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찍이 정리한 몇 가지 글에 남이 쓴 글 몇 가지를 보태어 재정리해보았습니다. 2주쯤 뒤 어느 책자에 실릴 예정인데, 책자 이름은 아직 밝히지 않겠습니다. 제가 카피레프트 지지자인만큼 제가 무단으로 베껴온 글의 필자들도 용서해주시겠지요? 인용 주를 몇개 달긴 했는데, 퍼오는 과정에서 사라지네요. 인용한 글은 하승수, 최태욱, 선학태 등입니다. 중간 부분은 김달수 의원이 정리한 글에 최근 논의를 일부 가미하여 재정리했습니다.



제1장 지방공동정부의 출범과 의미


제1절 새로운 실험과 도전


Ⅰ. 2010년 6월 2일, 새 역사가 시작되다


6.2지방선거는 범야권연합의 승리로 끝났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에 여당 인사가 당선됐는데 무슨 말이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서울시와 경기도의회의 압도적 다수를 야권이 차지했고 야권의 취약지였던 충청도와 강원도, 그리고 경상남도에까지 범야권 인사들이 대거 진출했으며 기초단체장과 지방의회에 범야권 인사들이 대약진했음을 감안하면, 범야권이 완승을 거두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야권 전체의 지지율이 여권이 지지율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된 범야권연합의 시너지가 나비 효과를 내면서 이루어내 승리였기 때문에 그 함의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 중심에 고양시가 있다. 광역 단위에서는 인천을 시작으로 부산, 경남, 대전, 충남, 충북, 서울, 경기, 인천, 강원 등지에서 광범위한 야권연합이 이루어졌지만, 기초 단위에서 전면적인 선거연합을 이루어낸 곳은 전국에서 고양시가 유일하다. 더군다나 광역 단위까지를 포함해서도 고양시처럼 정책연대와 후보연대, 지방정부 공동운영을 모두 포괄하는 전면적 선거연합을 이루어낸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만큼 그 성과도 눈부셨다. 여권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이루던 고양시에서 고양시장이 야권(민주당)으로 바뀌었고, 범진보개혁세력이 고양시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했으며(민주당 13, 소수야당 4, 한나라당 13), 경기도의원 전체를 야5당 단일후보들이 싹쓸이하고, 경기도교육감과 도교육의원 선거에서도 진보 인사들이 당선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전국적으로 민심을 거스르며 일방독주하는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는 바람이 거세게 불긴 했지만, 고양시에서는 그 이상을 이루었다. 다른 곳과는 달리, 고양무지개연대의 꿈처럼 오색찬란 무지개의 승리를 일구어낸 것이다. 야5당 모두가 당선자를 낸 곳은 고양시를 제외하고는 전국에 단 한 곳도 없으며, 경기도의회의 소수정당 의원(지역구 3, 비례 1)은 모두 고양시 출신이다.


하여,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너무 많이 양보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다른 야당이 상대적으로 많이 진출한 고양시에서조차 정당 지지율 분포에 대비해보면 오히려 민주당이 지지율을 훨씬 넘어서는 몫을 차지했다. 민주당이 연합의 성과를 독차지하다시피 한 다른 지역들과 달리 연합의 성과를 상대적으로 고르게, 아름답게 나눠 가진 것이다.


물론 범야권연합보다 더 근본적인 변수는 이명박 정부의 일방독주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었다. 여러 방면의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국민들은 민주당이나 범야권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친부자 정책과 개발독재 식 일방독주가 싫어서 범야권에 표를 몰아주었다. 특히 민주당이 좋아서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는 국민들의 비율이 단 몇 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 앞에서 민주당, 그리고 범야권은 겸허하게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고양지역의 야권연합 과정과 선거결과 분석에서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보수기득권 세력의 오랜 지역 지배에 대한 시민들의 염증 및 불만과 그 고리를 놓치지 않고 선거에 결합시킨 고양지역 시민사회의 대응이다. 12년 전에 딱 한 차례 민주당 시장이 당선된 적이 있지만(1년 만에 사망한 뒤 다시 한나라당 시장이 되었다), 그조차도 진보개혁과는 거리가 먼 토착기득권 세력의 대표자로서 시의 정책적 변화는 거의 없었으니, 유사 이래 보수기득권 세력이 고양시의 지배권을 넘겨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토착 기득권세력 및 그와 결합한 유입 보수세력은 근래 들어 신도시 및 대단위 택지 개발에 편승하여 고양시 전역을 공사판으로 만들며 환경을 파괴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려왔다. 고양지역 시민사회는 무소속 대표의 제도정치권 진출 전략을 포기하는 대신 범야권연합을 추동하며 고양시를 주민자치를 기반으로 한 따뜻한 공동체 도시로 만든다는 진보적 의제를 범야권연대의 핵심 정책기조로 자리잡게 했다.


6월 2일 선거가 야권의 승리로 끝나고 7월 1일 새 시장과 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되면서 고양시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 닿는 곳마다 일찍이 아무도 걸은 적이 없는 새로운 눈밭이니 개척자의 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도시상을 그리고 그 실천전략을 짜야 할 때다.


Ⅱ. 새로운 역사가 쓰이기까지


새 역사를 만들려면 지난날을 돌아보아야 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사과도, 권력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날을 돌아보아야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직시할 수 있고 앞길도 보이며 앞길에 놓인 장애물도 가늠할 수 있다. 고양시에서 진보개혁을 지향하는 지역정치운동이 시작된 건 15년 전부터지만, 지면 관계상 옛일은 생략하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고양시에 범야권의 진보개혁정부가 들어서게 된 과정만을 짤막하게 짚어보자.


