가능한 국민적 합의 수준을 감안한 결과다.

그러나 어떤 문제의 해결책도 현실의 토대 위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가능한 것부터 풀어가면서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추구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진실화해위원회의 미흡한 권고나 유족들의 소박한 요구조차도 크고 작은 장벽에 부딪혀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근본 원인은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를 외면하고 있는 중앙정부의 무책임함에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고양시에서 금정굴 유해 안치와 평화공원 조성을 적극 추진하고 있고 경기도의회에서도 적극 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금정굴 현장과 유해 안치소를 중심으로 한 고양평화공원은 킨텍스를 중심으로 한 국제 컨벤션 시설, 인권평화통일 관련 각종 문화예술학술 행사 및 사업과 더불어 평화도시를 추진하는 고양시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게 틀림없다.

평화도시 고양의 꿈은 고양평화공원의 첫 삽을 뜨는 순간 현실로 등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또 한 가지 고무적인 일은 사법부에서도 금정굴 사건에 대한 국가의 중대한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고 금정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 배상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법부는 2011년 12월 15일의 1심 판결에서 1) 전시에 경찰이나 군인이 저지른 위법행위는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거의 알기 어려워 사법기관의 판단이나 국가의 조치가 있기 전까지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기가 어려운 점, 2) 전쟁이나 내란 등 국가비상시기에 경찰이나 군인 등 국가권력 또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 하에 조직적·집단적으로 자행된 기본권 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해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점, 3) 금정굴 사건은 전시에 국가권력이 대규모의 학살을 자행한 반인권적인 중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점에서 공무원이 공무를 수행하면서 통상적으로 저지를 수 있는 일반적인 불법행위와 달리 볼 필요가 있는 점, 4) 국민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오히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조직적·집단적·계획적으로 희생자들의 생명을 박탈한 후 이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면서 그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한 점, 5)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의 경우에는 나중에 재심을 통하여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고 손해배상청구도 할 수 있는데, 이 사건과 같이 아예 유죄 확정판결이 없어 재심의 여지가 없는 사건에서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여 원고들의 청구를 배척하는 것은 사법부의 판단을 통해 희생자들의 명예를 화복하고 적절한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통로조차 사실상 봉쇄하여 현저히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점 들을 종합해볼 때,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2007. 6. 26.까지는 객관적으로 원고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고 피해를 당한 원고들을 보호할 필요성은 매우 큰 반면,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여 그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시하면서, 금정굴 사건의 희생자들 및 그 유족들인 원고들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 그후 오랜 기간 계속되었을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이 사건 불법행위의 내용과 정도, 불법의 중대함, 금정굴 사건이 일어난 무렵의 시대적 상황... 들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 위자료로 금정굴 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하여는 각 1억 원, 그 배우자에 대하여는 각 5,000만 원, 그 부모와 자식에 대하여는 각 2,000만 원, 그 형제·자매에 대하여는 각 1,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행정부인 진실화해위원회에 이어 사법부에서도 국가의 중대한 불법행위와 책임을 인정하고 그 책무를 다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로써 금정굴 사건은 다시 분명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를 계기로 보완 조사를 통한 보다 철저한 진상규명, 피해 및 명예의 원상회복, 책임자의 사죄, 재발방지책 마련 등의 경로를 차근차근 밟아간다면, 마침내 희생자와 유족들의 맺힌 한이 풀리고, 이 땅에 인권과 평화가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치로 자리잡을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그쯤 되면 고양시의 평화도시 플랜도 꽃을 피울 것이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강조할 점은 금정굴 사건을 비롯한 전쟁기 민간인학살 문제 해결의 궁극적 목적이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 간의 화해가 아니라, 과거의 국가범죄에 대한 국가의 책임 인정과 사죄를 전제로 한, 가해 책임자인 국가와 피해자인 국민 간의 화해라는 것이다.

금정굴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의 청산은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피해 국민이 마음속으로부터 진정으로 화해하는 것이고,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국가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립하는 일이다.

만일 국가가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회피하고 국가와 국민들 간의 진정한 화해를 끌어내는 일에 실패한다면, 매우 부정적인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법치주의에 대한 회의, 국가권력에 대한 냉소와 미래에 대한 불신이 더욱 확산될 것이다.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치유와 화해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금정굴 사건을 비롯한 민간인학살 문제의 해결은 학살의 대지에 살아남은 우리의 몫이다.

다시는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없도록, 풀지 못한 한을 가슴에 품은 채 세상을 등지는 사람이 없도록, 차마 토로하지 못할 반인도적인 범죄를 합리화하고자 한평생 몸부림치는 사람이 없도록,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며 인간성을 잃어가는 사람이 없도록,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잃어버린 사회정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과거의 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서 그 진실을 소상히 밝히고 피해자들을 구제하며 다시는 그런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경주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쟁과 학살의 나라가 인권과 평화의 나라로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