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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1>

2010년 6월 2일, 고양시에서는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고양시장이 바뀌고 범진보개혁세력이 고양시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했으며, 경기도의원 전체를 야5당 단일후보들이 싹쓸이하고, 경기도교육감과 도교육의원 등의 선거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전국적으로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는 바람이 거세게 불긴 했지만, 고양시에서는 그 이상을 이루었다. 다른 곳과는 달리, 고양무지개연대의 꿈처럼 오색찬란 무지개의 승리를 일구어낸 것이다. 야5당 모두가 당선자를 낸 곳은 고양시를 제외하고는 전국에 단 한 곳도 없으며, 경기도의회의 소수정당 의원은 모두 고양시 출신이다.






<풍경 2>

2010년 7월 1일 저녁 6시, 일산호수공원 수변무대. 고양시민들에 의한 고양시장 임명식이 거행되었다. 색다른 시장 취임식이다. ‘우리가 고양시장입니다’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진행된 취임식에서 최성 고양시장은 ‘시민제일주의’를 선언하며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도시’ ‘그늘진 곳 없는 따뜻한 공동체 도시’ ‘좋은 일자리가 풍부한 자족 도시’ ‘시민들의 참여가 일상화된 자치도시’, ‘사람과 창의성이 존중되는 창조적인 도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풍경 3>

2010년 7월 7일 고양시의회. 6.2지방선거로 새롭게 구성된 시의회의 의장단 선거가 있었다. 한나라당 13명, 민주당 13명, 다른 야3당 4명으로 구성된 시의회에서 의장은 민주당, 부의장은 한나라당이 나눠 가졌고, 상임위원장 5석도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3:2로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소수 야3당을 합쳐 다수당(범야권연합)의 지위를 인정받은 민주당이 결과적으로 소수 야3당은 배제한 채 다수당의 권리를 독점하고 만 것이다. 배제된 소수 야3당은 독자 행보를 했다. 의원 정수 이내에서 질서 있게 범야권 연합후보를 (대부분 복수로) 내는 것으로 정리함으로써 갈등과 대결의 불씨를 남겼던, 선거연대의 약한 고리였던 시의원들 사이에서 고양지역 야권연대는 균열상을 드러냈다.


<풍경 4>

2010년 7월 26일 오늘까지도 야5당과 시민사회의 고양시정 공동운영기구인 고양시정운영위원회가 발족하지 못하고 있다(합의에 따르면 시장 취임일인 7월 1일 발족했어야 한다). 조례로 제도화한 뒤 공식 발족해야 한다는 견해와 합의에 따라 일단 발족한 뒤 제도화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립되면서 위원회의 출범이 늦춰지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공약추진점검, 시민참여 기반마련 등의 산적한 과제도 계속 미뤄지고 있다. 곧 가닥은 잡히겠지만, 향후 제도화와 운영 과정에서 많은 진통이 예상된다.


<풍경 5>

고양무지개연대는 지금 향후 진로를 놓고 고민중이다. 한시적 선거연대기구였으니 해체하고 이전의 느슨한 시민사회단체 협의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견해와 선거 승리로 지형이 달라졌으므로 시정 운영에 적극 참여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 공동체의 기반 확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상설 연대체로 재편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포괄적 연대체와 정치운동체에 대한 고민도 얽혀 있다. 관건은 어느 경우든 연대체를 책임질 단위와 사람이다. 책임 주체가 명확히 서야 강한 연대체를 꾸릴 수 있다. 지역에서는 늘 책임을 갖고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그 경로는 녹녹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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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찬란한 승리를 일구어냈다고 이야기되는 고양지역 야5당 연대와 이를 추동한 고양무지개연대, 그리고 고양시와 고양시의회 주변에서 빚어지고 있는 다섯 가지 풍경이다. 과제는 늘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다. 짧은 기간에는 핵심 고리를 잡아 집중할 수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숨어 있던 사물의 온갖 측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진로를 잡으려면 그 과정을 돌아보아야 한다. 지면의 한계가 있으니, 최대한 압축해서 되짚어보자.


고양무지개연대 출발의 문제의식은 사실 단순했다.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중앙정부의 일방독주를 제어하고 막개발로 망가져가는 고양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대동단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고양지역 시민사회의 오랜 숙원이던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 공동체의 기반 확립이라는 과제가 더해졌다. 6.2지방선거는 눈앞에 다가온 좋은 계기였다. 선거에서 승리하여 MB의 반민주적, 반민중적 국정 운영 방향을 되돌리고 밑바닥에서부터 민주주의와 자치의 기초를 확고하게 다져가는 대전환의 단초를 마련하자는 거였다. 이를 위해 차이를 넘어선 중도-진보 대연합이 제창되었고, 흩어지면 필패임을 인식한 범야권 전체와 시민사회가 한 둥지를 틀었다.