6.2지방선거 1년 전까지만 해도 지방선거는 여권이 낙승할 분위기였다. 다수 국민의 뜻을 거스르며 독주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높았지만, 국민들의 여망을 쓸어 담을 그릇이 없었다. 범야권의 각 정당은 4-5개로 나뉜 채 지리멸렬한 상태였고, 그 맏형 격인 민주당도 지도력과 전략 부재에 시달리며 지방선거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시민사회 역시 안팎의 한계에 봉착하며 예전 같은 비전과 전투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선거 1년 전의 각종 여론조사에도 이 같은 상황이 적나라하게 반영되어 나타났다. 범야권 정당 지지율 합계가 한나라당 지지율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다 합쳐도 한나라당이 낙승할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야권에 위기감이 감돌았다.


고양시의 경우에도 예외일 수 없었다. 고양시의 범야권과 시민사회에서는 뭉치지 않으면 필패한다는 위기의식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 단초는 일찍이 연초부터 형성되었다. 2009년 초두의 용산참사와 그에 대한 정부의 무자비한 대응을 보면서 한동안 각개약진하던 고양지역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연대하여 공동대응하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3월 고양지역 시민사회연석회의가 결성되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민주당이 차례로 가세했다(국민참여당은 10월 준비위 결성 후 참가). 연석회의의 문제의식은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중앙정부의 일방독주를 제어하고 막개발로 망가져가는 고양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대동단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고양지역 시민사회의 오랜 숙원이던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 공동체의 기반 확립이라는 과제가 더해졌다.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함께 추모하고 여름을 맞으면서 연석회의 내에서 일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공동대응하자는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개별적으로 선거를 준비하거나 분위기를 탐색하던 예비후보들이 선거 공동대응에 큰 관심을 보이며 선거연합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고양지역 시민사회는 일찍부터 독자후보 전술을 포기하는 대신 야권연대를 성사시켜 범야권의 승리를 이끌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에서 진보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뜻을 모아갔다. 1995년 이래 독자후보 전술을 펴 다수의 시의원을 시의회에 진출시킨 바 있지만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여야 나눠먹기식 중선구제라는 제도적 한계로 말미암아 쓰디쓴 좌절을 맛본 데 따른 반작용이었다. 거기에 야권 분열시 존재감마저 잃을 위기를 느낀 소수정당들이 선거 공동대응에 적극 나서고, 역시 야권 분열시 당선을 기약할 수 없는 민주당 후보들이 속속 결합해왔다.


범야권 내에서, 선거에서 승리하여 MB의 반민주적, 반민중적 국정 운영 방향을 되돌리고 밑바닥에서부터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자치의 기초를 확고하게 다지는 대전환의 단초를 마련하자는 지역 시민사회의 제창이 힘을 얻어갔다. 연석회의는 2009년 9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친 토론회와 여러 차례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며 지방선거 공동대응방안을 숙의했다. 이윽고 차이를 넘어선 중도-진보 대연합이 제창되고, 흩어지면 필패임을 인식한 범야권과 시민사회가 한 둥지를 틀었다. 고양지역 제 시민사회단체와 제 정당은 하나의 탄탄한 조직을 꾸려 공동으로 선거를 치르는 방안을 집중 논의한 끝에 11월 연석회의 산하에 지방선거 준비기구인 1062위원회를 구성했고, 그 밑에 기획팀, 정책팀, 조직팀을 두고 실무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선거법이 발목을 잡았다. 후보의 사조직을 금지하는 취지의 선거운동 유사기관 금지 규정을 확대 해석하여 제 정당과 단체가 하나의 조직을 꾸려 공동 행동하는 것까지도 유사기관으로 규정하는 유권해석이 내려져 있었던 것이다. 2009년 12월 연석회의는 제 정당과 단체가 한 조직을 꾸려 선거에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포기하고, 단체와 정당을 분리하여 일단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취지에 동의하는 고양시민 모두가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연합시민운동체를 꾸리기로 했다. 그리고 야5당의 정당협의체를 별도 운용하며 두 기구의 긴밀한 협력을 모색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고양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은 그 자리에서 ‘좋은 정치 실현을 위한 고양무지개연대 발기인대회 추진모임’의 결성을 결의했고, ‘추진모임’은 연석회의 산하 1062위원회를 재구성하여 제반 실무를 진행하며 단체 설립에 박차를 가했다. 2010년 1월 10일 드디어 250여 명의 발기인이 참여한 가운데 ‘좋은 정치 실현을 위한 고양무지개연대(약칭 ‘고양무지개연대’)’ 발기인대회 및 준비위원회 발족식을 거행했다.


한편, 고양지역 범야권 5당은 1월 20일 제1차 정당협의회를 갖고 지방선거 공동대응에 대한 기본 합의문을 채택했다. 정책연대와 후보연대를 아우르는 전면적 선거연합을 추진한다는 합의였다. 고양무지개연대는 첫 회의부터 야5당 간의 차이를 중재, 조정하면서 선거연합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분리 대응 과정이 자세히 일려지지 않으면서, 외부에서는 이후 고양지역의 범야권 연대를 통틀어 ‘고양무지개연합’ 또는 ‘고양무지개연대’로 통칭하기도 한다.


1월 30일 고양무지개연대가 공식 발족했다. 고양무지개연대는 사업계획을 통해 3월까지 고양시민들을 모아 좋은 정책을 내고 좋은 후보를 세워 고양시를 일신하고 대한민국 사회에 새 빛을 던진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당시 지리멸렬하던 범야권 연합 논의를 진보적인 정책의제와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돌파,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그와 동시에 풀뿌리 주민자치를 기반으로 허약한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토대를 굳건히 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고양무지개연대는 조직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범야권 연합의 기본토대가 될 정책사업에 많은 품을 들였다. 정책팀을 정책단으로 확대개편한 뒤, 각 분야의 담당자들이 머리를 짜 내놓은 정책들을 두고 정책단 워크숍도 하고 내부 토론회도 가졌으며, 시민들을 상대로 공개토론회도 갖고 시민공약공모대회도 열었다, 또 다듬은 정책들을 고양시의 야5당과 후보자들에게 정식으로 제안하는 발표회도 갖고, 두 차례에 걸쳐 예비후보자들과의 간담회도 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개발보다는 사람에 투자하며 주민들의 생활상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따뜻한 도시’ ‘풀뿌리 주민자치가 생동하는 초록평화상생의 공동체 도시’를 목표로 하는 ‘고양시정 10대 개혁의제와 100대 정책공약’이 만들어져 나왔다.


