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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

선량들과 민주주의

주홍산 2012. 2. 20. 03:55

 
한 후보의 예비홍보물 보다가 든 생각.

요즘 야권 '개혁' 후보의 홍보물에선 한미 FTA 발효 중단, 4대강 원상회복, 복지사회, 민주주의와 민생 회복 또는 안정, 재벌개혁 등등의 정책은 필수다. 야권의 좌클릭을 실감케 하는 흐름이다. 그러면서도 대체로 지역개발 또는 발전 공약은 빠뜨리지 않는다(그중에는 정책의 큰 줄기와 일치하지 않는 것도 꽤 있다). 내가 적임자란 주장과 근거 제시는 물론 기본 바탕이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으로서는 최대공약수의 어필 전략은 피하기 힘들다.

그런데 공약과 사람을 함께 떠올려보면 잘 매칭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인간미 넘치는, 가까이 다가가 진솔한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정치인은 사실 별로 없다. 어딘가 딴세상에서 온 사람들 같은 느낌이다. 다들 무지막지하게 바쁘고, 속은 알기 힘들고, 잠시나마 짬을 내어 책 한권 읽고 이리저리 사색하며 인간과 사회와 세계를 조용히 음미할 여유나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렇게 바쁜 사람들이 주변의 도움으로 선량이 되어 막중한 결정권을 손에 쥔다. 그 다음부터는 더더욱 바빠져 책은커녕 TV 볼 시간조차도 없다. 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은 그 사람의 살아온 날들과 경험, 지식, 그리고 가까이 자주 만나는 사람들의 조언과 힘 있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좌우된다. 정치인은 그렇게 자신을 뽑아준 민초들에게서 멀어져가고, 대의민주제의 위기는 심화된다.

그럼에도 4-5년마다 같은 과정이 똑같이 되풀이된다. 대의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불가침의 원리처럼 신성시되고, 민초들의 운명은 '철인' 같은 지혜를 가진 정치인과 그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제사회권력들에게 맡겨진다.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먼저 일어나며, 민은 권력의 배를 띄우고 또 엎지만, 민초들은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늘 객꾼이 된다.

선거를 앞두고 늘 드는 생각이다. 민이 사시사철, 일년 삼백육십오일, 세상의 주인이 되는 길은 요원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