고양무지개연대에는 물론 그 전사가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2002년 8명의 시민후보 시의원을 당선시켰던 2002고양시민행동, 아니 그 이전의 대규모 러브호텔 반대 운동, 1995년부터 시작된 지역정치운동까지 소급되지만, 지면 관계상 이전의 전사는 생략한다. 다만, 고양시에서는 차이를 넘어선 광범한 연대, 그리고 시민정치운동의 전통이 나름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점만 짚고 넘어가겠다. 그렇다고 고양지역 시민사회의 역량이 다른 지역보다 크거나 뛰어났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2009년 새해 벽두의 용산참사를 묵살하는 등 일방통행으로 일관하는 정권에 문제의식을 느낀 고양지역 제 시민사회단체 및 제 정당 대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2009년 3월 고양지역시민사회연석회의를 결성했다. ‘연석회의’는 지역과 전국의 각종 현안에 공동 대응하고 두 전직 대통령 서거 추모사업을 함께 진행하며 다수 시민들의 상식을 대변해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 또한 중앙권력의 횡포에 맞서고 보수기득권 세력이 지배해온 고양시를 시민들의 손에 돌려주기 위해 지방선거에 공동대응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연석회의는 2009년 9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친 토론회와 여러 차례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며 지방선거 공동대응방안을 숙의했다. 제 시민사회단체와 제 정당이 하나의 탄탄한 조직을 꾸려 공동으로 선거를 치르는 방안을 집중 논의한 끝에 11월 연석회의 산하에 지방선거 준비기구인 1062위원회를 구성했고, 그 밑에 기획팀, 정책팀, 조직팀을 두고 실무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잘난 선거법이 발목을 잡았다. 후보의 사조직을 금지하는 취지의 선거운동 유사기관 금지 규정을 확대 해석하여 제 정당과 단체가 하나의 조직을 꾸려 공동 행동하는 것까지도 유사기관으로 규정하는 유권해석이 내려져 있었던 것이다. 2009년 12월 연석회의는 제 정당과 단체가 한 조직을 꾸려 선거에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포기하고, 단체와 정당을 분리하여 일단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취지에 동의하는 고양시민 모두가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연합시민운동체를 꾸리기로 했다. 그리고 야5당의 정당협의체를 별도 운용하며 두 기구의 긴밀한 협력을 모색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고양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은 그 자리에서 ‘좋은 정치 실현을 위한 고양무지개연대 발기인대회 추진모임’의 결성을 결의했고, ‘추진모임’은 연석회의 산하 1062위원회를 재구성하여 제반 실무를 진행하며 단체 설립에 박차를 가했다.


2010년 1월 10일 드디어 250여 명의 발기인이 참여한 가운데 ‘좋은 정치 실현을 위한 고양무지개연대(약칭 ‘고양무지개연대’)’ 발기인대회 및 준비위원회 발족식을 거행했다. ‘준비위원회’는 첫 번째 사업으로 대대적인 조직작업에 착수했으나 선거를 4개월 이상 남겨둔 시점에서 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냉랭했고, 단체의 회원도 별도의 회비를 내고 가입해야 하는 회원 확대방안은 곳곳에서 난항에 부딪쳤으며, 선거법을 의식하여 예비후보자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지 않기로 한 방침을 고수한 결과 초기 동력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었다. 조직사업이 부진하면서 무지개연대는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핵심 일꾼들이 의지를 다지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위기를 헤쳐 나갔다.


1월 20일에는 고양지역 범야권 5당이 제1차 정당협의회를 갖고 지방선거 공동대응에 대한 기본 합의문을 채택했다. 정책연대와 후보연대를 아우르는 전면적 선거연합을 추진한다는 합의였다. 고양무지개연대는 첫 회의부터 야5당 간의 차이를 중재, 조정하면서 선거연합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월 30일 고양무지개연대가 공식 발족했다. 고양무지개연대는 사업계획을 통해 3월까지 고양시민 1만인을 모아 좋은 정책을 내고 좋은 후보를 세워 고양시를 일신하고 대한민국 사회에 새 빛을 던진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당시 지리멸렬하던 범야권 연합 논의를 진보적인 정책의제와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돌파,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그와 동시에 풀뿌리 주민자치를 기반으로 허약한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토대를 굳건히 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후 가장 품을 많이 들인 사업은 정책사업이었다. 정책팀을 정책단으로 확대개편한 뒤, 각 분야의 담당자들이 머리를 짜 내놓은 정책들을 두고 정책단 워크숍도 하고 내부 토론회도 가졌으며, 시민들을 상대로 공개토론회도 갖고 시민공약공모대회도 열었다, 또 다듬은 정책들을 고양시의 야5당과 후보자들에게 정식으로 제안하는 발표회도 갖고, 두 차례에 걸쳐 예비후보자들과의 간담회도 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개발보다는 사람에 투자하며 주민들의 생활상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따뜻한 도시’ ‘풀뿌리 주민자치가 생동하는 초록평화상생의 공동체 도시’를 목표로 하는 ‘고양시정 10대 개혁의제와 100대 정책공약’이 만들어져 나왔다. 이 정책공약을 골자로 범야권 야5당과도 정책연대에 합의했고, 범야권 연합후보 확정 후에는 후보자 전원과 ‘고양무지개 정책협약식’도 맺었다.