2월 24일, 고양지역의 범야권 5당과 고양무지개연대는 무지개연대가 제안한 ‘고양시정 10대 개혁의제와 100대 정책공약’의 골자를 중심으로 한 정책연대에 합의했다. 이는 이후 범야권 고양시장 공약의 골간을 이루었고, 시도의원들의 공약에도 두루 반영되었다.


범야권 5당은 정책연대에 합의한 후 뜨거운 감자인 후보연대 논의에 착수했다. 무지개연대는 선거 때까지 15회, 선거 이후까지 몇 차례 더 열린 5개 야당 정당협의회, 그리고 몇 차례의 간담회, 수없이 열린 비공식 회의와 만남에서 협상안을 제시하고 중재,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범야권의 완전한 연대를 견인했다.


비교적 순항하는 듯했던 고양지역의 후보연대, 공동후보 논의는 뒤늦게 시작된 중앙의 5+4 협상이 난관에 부딪히면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소수야당의 요구가 거센 고양지역에서 민주당이 ‘많은’ - 실제로는 지지율 배분 이상으로 민주당의 기득권을 일부 인정하고 있었는데도 - 양보를 할 경우 전국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을 우려한 민주당 지도부에서도 고양지역의 협상에 제동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범야권연합의 대주주로서 연합의 시장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았던 민주당 시장후보의 당내 경선도 후보연대 협상에 영향을 미쳐, 아까운 시간을 잡아먹었다. 4월 24일 민주당 시장후보 경선에서 최성 후보가 이기고 그 즈음 중앙의 4+4 협상이 완전 결렬되면서 고양지역의 후보연합은 오히려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협상 대표들은 전국적 합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고양에서는 기필코 합의를 이루어 반드시 승리하자는 초심을 거듭 확인하며 거의 매일같이 테이블을 마련했다. 고양지역 시민단체들도 연합을 반드시 성사시키라며 압박했고, 광역 단위이긴 했지만 인천과 부산 등지의 협상 진전도 연합 협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5월 4일, 지난했던 협상 끝에 마침내 고양시 야5당 대표들이 무지개연대의 중재 하에 연합후보 선정 합의서에 서명했다. 고양시장 연합후보로는 민주당 최성 후보가 선정되었고, 광역의원(선거구 8개) 후보로는 민주당 5명(1명은 무소속 영입), 민주노동당 1명, 진보신당 1명, 국민참여당 1명이 ‘야5당 단일후보’로 뽑혔으며, 각 당의 기초의원(선거구 13개, 지역구 의원 정수 27명) 후보 25명에게는 ‘야5당 연합후보’의 타이틀이 주어졌다(범야권 연합후보만도 선거구당 2대 1이 넘는 경쟁구도 하에 선거가 치러지면서 이는 향후 연합정신 약화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5월 5일 아침 우여곡절 끝에 고양지역 합의 내용이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후, 기자회견을 통해 고양시 범야권 연합후보 선정 소식을 세상에 알렸다.


야5당의 합의에 따른 연합후보 선정과 별도로, 고양무지개연대는 좋은 정책을 추진할 좋은 후보를 세우고 시민들의 선택권에 도움을 주기 위해 독자적인 지지후보 검증, 선정 작업을 벌여 총 21명의 후보를 ‘고양무지개연대 선정 좋은후보’로 선정, 발표했으나, 몇몇 선거구를 제외하고 그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무지개연대의 투표참여 캠페인과 무지개레터 등의 홍보활동이 계속되고, 무지개연대와 고양지역 야권연합에 대한 언론보도가 잇따르고, 연합 참여 정당과 조직들을 통해 전면적 야권연합 소식이 퍼져나가면서 연대연합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공식 선거운동 개시를 앞두고, 고양지역의 전면적 야권연합에 화룡점정을 하는 두 가지 의식이 진행되었다. 5월 13일 고양시의 야5당과 고양무지개연대 대표들은 고양시정 공동운영방안에 합의하면서 지방정부 공동운영과 시민참여 거버넌스의 기초를 놓았다. 정책연대와 후보연대에 이어 지방정부 공동운영이라는 차원 높은 합의까지 이루어낸 것이다. 이 합의를 고리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고양시장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하며 연합후보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상징적으로 고양시장 선거 캠프에는 야5당과 시민사회 대표자들이 두루 참여하기로 했다. 이어서 5월 18일에는 고양무지개연대, 고양시 야5당, 고양시 범야권 연합후보들 간에 ‘고양무지개 정책협약식’이 열려 6.2지방선거 고양지역 선거연합의 대미를 장식했다.


5월 20일 드디어 온 거리에 플래카드가 내걸리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플래카드마다 쓰인 ‘야5당 단일후보’ 또는 ‘야5당 연합후보’라는 글귀는 묘한 설렘을 일으켰다.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후보자와 각 당의 선거운동원들이 때로는 따로, 때로는 같이 움직이며 일으키는 무지개의 물결은 좋은 예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선거 중간에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가 발표되면서 잠시 이상기류가 일기도 했지만, 결국 미풍에 그쳤다. 사람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열심히 전화를 돌렸다. 고양시의 범야권 연합후보들, 무지개연대 지지후보들의 이름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갔다.


