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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돌아보기

코로나 총선 유감

주홍산 2020. 4. 15. 00:08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의 당선을 위해 일하지 않고 두어 걸음 떨어져서 선거를 조망하며 지냈다.

역시 떨어져서 보아야 잘 보인다 했던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정말 심각하다.

집권당에서는 미래 비전이 보이지 않고, 오로지 문재인 정부의 성공뿐이다.

야당에서는 무조건 반대 외에 뭘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고, 그런 당을 누가 믿고 표를 줄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두 거대정당의 소수정당 몫 비례대표 가로채기는 거의 날강도 수준으로, 우여곡절 끝에 법제화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만신창이가 됐고, 기대를 모으던 소수정당들의 국회 진출은 요원해졌다.

그나마 제도권에 발 뻗고 있던 정의당, 민생당, 국민의당 정도나 이따끔 눈에 띌 뿐 다른 소수정당들은 가시권 밖으로 한참 비껴나 있고, 미증유의 코로나 시국 속에 소수정당들이 상대적으로 강한 정책 의제들까지 묻혀버리니 정책 이슈 자체가 거의 완전한 실종 상태다.

 

국가별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

그럼에도 판세는 분명해 보인다.

선거판을 집어삼켜버린 코로나19 팬데믹의 지대한 영향력 때문이다.

중간에 신천지로 인한 곡절이 있긴 했지만, 현 정부는 1차 코로나 방역에 일단 성공하면서 다수 국민들에게 '나라의 존재감과 효능감'을 일깨워주었다.

지난번 메르스 때나 4.16 세월호 참사 때는 물론,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이른바 구미 '선진국'들과 비교되면서 현 정부는 후한 점수를 받았고, 그 후광이 집권여당에 넉넉히 비치고 있다.

그에 빈해 거대야당의 비판 목소리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내용 없는 악다구니뿐으로, 보수정당이라기보다는 극우정당에 가까운 자신의 본모습을 여실히 드러내보이고 있다.

막판 견제 심리가 조금 살아난다 해도, 21대 총선은 민주당의 낙승과 미통당의 폭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와 더불어 거대정당 견제 심리가 발동하면서 제3세력의 대표주자인 정의당과 국민의당은 최소한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는 성공할 것 같은데, 제3세력이나 진보정당의 존재감 총량은 20대 국회에도 미치지 못할 게 분명해 보인다.

기왕에 이렇게 된다면, 다음 국회에서는극우에 가까운 무조건 반대 세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그동안 미루어온 자유주의적 개혁이나마 나름 완성하여 다음 단계의 토대를 쌓을 가능성을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나?

 

진짜 문제는 집권여당의 플랜에서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에 대한 비전도, 사회시스템 정비와 개편 방향도, 한국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에 대한 처방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거다.

아니, 선거 때는 정말 중요한 사회 의제들, 특히 이번 경우에는 코로나 사태 극복 의제들이 전면에 대두되면서 다양한 방략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이루어져야 정상 아닌가?

많은 사람들의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히는 미증유의 사태가 빤히 예측되는 판에 고작 재난구호금을 누구에게 얼마씩 줄 거냐, 누가 더 말도 안 되는 망언을 더 많이 했느냐를 두고 치고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심정은 그야말로 착잡 그 자체다.

그나마 예전에는 다만 몇 가지라도 의제화되곤 했던, OECD 최저 수준의 복지수준 향상 의제조차도 완전히 실종돼버렸다.

거대양당의 지역구 의제들은 본질적으로 거의 아무런 차이가 없는 지역개발론 일색인데, 그렇다고 다른 선택지도 없다.

정책 이슈가 사라진 곳에 남는 것은 적나라한 권력의지뿐으로, 여당은 문재인 정부 힘실어주기, 야당은 문재인 정권 심판만 소리 높여 외칠 뿐이다.

야당이 너무 망가지는 바람에 여당이 상대적으로 덕을 보고 있을 뿐.

 

이 사회의 책임있는 지도자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선거가 끝나는 내일부터라도, 축배를 들기에 앞서 이 땅에서 모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부터 찬찬히 굽어살펴 달라고.

방역 대책을 어떻게 좀더 치밀하게 수립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지킬 건지,

공공의료를 어떻게 강화하고 감염병전문가 등 공공의료 인력을 어떻게 양성하고 전반적인 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재정비하여 다가올 재난들에 대비할 건지,

경제와 일자리는 어떻게 지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건지,

턱없이 부족한 사회복지체계와 사회안전망은 어떻게 촘촘하게 구축할 건지,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사회시스템은 어떻게 구축하고 어떻게 대비할 건지,

세계화 흐름이 일정 부분 퇴조하거나 재조정될 상황에 대비하여 대안의 체제는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차근차근 들여다보며 사심 없이 정진하여, 사람들이 모처럼 실감한 '나라의 존재감과 효능감'이 사라지지 않도록 힘써달라고.

 

물론 늘 그렇듯이, 지도자들이 사익보다는 공익을 우선하며 일하게 하려면,

시민들의 감시와 견제력이 더욱 강화돼야 하고,

스스로 사회의 주인이 돼야 하고,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조직을 만들고 자신의 대표자를 내세울 수 있어야 하고, 

결국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지만.

 

그래, 문제는 언제나 나와 우리에서 비롯되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