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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와 CJ의 위험한 도박, 고양시와 고양시민은 어디에? Ver.2

(712일 고양신문 기고문에서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과 그후의 추이를 보강하여 722일 재작성했습니다.)

 

CJ라이브시티 사업의 무산(2024. 6. 30. 사업협약 해지)을 지켜보는 심정은 한마디로 참담하다. 우리 일 같은데 우리에겐 아무런 결정권도 없이 그저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과 허탈함, 과녁이 불명한 분노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다. 아직 채 정리되지 못한 일이 산적한 판에 예리한 재단 가위를 들이대고 책임을 밝히며 막연한 앞날을 논하는 건 위험하고 또 무슨 보탬이 되랴 싶지만, 확인된 몇 가지 점이라도 분명하게 짚어 독한 예방주사라도 맞아보자는 심정으로 몇 자 적어본다. 그간의 우여곡절은 다른 기사들에서 충분히 다루었으므로 세세한 과정은 생략한다.

 

경기도와 CJ의 막판 줄다리기와 결정은 매우 위험했다. 무슨 도박판의 베팅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나 판돈 2조 원짜리, 아니 향후 수십 년간 수십조 원을 호가할 큰 판의 베팅치고는 좀 많이 섣불렀다는 생각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 사업자의 배수진 성격의 막판 요구(지체상금 감면을 골자로 하는 국토부 PF 조정안 수용)는 단칼에 거절되고 곧장 경기도의 사업 협약 해지 통보로 이어졌다. 관료조직에서는 보기 힘든, 마치 기다리고 있던 듯한 신속한 조치였다. 일주일 뒤 CJ의 사업 협약 해지 재고 요청도 가볍게 묵살되었다.

 

경기도는 거센 비판을 예상해선지 사업부지에 공공주도 공영개발 방식으로 ‘K-콘텐츠 특화 복합문화단지를 건설하겠다고 발빠르게 공표하고 나섰다. 행정1부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TF를 구성하고 “K-컬처밸리 사업을 책임 있게 추진하겠다며 빠른 시일 내에 마스터플랜도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고양시민들과 언론, 업계의 문제제기와 반발이 거세지자, 경기도는 716-17일 고양시 출신 국회의원들과의 협의와 기자회견을 통해 CJ 측과의 사업협약 해지는 고양 K-컬처밸리 사업의 포기가 아니라며 원형 그대로 추진, 신속한 추진, 책임 있는 자본 확충을 약속하며 사업의 지속 추진 의지를 분명히 했다. 얼핏 보아도 넘어야 할 산이 수십 개는 돼보이고 성과도 매우 불투명해보이는 공공주도의 대규모 문화예술사업 추진을 예고한 것이다.

 

당장 정리할 일만도 산더미일 것 같은데, 벌써부터 양측의 날선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경기도는 CJ 측의 사업 의지자체를 문제삼으며 사업 지연의 모든 책임이 CJ 측에 있다고 주장하고, CJ 측은 문화산업에 대한 이해 없는 관료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사업 지연의 책임 대부분이 경기도와 관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미 협약해지와 지체상금 등을 둘러싼 소송 대비 포석을 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디에도 고양시와 고양시민은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전거로 필요할 때만 고양시민과 경기도민의 일반이익을 언뜻 거론할 뿐이다.

 

고양K-컬처밸리는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한류우드로 시작하여 한류월드, K-컬처밸리, CJ라이브시티로 브랜드명을 바꾸며 지난 20여 년간 고양시민에게 희망고문을 계속해온 고양관광문화단지 내 테마파크 사업은 태생부터가 몹시 유동적이었고, 밑그림 또한 몇 차례 널뛰기를 거듭했다. 이전의 어지러운 표류 과정은 생략하고, 그나마 사업이 꼴을 갖추기 시작한 20206월 경기도와 CJ 측의 제3차 사업계획 변경(K-팝 아레나 중심의 CJ라이브시티 건설) 후로 기간을 좁혀 살펴보자. 실내외 6만 석 규모 아레나 중심의 K-컬처 복합경험단지라는 개발 컨셉이 확정된 것도 그때인데, 이 시점은 또한 K-컬처밸리 사업 협약상의 완공 예정기일(2020. 8.)이기도 했다. 협약상의 완공 예정기일에 이르러서야 사업계획이 확정되고 그뒤에야 실시설계 등 사업이 본격화된바, 지체상금 등 문제의 상당 부분은 여기서 시작된다.