6월 2일, 마침내 고양시에 무지개가 떴다. 그리고 연합정신을 살려 범야권 제 정당과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고양시장직 인수위원회를 꾸려 시정 인수작업을 벌인 뒤, 7월 1일 드디어 새로운 시정부와 시의회가 들어섰고, 전국적으로도 범야권의 지방선거 승리를 계기로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민주, 민생, 평화를 확실하게 챙기고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 공동체의 기초를 다지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만물의 숨어 있던 측면들이 자신을 속속 드러내며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때일수록, 초심을 상기하고 험난했던 과정을 돌아보며 마음과 머리를 맑게 하고 시대의 명령을 되새겨야 한다.


Ⅲ. 6.2지방선거 이후의 과제


2010년 6.2 지방선거는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에게 중차대한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물론 제도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중앙집권 경향이 매우 강한 우리 사회에서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명백하지만, 어쨌든 국민들이 기회를 준만큼 이 기회를 잘 살려서 진보개혁세력이 집권하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국민 대다수의 뜻을 무시하는 이명박 정부의 일방독주를 심판하면서 ‘삶의 질’의 개선 없는 개발에 대해 명백한 반대의사를 표출했다. 다시 말해서 민생과 복지, 민주주의와 평화에 표를 던진 것이다. 그러므로 선거에서 승리한 진보개혁세력은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무엇보다도 민생과 복지를 증진하고 민주주의와 평화를 고양하는 데 힘써야 한다.


또한 이번 선거가 지방자치를 이끌 주역들을 뽑는 지방선거였던만큼 말뿐인 지방자치를 자치의 본령에 맞게 발전시켜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자치의 핵심은 지역 주민들에게 결정권을 최대한 돌려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자치단체장이 갖고 있던 ‘제왕적’ 권력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그 핵심이다.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주민들은 주어진 권한을 보다 책임 있게 행사하면서 지역 공동체의 책임 있는 성원이 될 것이고, 이런 과정이 제도화되어 정착할 때 민주주의의 기반은 눈에 띄게 강화될 것이다. 말로만 떠들던 풀뿌리 민주주의, 풀뿌리 주민자치가 구현되는 것이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 제한적으로나마 범야권 연대가 성사된 많은 지역에서 범야권 정당들과 지역 시민사회는 지방정부 공동운영에 합의했다. 연합의 경험이 일천한 우리 사회에서 지방정부를 공동운영한다는 것은 새로운 실험이요 도전이다. 더군다나 현행 지방자치제 하에서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와 달리 연합 주체들 사이에 권력을 배분할 자리가 거의 없다. 따라서 지방정부 공동운영의 새로운 틀이 마련되지 않는 한, 공동정부는 허공에 뜰 수밖에 없다. 합의정신을 존중하며 상호신뢰 하에 시정 공동운영의 새로운 틀을 짜고 실행해가면서, 주민들의 시정 참여 기회와 폭을 획기적으로 늘려 주민자치를 기반으로 한 따뜻한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분야별 과제와 쟁점을 논하기에 앞서, 우선 지난 20년 지방자치의 한계를 돌아보며 그 과제를 좀 더 자세히 점검해보자. 허울뿐인 지방자치의 내실을 기하는 것이 만사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자료 관계상 전국적 실태에 초점을 맞추어 돌아보는데, 지역별 편차가 거의 없으므로 우리 고양지역에도 거의 그대로 해당되는 이야기다.



제2절 지방자치 20년의 한계와 과제


Ⅰ. 지방자치 들여다보기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하고 1995년 자치단체장까지 민선으로 선출하면서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가 열렸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50%(시도지사는 55%)가 넘는 사상 초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풀뿌리 세력과 민노당을 포함한 진보․개혁세력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가혹하리만치 참담하게 패배했다. 그리고 다시 4년이 흘러 2010년 6월 2일 제5대 동시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서울, 경기, 충청, 경남 등지에서 범야권 자치단체장 후보들이 크게 약진했고, 지방의회도 여소야대를 이루면서 야권에 승리를 안겨주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20년 가까운 역사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정치적 기반이 매우 취약한 상태다. 자치단체장은 여전히 행정대리인의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고, 지방의원은 집행부에 대한 수동적 거수기 역할에 안주하고 있다. 여기에 시민사회는 나약하고 주민들은 관조적이며, 그에 따라 정치 불신의 강도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 지방자치와 지역정치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를 포함하여, 우리사회는 아직도 지방자치를 행정(업무)분산, 권한이양 정도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민주화가 국가권력의 분산(3권 분립, 중앙정부->지방정부), 시민의 정치참여에 의한 권력 구성, 권력 감시 등을 포괄하는 과정이라고 할 때, 민주주의는 지방자치를 강화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시민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1. 제도의 구조적 한계와 반쪽짜리 지방자치


지방자치의 핵심은 법령제정권과 세제 신설 및 자율 조정이 보장된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이다. 그러나 자치입법권은 ‘법률 및 법령의 범위 안에서’의 조례 및 규칙제정권만 인정하고 있고, 지방자치체의 업무는 국가위임 사무를 대행하는 것이 태반으로 지방정부 고유사무는 40%를 밑돌며 자치행정권과 조직권도 크게 제한되어 있다. 또한 대부분의 세원을 국세(80%)로 가져가고, 지방세(20%)는 법률로 엄격히 제한하면서 자치재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


반면, 국가의 지도·조언·권고·감독권, 취소·정지권, 직무이행명령권, 감사권, 재의요구권, 제소권 등등 중앙정부는 자치단체에 대한 다양한 개입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지방자치를 ‘타치 속의 자치’, 틀은 갖추었으나 알맹이는 없는 ‘중앙통치의 변형’이라는 비판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심지어 행정안전부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나아가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은 지역의 자본과 인재의 역외 유출, 지방대학의 와해 조짐, 지역경제의 침체 등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면서 지방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지고 사회통합이 저해당하며 민주주의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지방정부는 지역 내에 거주하는 주민, 대학, 기업, 시민단체 간에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생적, 내발적인 지역발전 모델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하며, 국가적으로는 지역 간에 정책경쟁과 조세경쟁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지방정부에 충분한 자치권, 특히 배타적인 입법영역이 설정된 자치입법권을 부여하는 틀이 설계돼야만 가능해진다1).