부진한 조직사업을 보완하며 고양무지개연대를 널리 알리고자 홍보사업에도 힘을 기울였다. 매주 발행되는 무지개레터를 각 단체를 통해 재배포했고, 매주 토요일마다 자전거 타고 투표참여 캠페인도 벌였으며, 언론보도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시간이 갈수록 고양무지개연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다.


매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열린 집행위원회, 각종 실무회의, 각 팀과 기구의 회의는 무지개연대의 사업을 차질없이 추진할 수 있게 하는 밑받침이 되었고, 거의 매주 열린 각종 행사 주최와 대외행사 참가는 고양무지개연대를 알리고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상근, 비상근 활동가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또 한 가지 역점을 두고 추진한 사업은 바로 정당 간 협상의 중재, 조정이었다. 선거 때까지 15회, 선거 이후까지 몇 차례 더 열린 고양시 5개 야당 정당협의회, 그리고 몇 차례의 간담회, 수없이 열린 비공식 회의에서 고양무지개연대는 중재,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범야권연대를 견인했다. 세 번째 회의에서 합의한 정책연대까지는 순항을 했는데, 문제는 역시 후보연합이었다. 중앙의 5+4 회의가 질척대면서 지역에까지 악영향을 끼쳤다. 그 험난한 과정을 견뎌내고 결국 전면적 선거연합을 이루어낸 밑바닥 힘과 근거는 전국적 합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고양에서는 기필코 합의를 이루어내자는 초심의 거듭된 확인이었다.


5월 4일, 지난했던 협상 끝에 마침내 고양시 야5당 대표들이 고양무지개연대의 중재 하에 전면적 선거연합 합의서에 서명했다. 고양시장 후보로는 민주당 최성 후보가 선정되었고, 광역의원(선거구 8개) 후보로는 민주당 5명, 민주노동당 1명, 진보신당 1명, 국민참여당 1명이 ‘야5당 단일후보’로 뽑혔으며, 각 당의 기초의원(선거구 13개, 지역구 의원 정수 27명) 후보 25명에게는 ‘야5당 연합후보’의 타이틀이 주어졌다. 5월 5일 아침 우여곡절 끝에 고양지역 합의 내용이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후, 기자회견을 통해 고양시 범야권 연합후보 선정 소식을 세상에 알렸다.


야5당의 합의에 따른 연합후보 선정과 별도로, 고양무지개연대는 독자적인 지지후보 검증, 선정 작업도 벌였다. 좋은 정책을 추진할 좋은 후보를 세우고 시민들의 선택권에 도움을 주기 위한 의도였다. 5월 11일 총 21명의 후보가 고양무지개연대 지지후보로 최종 선정, 발표되었고, 이들에게는 ‘고양무지개연대 선정 좋은후보’의 명칭이 주어졌다.


한편, 5월 13일에는 고양시의 야5당과 고양무지개연대 대표들이 고양시정 공동운영방안에 합의하면서 지방정부 공동운영과 시민참여 거버넌스의 기초가 놓였다. 이어서 5월 18일에는 고양무지개연대, 고양시 야5당, 고양시 범야권 연합후보들 간에 ‘고양무지개 정책협약식’이 열려 6.2지방선거 고양지역 선거연합의 대미를 장식했다.


5월 20일 드디어 온 거리에 플래카드가 내걸리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플래카드마다 쓰인 ‘야5당 단일후보’ 또는 ‘야5당 연합후보’라는 글귀는 묘한 설렘을 일으켰다.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후보자와 각 당의 선거운동원들이 때로는 따로, 때로는 같이 움직이며 일으키는 무지개의 물결은 좋은 예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선거 중간에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가 발표되면서 잠시 이상기류가 일기도 했지만, 결국 미풍에 그쳤다. 사람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열심히 전화를 돌렸다. 고양시의 범야권 연합후보들, 무지개연대 지지후보들의 이름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갔다.


6월 2일, 마침내 고양시에 무지개가 떴다. 그리고 7월 1일, 새로운 시정부와 시의회가 들어섰고, 전국적으로도 범야권의 지방선거 승리를 계기로 국정운영의 방향을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민주, 민생, 평화를 확실하게 챙기고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 공동체의 기초를 다지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만물의 숨어 있던 측면들이 자신을 속속 드러내며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때일수록, 초심을 상기하고 험난했던 과정을 돌아보며 마음과 머리를 맑게 하고 시대의 명령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