 

아레나 중심의 K-컬처밸리는 이전의 핵심시설 없는 관광단지나 테마파크와는 달리, 일산신도시 건설 이래 베드타운으로 출발하여 문화도시를 지향해온 고양시에 잘 부합하는 사업으로 환영받았다. 나아가 인근의 킨텍스(3전시장 건설로 업그레이드), 일산테크노밸리, 방송영상밸리의 3개 산업클러스터와 함께 고양시의 지식-문화관광산업 허브로 기대를 모으며 산업 불모지였던 경기북부의 성장동력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었다. 아레나 중심의 K-컬처밸리는 요컨대 인근 3개 산업클러스터와의 연계 시너지 효과를 높여 문화산업도시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사업이었다. 이 사업이 좌초될 경우, 인근 3개 사업 또한 활성화와 도약의 기회를 잡지 못한 채 고양시의 지식-문화관광산업도시 프로젝트가 큰 위기를 맞고 고양시가 어쩌면 베드타운의 늪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K-컬처밸리가 경기도 소유의 땅에서 경기도의 관리감독 하에 CJ 측의 100% 민자사업으로 추진돼왔다는 거였다. 최대 수혜자가 고양시민인 사업에서 고양시와 고양시민이 설 자리가 처음부터 배제돼 있었다는 이야기다. 자사의 이익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민간사업자는 논외로 하더라도, 수원을 비롯한 경기남부 중심의 경기도와 경기도 공무원이 고양시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사업을 추진해왔을까? 자신들과 고양시민의 이해관계가 엇박자를 낼 때 고양시민의 이익을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며 일을 추진했을까? 고양시는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미리 대비할 수 없었을까?

 

누구의 책임인가?

사업 지연의 책임 공방을 벌이는 경기도와 CJ 측의 주장은 여기저기서 거론하고 있고 소송 등을 통해 곧 구체화될 테니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자. 여러 차례의 사업계획 변경과 관련 인허가에 따른 사업 지연은 어느 일방의 책임이라고 단정하기 힘들다. 전력공급 지연, 한류천 수질 개선 등의 문제는 한전과 고양시를 포함한 관의 책임이 더 클 것이다. 자금압박과 공사비 상승, 시공사와의 재협약에 따른 공사 지연은 사업자의 책임이라 할 것이다. 대승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책임 공방과 소송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그에 따라 사업 추진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희한한 것은 고양시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한 이 대규모 사업 전반을 점검, 조정하는 작은 부서나 TF는커녕 담당자 하나도 고양시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건축 인허가 담당 부서가 주무부서로 논의의 장에 나오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시정을 책임지는 고양시장의 관심은 온통 뜬구름 잡는 자기 관심사에만 쏠려 있었고, 사업 무산에 대한 고양시의 공식 입장 하나 제대로 나온 것 보지 못했다. 고양시는 경기도 관리감독 하의 100% 민자사업이라고 완전히 손 놓고 있었던 것이다. 고양시 안에서 진행되고 고양시와 고양시민의 이해에 큰 영향을 미칠 사업에 대한 고양시의 이런 태도가 과연 온당하고 정상적인지 심히 의문이다.

 

막상 사업이 엎어지고 나니 탄식하며 열심히 길을 찾아보겠다는 선출직 공직자들은 여럿 있지만, 이런저런 사태를 예상하며 열심히 뛴 사람은 아직 못 본 것 같다. 사업이 본격화된 후 최근까지 이전 4년간은 더욱 그랬지만, 발빠른 대처가 시급한 지금 이 순간도 사정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여러모로 공직자의 기본책무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중앙부처와 경기도, 민간사업자, 고양시, 수많은 이해관계자를 오가며 길을 찾고 일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한 이런 대규모 사업에는 지역 출신 국회의원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해법은?