결국 지방자치단체에 가장 절실한 과제는 권한과 세원의 자율성 보장, 자주적인 재원 마련과 지역 인재 확보 역량, 지역(주민)의 국정참여권을 보장하는 제도 마련, 그리고 인근 자치단체와의 협력을 통한 사회서비스의 자유로운 이용, 지역의 자립과 균형발전을 위한 사회경제적 자원의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분배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적절한 경쟁과 견제, 때로는 정책의 상상력을 주고받는 협력과 상호보완 관계가 정립될 때 온전한 지방자치를 말할 수 있으며, 지방자치의 혁신은 이를 강화하는 수평적 권력분점이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2. 행정계층 축소와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역주행


최근 지역에서 격한 대립과 갈등을 낳고 있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안과 추진방식 또한 문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내놓은 개편안의 공통점은 16개 광역시도를 폐지하여 행정계층을 축소하고, 전국의 시군을 묶어 60~70만 명 수준의 '통합시' 약 70개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 안은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정부의 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키고 중앙정부의 지방정부 통제를 더욱 용이하게 하여 지방자치를 사실상 무의미하게 할 개연성이 높은 매우 위험한 개편안’이라며 학계와 지역 시민사회에서도 반대하고 있고, 분권과 자치의 시대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 안이다.


지방정부에 40% 남짓한 권한만을 주고 업무의 중복과 비효율성을 논하는 것은 넌센스다. 행정계층의 축소와 자치단체의 무리한 통합은 환경과 복지 등 정치적 완충 구조의 와해, 민원해결의 지체, 역사적으로 형성된 생활·경제권역의 변화 등 많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영국은 1992년 지방정부법을 개정하여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역사회에 이양하면서 지역을 광역화했다. 프랑스도 2000년 22개의 광역자치단체를 6개의 초광역자치단체로 통폐합하기로 하고 2003년 개헌으로 지방분권화를 강화했다. 독일의 경우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되고 유럽통합이 가속화되면서 경쟁력 있는 지역단위를 만들기 위해 16개 주를 9개의 광역주로 재편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도 2018년까지 ‘지역주권형 도주(道州)제’를 완성하기로 하고 현행 47개의 도도부현(都道府縣)을 10개의 도주로 통합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도 이번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연방제형’ 지방분권제, 시민들의 참여가 활성화될 수 있는 소규모의 자치단위 등 행정체제개편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이고 혁신적인 숙고와 공론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3. 지역 없는 정당체제와 풀뿌리 보수주의


각 정당들의 지구당(지역위원회)은 지방선거 시기가 가까워져서야 지역 의제나 후보 발굴에 나선다. 선거 시기 외에는 중앙의 투쟁방침이나 전국적 의제를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지역에서의 일상적 주민사업과 정책개발, 시정감시활동에는 극히 인색하다.


시민사회 또한 분권과 지역주권 확보를 위한 활동에 소극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지역권력은 토호·보수세력의 전유물처럼 독과점돼 있다. 강력한 양당체제하에서 시류에 따라 이당저당 옮겨 다니는 토호세력들에게, 지방선거는 이들의 이해와 이권을 합법적으로 보장해주는 제도적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결국 지역권력의 독점과 배타성, 차별화된 지역정책의 부재, 그리고 풀뿌리 시민사회의 기반 허약이라는 조건이 지속되면서 지역정치의 보수화는 고착화되는 추세다. 지방자치가 직접민주주의의 훈련장이며 다양한 상상력들의 용광로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정치적, 정책적 다양성과 상상력이 싹도 트기 전에 고사할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강력한 양당구조에서 다수제 정치시스템이 폐쇄적으로 작동하는 경우에는, 승자독식과 패자전몰을 초래하는 사활적 제로섬 게임을 만들어 갈등사회를 관리하고 통합하는 데 근본적인 제도적 결손을 드러낸다는 평가다2). 우리는 지방자치에서 이러한 제도적 한계와 약점을 더욱 절절하게 체험하고 있다. 지역의 보수화와 역주행을 막을 제도적 장치 마련과 주체 형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4. 있는 듯 없는 듯한 주민참여제도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그동안 금기시됐던 감사 영역에서도 주민참여가 도입되었다. 또한 2007년부터는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주민들이 해임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도가 도입되었다. 많은 지자체들이 주민참여예산제나 주민참여감사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들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전시와 제주도는 2000년 주민감사청구제가 마련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주민감사청구도 없었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2002년 각 1건씩, 대구시가 2006년 2건 청구됐다. 서울시가 41건으로 제일 많지만 그나마도 요건미비 등을 이유로 기각되는 비율이 높은 실정이다. 행정에 대한 주민들의 무관심일 수도 있지만, 자치단체장과 공무원들의 각종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 제도의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주민소환제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소환제도가 실제 투표까지 이어진 경우는 2007년 5월 이 제도가 시행된 이래 단 두 차례뿐이다. 대부분이 서명인수 부족이나 대표자 증명신청 취하로 투표가 실시되지 못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물론, 국회까지 주민소환제 흔들기에 나섰다. 주민소환을 청구할 때 구체적 사유를 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주민소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소환 발의자에게 물게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주민소환 청구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방의원 보궐선거 투표율이 20%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의 주민서명 기준(광역단체장 10%, 기초단체장 15%, 지방의원 20%)과 유효 투표율 기준(33%)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투표율 기준을 없애고 소환 발의 절차를 더욱 쉽고 간편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주민참여예산제도 몇몇 자치단체에서 조례로 정해놓고 있지만, 요식적인 형식절차에 지나지 않거나 상징적인 제도로만 머물러 있다. 예산집행의 투명성을 높이고 낭비요인을 줄이며 주민친화적인 예산편성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정보공개와 설명의 책임, 평가환류와 주민참여 구조를 분명히 하는 보다 혁신적이고 강력한 제도가 필요하다.


