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내 생전에 이 얘기를 하고 죽을 날이 올까 생각했다.” “가슴 깊이 파묻어 애써 갈무리해둔 이 아픈 상처를 다시 도지게 했으니, 치료비 내놓고 가라.” “세상이 본시 그런 세상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우리 같은 농투성이 인생은 예나 제나 늘 그 모양 그 꼴이지 뭘.” “이 한 많은 인생, 누가 되돌려줘? 누가 해결해준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문제에 한 발짝이라도 들여놓은 사람이라면 귀가 닳도록 들은 말들이다. 절망, 상흔, 통한, 체념, 냉소, 원망이 뼛속 깊은 곳에서 배어나오는 이런 말들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전율도, 분노도,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세상은 으레 그러했고, 또 언젠가는 이런 상태가 역전되어, 아니 교정이라도 되어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번번이 좌절돼..
10. 과거청산은 시대의 명령 한국전쟁전후 100만 민간인학살 문제의 본질은 국가권력이 수많은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죽이고도 그에 대해 반성도 않고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오랜 기간의 진실규명 요구에도 묵살로 일관해왔다는 것이다. 즉, 국가권력의 도덕성의 문제이고, 직무 유기의 문제이며, 국가권력의 존재 의의의 문제이고, 나아가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물을 수밖에 없는 문제다. 국가가 수많은 민간인을 죽이고 또 문제를 묵살함으로써 그들을 다시 버린다면, 수백만 유족들에게, 그리고 현장을 지켜보고 이야기를 들어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국가란 무엇이겠는가? 국가에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막중한 임무는 없을진대, 하물며 국민, 그것도 전투와 무관한 민간인들을 불법적으로 죽이고 또 이를 묵살하는 국가는 과연 ..
7. 민간인학살 진실찾기, 그 의미 요즘 ‘과거청산’ ‘과거사 정리’ ‘과거사 규명’ ‘진실규명’ 등의 말이 혼용되고 있다. 어느 경우나 은폐되고 왜곡된 진실, 그것도 대체로 과거 국가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행위의 진실 규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는 하나, 그 추구하는 목표와 담고 있는 의미는 조금씩 다르다. 가장 많이 쓰이는 ‘과거청산’이라는 말은 ‘범죄자가 손 씻고 새 삶을 산다’는 의미를 짙게 풍기니, 그 주체를 국가,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으로 좁혀보면 ‘국가, 즉 대한민국이 자신이 저지른 이전의 범죄행위를 청산하고 거듭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과거청산’의 포괄적인 의의를 돌아보고 나서, 그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민간인학살 진실찾기의 의미를 새겨보기로 하자. 과거청산의 의의 오늘의 한국사..
6. 진상규명, 그 멀고도 험한 길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은 학살 당시부터 일어났다. 1951년 2월 거창 신원면 일대에서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에 의해 주민 719명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인 그해 3월, 거창 출신 국회의원 신중목이 국회 본회의에서 거창 학살을 폭로했다. 이에 국방장관 신성모는 사실을 부인하고 통비분자 187명이 죽은 것으로 사건을 조작했으나 내무, 법무장관이 사실을 부분 시인하면서 국회에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현지 시찰에 나섰다. 그러나 현지에 내려간 국회와 정부(내무, 법무, 국방) 합동조사단은 가해 군인들의 집요한 방해를 받던 중 당시 경남지역 계엄사 민사부장 김종원이 신성모 국방과 모의하여 짜낸 무장공비 위장 습격 계략에 말려 그만 철수하고 만다. 이후 가해..
5. 학살 이후 - 학살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반백년 이어진 극우반공체제하에서 전쟁 전이든 중이든 후든 학살당한 이들의 대부분은 ‘빨갱이’가 되었고 그 가족들은 ‘빨갱이 가족’이 되었으며, 학살 사실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불순분자’가 되었다. 그야말로 ‘멸균실’ 수준의 순수한 극우반공체제하에서는 중립도 상식도 통할 수 없었고, 민주니 인권이니 평화니 통일이니 하는 것들에도 색안경이 씌워졌다. 대학살의 그늘은 실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짙었다. 학살에 책임있는 사람들 중 다수가 우리 정부와 미국, 그리고 우리 사회의 권력자들이니, 그 정황이 어땠을지 능히 짐작이 갈 것이다. 사람들은 바로 눈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할 이유도 없이 개처럼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유족들은 억울한 죽음..
4. 학살의 은폐, 왜곡 학살은 한 바탕 피바람으로 그치지 않았다. 학살의 땅에 선 대한민국과 그 후견인인 미국, 그리고 학살자들은 자신들의 손에 묻은 벌건 피를 하루 빨리 씻어내야만 했다. 그래도 사람 사는 땅에서 존경받고 권위를 인정받고 지도자로 행세하자면 학살자라는 멍에를 벗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일차적으로 취한 방법은 학살 자체를 없던 일로 하는 것이었다. 전쟁중에 죽은 민간인의 수는 터무니없이 축소되었으며, 그조차도 전투나 학살과는 무관한 병사, 객사 따위로 처리되고, 다수는 그저 실종자나 행방불명자로 간주되었다. 그것으로도 문제를 덮을 수 없는 사람들에겐 학살이 아닌 그럴듯한 명분을 씌워 사실을 호도했다. 이제 오갈 수 없는 장벽이 된 ..
1. 죽이는 이야기 전쟁 때 한반도에서는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만행’이 저질러졌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다, 온 산하가 피로 철철 넘치게. 뚜렷한 이유도 없이, 단지 우리 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아니 우리 편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그것을 ‘학살’이라고 부른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학살을 ‘아무런 위협이 없는데도 그저 좌익, 우익, 부역자 등 집합체의 성원이라는 이유 또는 혐의만으로 무고한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반백년 전 우리 대한민국은 온갖 유형의 ‘학살’의 전시장이요 백화점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죽었느냐고? 남한에서만 무려 100만 명에 달한다. 이는 전투로 인한 군인, 민간인 희생자를 제외하고 순전히 ‘학살’당한 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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