사업협약 해지라는 행정행위가 이미 이루어진만큼 해지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체상금 감면에 따른 배임 등의 문제로 골머리를 썩여온 경기도나 사업이 지연되는 동안 이중삼중의 자금압박에 시달려온 CJ 측으로서도 이를 계기로 한번 털고 가는 것이 외려 속 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소송과 부지 재매입 등을 통해서라도 일차 정산한 후 새 길을 모색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원형 그대로 추진, 신속한 추진, 책임 있는 자본 확충이라는 경기도 공영개발 방식의 K-컬처밸리 사업 지속 추진이 과연 가능할까, 그것을 가능케 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삐끗하면 사업이 끝을 알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어 한없이 늘어지거나 별 영양가 없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간단하게 몇 가지만 두서없이 짚어보겠다.

 

K-컬처밸리 사업을 공공주도로 신속하게 재추진하겠다는 경기도의 구상은 신뢰할 수 있을까? 솔직히 별로 믿음이 안 간다. 성공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공공주도 대규모 문화사업의 신뢰도를 높일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경기도는 관 주도 사업의 폐해를 지양하기 위해 민관이 머리를 맞대고 갈고 닦아온 지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사업 지원의 대원칙을 견지하며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까?

 

경기도는 최근 K-컬처밸리 사업을 원형 그대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구체적인 방안은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아레나(공연장)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 점이 조금은 미심쩍다. K-컬처밸리의 핵심 앵커 시설은 아레나이고, 아레나 없는 ‘K-콘텐츠 특화 복합문화단지는 차별성을 갖기 힘들다. 어디서라도 가능한 사업이고 경쟁력도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다. 내용 없는 발표에 내용 없는 경제자유구역을 강조하며 막연하게 외자유치를 언급하는 것도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소다.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기보다는 기존 CJ 안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러자면 협약을 해지한 CJ 측과의 협의는 필수다.

 

건설은 경기도와 GH가 책임지고 신속하게 하고 운영은 민간에 맡긴다는 경기도의 발표도 좀 생뚱맞다. 책임 건설의 의지를 밝힌 것까지는 좋으나, 대규모 문화집적시설에서 건설과 운영을 분리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사업이 매끄럽게 진행되려면 계획과 건설 단계부터 건설 주체와 새로운 사업운영주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무엇으로 브랜드를 삼고 어떤 시설을 어떻게 지어 어떻게 운영하며 어떻게 수익을 내고 하는 등등의 일이 계획과 건설 단계에서부터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K-컬처밸리는 K-팝 아레나를 앵커 시설로 하는 K-컬처 복합경험단지로 계획되어 K-컬처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초기의 취사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날선 공방으로 더 이상 앙금을 키우지 말고 지금이라도 경기도가 CJ 측과 재협의 기회를 갖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협약은 해제했어도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는 이야기다. 공사가 17% 진행된 아레나 등등의 설계는 좋았고, 앞으로도 먹힐 수 있을 것 같다. 원상복구하라고 윽박지르기보다는 인수하여 활용하고, 부분 사업자로라도 참여시켜 그동안의 노하우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게 좋을 것 같다.

 

개발비 2조 원에 초기 운영비 4-5조 원의 재원을 마련하기는 간단치 않고, 사업 운영 노하우를 가진 기업이나 조직도 찾기 쉽지 않다. 책임 사업주체를 세우고 폭넓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안을 신속하게,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국내 주요 엔터테인먼트사를 작은 지분으로라도 모두 참여시켜 분위기를 쇄신해보는 건 어떨까.

 

공영개발을 공표한만큼 계제에 관련 법률을 만들어 이 지구를 ‘K-컬처-콘텐츠-미디어 특구로 지정하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문화산업을 육성하려면, 더욱이 한 도시의 대표산업으로 육성하려면 특단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개발단계에서부터 고양시와 고양시민의 참여 창구를 만들고 역할과 비중을 높여야 한다. 경기도에 구성된 T/F와 실무기구에 고양시와 고양시민, 지역 내 전문가들을 폭넓게 참여시켜야 하고, 사업부지 안에 지역 문화예술가와 시민들의 자율 운영 공간 등을 마련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문화예술산업은 지역주민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란다.

 

고양시장과 고양시 출신 국회의원, 도의원의 역할이 막중하다. 예컨대 문화산업도시를 핵심 공약으로 내건 김영환 국회의원이 총대를 메고 다른 선출직 공직자들과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사업을 책임있게 추진해보면 어떨까. 고양시장을 비롯한 고양시와 고양시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뒷받침은 필수다. 고양시와 고양시민이 함께 땀을 흘릴 때 고양 K-컬처밸리는 고양시의 진정한 자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