Ⅱ. 현 단계 지방자치의 문제점


1. 강력한 중앙집권적 제도와 관행


중앙 관료집단은 스스로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방의 자치권을 극도로 제한해왔다. 광역지방자치단체의 경우 행정부지사 1인을 국가공무원으로 하여 실질적으로 중앙정부가 인사권을 행사해왔으며, 기초자치단체의 부단체장은 광역자치단체에서 임명해왔다. 또한 중앙정부는 재정이 취약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중앙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도록 지방재정제도를 운영해왔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중앙의 보조금, 지방교부세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통해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 위에 군림하며 지방자치의 자율성을 제약할 수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권도 극도로 제약돼왔다.


2. 폐쇄적·독점적 지역정치구조의 고착화


지방권력의 패권적 일당 독점 구조로 견제와 균형은 물론이거니와 정책적 경쟁구조 자체가 실종돼버렸다. 토호세력과 밀착한 양대 중앙정당 일색의 정치구조로 말미암아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와 생활정치는 위기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정권은 바뀌어도 토호세력이 장악한 지방권력은 -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 바뀌지 않는다. 이번 2010년 지방선거에서 범야권세력이 크게 약진하긴 했지만, 인물 면에서 보면 개혁 정치인들의 진출은 아직도 목마르기만 하다.


3. 견제와 균형의 상실 - 제왕적 단체장


지방자치단체장은 중앙정부나 중앙정당 또는 중앙 정치인과의 관계에서는 ‘약자’ 입장인 경우도 있지만, 지방자치단체 안에서는 ‘제왕적’ 존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권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이 극단적으로 강한 강시장-약의회 형을 채택하고 있는데, 현행 지방자치의 문제점은 상당부분 여기에서 비롯된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우선 인사권(공무원 임용, 승진 등), 재정권(예산 편성권) 등을 거의 독점하여 행사할 수 있다. 지방 공무원은 인사권자인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중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면서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줄서기를 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단체에 인사위원회가 있고 승진 심사는 인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인사위원 위촉권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있기 때문에 독립성이 미흡하다.


지방자치단체장은 또한 예산 편성권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예산은 지방자치단체장이 편성하고 지방의회가 심의‧의결하여 확정하게 돼 있지만, 사실 예산 편성 단계에서 기본적인 예산 내용은 거의 확정된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예산을 편성해줘야 지방의원은 소속 지역구나 집단․단체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장이 예산을 매개로 지방의원들을 ‘관리’하는 상황이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장은 보조금이나 각종 사업을 매개로 지역의 여러 집단과 단체들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 보조금을 따내야 하는 단체의 입장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비판적 입장을 취하기가 어렵다. 지방자치단체장이 행사할 수 있는 각종 인‧허가권이나 도시계획 관련 권한도 거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이러한 권한들을 매개로 지역사회에서 ‘제왕적’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된다.3)


4. 약하고 무능한 지방의회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의회가 대의기관으로서 견제‧감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은 이론에 불과하다. 지방의원은 공천을 받기 위해 중앙정당 또는 중앙 정치인과 후견-피후견 관계를 맺고, 지역구 예산 배분이나 이권 개입을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장과 협력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또한 많은 지방의원들은 지역 기득권층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단체의 이익을 제도권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다.


제도적으로도, 지방의회는 권한이 약하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인사권을 견제할 수 없고, 예산 및 결산에 대한 승인권을 가지고 있지만, 역량 부족과 제도적 한계(심의 시간 부족, 증액 편성 불가 등) 때문에 실제로는 일부 예산의 액수를 줄이거나 조정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이런 제도적 문제와 다른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지방의회는 무능한 존재가 되어버렸고, 지방의원들은 제 역할도 못하면서 낭비성 해외연수 등 각종 혜택만 누리려 하고 부패에 연루되기나 하는 존재들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4)


5. 민주적 거버넌스의 배제와 형식적인 주민참여


주민이 견제하기도 쉽지 않다. 2006년까지 여러 법률의 제‧개정으로 주민소환, 주민투표, 주민감사청구, 주민소송 등의 제도들이 도입되기는 했으나, 각 제도의 실행 요건이 너무 엄격해서 주민이 활용하기 어렵다. 주민투표제의 경우에는 도입된 지 6년이 다 돼가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상황이다. 주민들의 청구에 의해 주민투표가 이루어진 사례가 전무한 실정이다. 주민소환제의 경우에도 도입된 지 3년이 다 돼가지만, 실제로 투표까지 간 사례는 단 2건(경기도 하남시, 제주특별자치도)뿐이고, 그나마 투표율 3분의1 이상 조항에 묶여 개표도 하지 못했다. 주민감사청구, 참여예산제 등 다른 주민참여제도들도 지극히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방자치가 공무원의 독점적 영역이던 행정에 주민참여의 가능성을 열어주기는 했으나, 여전히 시민들로부터 유리된 일방통행식 정책결정과 행정집행으로 행정의 주민친화적 혁신은 요원하기만 하고, 지역 시민사회와의 협력, 중간지원조직의 사회적 역할을 배제한 제한적 시민참여로 공공행정기관의 경직성과 관료제는 여전히 굳건하다. 민주적 거버넌스(민관 협치) 구조를 실효성 있게 설계하고 제도로 정착시켜 시민참여의 새로운 실험모델을 만드는 것이 2010지방선거에서 당선된 혁신 자치단체장들의 숙제이자 지역혁신의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다.


