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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막혀 펜을 멀리한 지도 어느새 1년을 훌쩍 넘긴 것 같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갈수록 생각은 많아지고 행동은 굼떠진다. 외부의 자극에라도 정신 좀 차려볼까 해서 회보 원고청탁을 덜컥 수락했다가 며칠째 끙끙 앓고 있다. 그렇다고 이 잔인한 계절에 음풍농월이나 신변잡기를 늘어놓고 있기엔 좀 그렇고 해서 고민 끝에 요즘 머릿속을 빙빙 맴도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한번 적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글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거기다 글이 길어지기까지 하면 그 또한 민폐일 터. 형식이나 논리, 흐름 따지지 않고 메모 형식으로 간략하게 생각을 풀어가보겠다.

 

요즘 내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가장 저질스런 인간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뉴스 보기도 싫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 듣기도 겁난다. 이게 현실인가 싶은 소식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달려들어온다. 초현실주의 블랙코미디에는 한계가 없는 듯 매일같이 새로운 묘기로 개안을 시켜준다. 세계로 뻗어가는 K-컬처의 토양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하늘과 땅의 거리가 멀수록 공간은 그만큼 더 넓어질 테니.

 

아무리 권력이 공감력을 둔화시킨다 한들, 5년짜리 권력이 뭐라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왜 그 모양일까.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2원적 세계관이 아무리 현실의 냉엄한 반영이라 한들, 지배당하는 자도 적당히 살 수 있게 해줘야 체제가 유지되는 거 아닌가. 갈수록 치열해지는 권력과 이익과 쩐의 전쟁에서 세상 돌아가는 흐름은 어느 정도 꿰고 있어야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기후위기, 불평등의 위기, 전쟁의 위기라는 전세계적 위기에 대한 초딩 수준의 이해도 없이 국가를 경영하는 게 가능할까. 폼나는 권력놀음도 한두서너 달이지 이쯤 됐으면 세상의 면면도 좀 보일 것 같은데, 죄 근시안들뿐인가.

 

누굴 탓하랴. 5년 허송세월하다 더 저질의 인간들에게 권력을 보쌈해 바친 자들? 작은 욕심에 눈이 멀어 헛것을 본 이들? 이판사판, 오십보백보 세상은 다 그런 거라는 고매우아달통한 이들? 여유작작 방심하다 뒤통수 맞고 후회하는 이들, 우리들? 남은 자들에겐 숙제가 남는다. 숲을 뚫고 벽을 넘어서라도 길을 열어야 살 수 있으니.

 

고양시 사정도 거의 복사판이다. 깔끔하고 반지르르한 외양 속에 감추어진 추악한 욕망덩어리를 보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이런 막무가내, 오판을 인정할 줄 모르는 이런 오만 덩어리도 없다. 4년짜리 시장이 뭘 할 수 있다고, 법규도 절차도 다 무시한 채 멀쩡한 길 파헤치고 자꾸 새 길만 뚫겠다고 고집부리는지. 이미 확정, 착수된 신청사는 왜 갑자기 옮기겠다고 발표하여 평온한 시를 전쟁터로 만드는지. 자치, 공동체, 시민참여 없는 지방자치가 얼마나 공허한지도 모르고, 접경지역에서는 평화가 만사의 토대라는 인식도 없고, 현실에 뿌리를 둔 내생적 발전전략도 없이 기업유치 목소리만 높이면 기업들이 떼지어 몰려오냐고. 속이 텅 빈 경제자유구역이 무슨 전가의 보도라도 되는 양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고. 전임자들이 공들여 다져놓은 도시기반을 마치 제가 다 마련한 듯 생색이나 내면서.

 

갈 길이 머니 넋두리 그만하고 길 한번 찾아보자. 오만방자한 인간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산 사람들은 살아가야 하고. 위기의 시대라 해도 인간의 삶은 질기니. 살아 있음, 살아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현실을 무겁게 인식하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비상식과 싸우며 살아가는 법. 인간의 지혜는 우리에게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첨삭과 응용은 각자의 몫이다.

 

- 방향잡기. 목표(예컨대, 자유평등평화 세상)를 설정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을 정확하게 잡는 것이 중요하다.

- 단순화. 가지치기를 잘하여 상황을 되도록 단순하게 만든다.

- 확실한 것부터 차근차근. 모호한 것은 버리고 확실한 것부터 차근차근 밟아간다.

- 비상식에는 비상한 방식으로. 비상식에는 상식을 뛰어넘는 특단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웃어넘기기, 버리기, 회피하기, 계산된 대응 등등

- 전략적 낙관과 전술적 비관. 목표 달성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되 개개의 상황에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대응한다.

- 줄기찬 도전. 끈기있게 도전하며, 때로는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 세상을 바꾸는 것은 다수의 힘. 연대와 협력에 힘쓰며, 어떻게 다수를 확보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