6. 부정부패와 구조적 비리의 만연


지방 공무원 및 지역정치인의 지역 개발사업 개입 등 토착세력과 야합한 구조적인 비리도 지방자치의 발전을 가로막고 정치불신을 악화시키는 고질병이다. 민선4기 전국 230곳의 기초자치단체장 중 92명이 임기 중 검찰에 기소되고, 전체 단체장의 14%에 해당하는 33명이 직위상실 형을 받거나 재판 중에 사직 또는 직위를 상실했다(1995~98년 23명, 1998~2002년 59명, 2002~6년 78명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


지방의회의 경우에도, 민선 1기부터 5기까지 지방의원 2만 2,600여명 가운데 5%인 1,025명이 사법 처리되었고, 의원직을 상실한 경우도 492명에 이른다. 특히 1·2기에는 사법처리 의원이 80명을 넘지 않았으나, 3기에는 262명, 4기에는 395명으로 증가했으며, 5기의 경우에는 211명이 사법 처리되고 그 중 95명이 의원직을 상실했다.


7. 지방재정의 종속성과 부실 위기


종합부동산세 완화, 지역경제 악화로 인한 자주재원의 지속적인 감소, 방만한 재정운영 등으로 지방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지방재정의 중앙 종속성도 강화되고 있다(전국 기초지자체의 부동산교부세 감소액은 2조 2,300억 원 : 시·구 단위 1조 2,829억 원, 군 단위 9,471억 원). 대규모 개발사업에 따른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건전성 악화와 복지예산 축소, 지속적인 부채 증가 우려도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2008년 지방자치단체 총부채 31조 5,539억 원, 전년대비 4.4% 증가; 인천시 2조 원, 전년대비 33% 증가; 서울시 2조 1천억 원, 전년대비 31.3% 증가; 경기도 4조 원, 전년대비 11.1% 증가).


2010년 지방선거 직후 각 지역의 인수위 활동에서 지방부채와 재정부실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무리한 건설사업과 택지개발로 부동산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지방재정이 파탄지경으로 내몰리는 참담한 상황이다.


8. 무분별한 개발사업과 토건행정의 한계


‘묻지마 식’ 공단개발로 인한 미분양 공단의 속출(전국 지방 공단의 미분양률 40~50%, 이번 세종시 블랙홀 논란으로 미분양 사태 더욱 악화 예상), 대규모 호화청사 건립, 중복투자 식 도로건설 등 건설 예산의 과다한 집행과 그 파장으로 말미암아 지역 복지예산, 사회적 일자리, 공동체 건설 사업 등이 정체 또는 감소하고 있는 것 또한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다.


그동안의 지역 사업은 대부분 건설성 사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다못해 문화, 복지, 환경 관련 사업조차도 대부분 공간 건축 사업이었다. 한마디로 모든 사업이 무엇인가를 짓는 건물 중심의 사업이었던 것이다.


9. 지역경제의 침체와 일자리의 감소


외부의 대형 기업 유치를 위한 과도한 특혜, 난개발식 공단조성 등에 대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면서 지역의 재정건전성과 자립적 경제구조가 붕괴되었다. 대기업 중심의 지원구조로 말미암아 지역 상공인과 소기업들의 창업활동은 급격하게 위축되었다. 거기에 대형마트와 SSM까지 대규모로 진출하면서 재래시장을 비롯한 지역경제의 자립성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지역 순환형 경제구조의 구축은 요원한 상태다.


이제 공장 및 산업 유치 등 외부 의존형 지역발전 체계를 지역의 내재적 자원 발굴을 통해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확대해가는 지역 순환형 발전 체계로 전환하고, 환경, 의료, 복지, 교육, 문화 서비스를 확대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면서 내수를 진작시키는 지역 내 사회적 일자리를 대규모로 창출하며, 창업 실패에 대비한 사회안전망 구축으로 제2창업, 업종전환 등을 활성화시켜야 하는 과제가 새로운 자치단체장에게 주어져 있다.


Ⅲ. 2010 지방선거와 지방자치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


1. 지방분권에서 지역주권으로


최근 지역주권과 풀뿌리민주주의를 제약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주민의 의견과 지역적 특수성·역사성을 무시한 일방통행식 행정체계 개편, 주민소환제를 제한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후퇴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도들을 물리치고 민주적 지방자치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도 지역의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역량과 토대를 구축할 수 있는 지역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앞으로 있을 개헌문제의 공론화 과정에서도 지방자치를 강화하기 위한 지역주권 확보 문제를 적극 제기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1888년부터 ‘행정의 효율화’를 목적으로 세 차례의 합병과정을 거치면서 47%의 지자체가 사라지고, 대신 대규모 지자체들이 계속 늘고 있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 도심 과밀화와 집중화, 식량 자급률의 급감, 자살률 증가, 각종 환경문제와 질병 등 사회문제의 지속적인 증가다. 120년 일본의 지방자치 역사에서 소규모 지방자치단체의 존치와 그 역할의 중요성이 지금처럼 부각된 적이 없다고 한다. 최근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커뮤니티와 지역주권이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지방자치 부활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중앙정부의 불합리한 통제ㆍ개입부터 폐지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시ㆍ도의 행정부지사를 국가공무원으로 임명하고 있는 제도, 시ㆍ군ㆍ구의 부단체장을 시ㆍ도에서 임명하는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현행 국가 보조금 제도도 대수술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권과 재정권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 주민을 위한 정책 경쟁이 활성화되면서 지방자치의 본뜻을 살려갈 수 있다.


2. 수평적 견제기능의 강화


지방자치단체장의 제왕적 권력을 그대로 둔 채로는 분권도, 지역 민주화도 불가능하다. 수평적인 견제기능을 강화하는 방법으로는 우선 지방의회를 강화해야 한다. 자치입법권을 강화해야 하고, 지방의회에서의 위증에 대해서도 형사처벌을 함으로써 행정사무감사ㆍ조사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부지방자치단체장 등 주요공무원에 대한 임명동의권을 지방의회에 부여하여 지방자치단체장의 인사권을 견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방의회 사무기구 인사권도 집행부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장의 인사권을 견제하기 위해 인사위원회 위원을 전원 민간인으로 하고, 인사위원회 위원장도 민간인으로 할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감사조직의 독립성도 강화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위원회들에 민간인의 참여를 대폭 늘려야 한다.


3. 관료행정에서 시민행정으로


이제 행정의 개방성 확대는 시대적 흐름이다. 행정정보를 과감하게 공개하고 주민투표제, 주민소환제, 주민감사청구제, 참여예산제, 시민창안제 등 각종 주민참여제도를 확대도입하여 민주적 지방자치의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배타적이고 제한적인 행정구조를 혁파하고, 공무원 중심의 행정, 일방통행식 행정집행을 시민참여 행정으로 바꾸어가야 한다.


전통적으로 행정은 공무원의 고유영역으로 인식돼왔지만, 이제는 시민이 행정의 주체가 되어 모든 정책과정과 집행, 예산편성에 광범위하고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행정혁신의 질적 전환을 꾀해야 할 때다.


4. 참여를 넘어 자치로


시민은 정치의 대상이라는 수동적·객체적 관점을 넘어, 그리고 시민참여의 공간 확대라는 제한적 관점을 넘어, 주민들이 스스로의 삶의 문제와 방식을 주체적으로 해결하고 결정하는 ‘자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역주민의 생활에 밀착된 지방자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주민 자치권을 강화하며, 자립과 창의의 마을만들기를 지원하고 주민자치센터를 민주시민교육, 주민자치교육, 질 높은 평생교육의 장으로 전환하는 등 주민참여 구조와 공간, 그리고 자치교육을 대폭 확대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자치역량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온전한 자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각종 제도와 토대를 마련해가야 한다.


5. 로컬 거버넌스의 구현


로컬 거버넌스는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새로운 방식의 의사결정, 이해갈등 조정 시스템이다. 지역주민의 이해와 정서와 동떨어진 중앙정부의 획일적인 정책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 사정에 밝은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의 대화와 소통, 정책협의를 통해 주민의 의사를 지방정부의 정책에 온전히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로컬 거버넌스는 특히 지역의 자립적 경제구조 혁신, 보편 복지, 지속가능한 친환경 도시계획, 주택 보급, 교육 개혁, 안전과 보건의료, 여성 정책, 공공 보육, 노인복지, 교통 개혁 등 지역 주민의 삶의 질과 연관된 핵심 정책에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제도권 정당이나 기존 정치권 차원의 공동지방정부 구성을 넘어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로컬 거버넌스로 확대 발전시키고, 사회·정치적으로도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수준의 사회적 약속과 실천이 필요하다.


6. 책임정치 강화와 의회 개혁


각 정당은 공천권의 행사와 자당 후보의 당선에만 머물지 말고, 각 정당 소속의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에 대한 지속적인 정책지원 및 관리 구조를 마련하는 등 책임정치를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발전을 위한 독립적인 연구기능을 강화하고, 자당 소속의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활동정보 공개를 통해 부패 · 비리 · 무능에 대한 정치적 책임과 페널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대시민 약속으로 그에 대한 신뢰를 높여야 한다.


또한 지방의회의 책임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지방의원 투표실명제와 예산 및 조례 공청회의 의무화는 지역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의원들의 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는 시급한 과제다. 그밖에 시민들의 정치무관심을 극복하기 위한 사전투표제, 전자투표제, 의무투표제 도입 등의 공론화 및 입법추진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제3절 참여자치 시대의 도래


민주주의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를 대의민주제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선거 때 한 번 선량들을 뽑아놓으면 그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에게 위임받은 권리를 행사하면서 우리를 위해 일할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토대가 굳건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그런 믿음은 번번이 배신당해왔다. 사회가 복잡 다양해지면서 선량들이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파악, 수렴하기 힘들어진 점도 그에 일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와 선거를 외면하면서 대통령 선거를 제외한 투표율은 50퍼센트 이하로 곤두박질쳤고(재보궐선거의 경우에는 20퍼센트 안팎), 정치인과 관료들에 대한 불신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정당성의 문제가 줄곧 제기되면서 대의민주제는 위기에 처했다.


그러는 한편, 일각에서는 우리 일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정치인도, 관료도 믿을 수 없으니, 우리가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할 장을 열어달라는 요구였다. 크고 작은 갈등이 폭발하면서 커다란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마침내 주민투표, 주민소환 등의 제도가 도입되긴 했지만 행정편의를 우선한 탓에 법과 제도는 사실상 사문화됐고, 주민들의 참여 욕구는 출구를 찾지 못했다. 정략적 이해관계를 우선하는 정치인과 입법자들에게 주민참여의 통로를 활짝 열어젖히는 것은 늘 뒷전이었다. 특히 입법권을 가진 중앙 정치인들에게 지방자치와 주민참여는 언제나 득표 전술의 일환일 뿐이었다. 주민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들이 정착되지 못하면서 지방자치는 또 다시 실종되었고, 지방자치 제도는 지역의 토착 보수 기득권 세력의 전유물이 되면서 그 부작용이 난무했다.


이번 6.2지방선거가 선거에 승리한 진보개혁세력 연합, 새로운 실험에 도전하는 지방공동정부에 던지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민생과 민주주의, 평화를 어떻게 되살려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느냐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번 선거가 지방자치를 담당할 선량들을 뽑는 지방선거였던만큼, 무엇보다도 허울뿐인 지방자치의 본뜻을 살려 주민들을 시정에 폭넓게 참여시키며 주민들에게 결정권을 돌려주라는 시대의 명령을 담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자기 결정권을 돌려주는 것은 대의민주제가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 시대 상황에서 민주주의, 그리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가치를 살려내는 중요한 진보적 실천과제이다. 주민들의 광범한 참여 속에 민주적 거버넌스 체제가 착실하게 구축돼갈 때, 민주주의의 근간인 풀뿌리 주민자치가 이 땅에 굳게 뿌리를 내릴 것이고, 민생과 복지와 인권과 평화를 추구하는 더불어 사는 지역 공동체가 책 속에서 튀어나와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