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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보면 그렇게까지 무거운 약속은 하지 않는 건데 하는 생각까지 들곤 할 만큼 고양무지개연대와 고양지역 야5당은 굳은 약속을 했었지요.
약속의 강도에 대한 느낌은 저마다 상대적이겠지만, 적어도 제겐 그러했습니다.

지금 그 약속, 고양무지개연합(고양무지개연대 + 야5당)의 약속은 사실상 파탄지경에 있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일각의 보수성에서 큰 원인을 찾지만, 제 생각엔 그것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야권연합의 한계 - 특히 기초의원의 경우 한 지역구에서 우군들끼리 싸우던 상황 - 에서 비롯된 조건, 돌파하고 해결해야 할 조건이었을 뿐, 절대적 원인은 아니라고 봅니다.

더 큰 원인은 고양지역 야권연합의 최대 수혜자이자 절대적 책무를 가진 사람들의 거버넌스 의식이었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물론 그럴 줄 몰랐느냐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솔직히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처음부터 다른 방도를 찾았겠지요.

물론 어디까지나 이것은 저의 판단일 뿐입니다.
제 판단이 틀릴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수도 있고, 조건이 사람을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느껴집니다.

지난 6개월여는 잃어버린 시간이었습니다.
일년 반 전 우리가 고양무지개의 꿈을 피워올릴 때, 그것은 지들 배만 불리려는 세력들에게 더 이상 권력을 맡길 수는 없다는 의지의 표현인 동시에, 한 일년 빡세게 하면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자치와 거버넌스와 민주주의와 공동체사회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거라는 가슴 벅찬 기대감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그 싹도 틔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널리 공론화하여 사태를 바로잡지 않으면 4년 금세 가고 이곳 고양땅에서 진보개혁세력의 입지는 더 좁아질 것 같은 예감입니다.
지난 6개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한시바삐 새출발의 발판을 만들지 못하면 초기 개혁에 실패한 안팎의 진보개혁세력의 전철을 밟게 될 것 같은 상황입니다.

하여 제가 아는 사실을 정리하여 알립니다.
아무래도 저간의 사실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 중 하나가 저이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제가 할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두루 의견을 교환하여 공론을 형성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난 6월 딱 일년만 지역 거버넌스의 기초를 잡아놓고 그후로는 복잡한 판에서 조금 떨어져서 유유자적하며 살겠노라고 신발끈을 다시 조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무려 7개월을 허송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턱 막힙니다.

고견을 모아봅시다.
글이 무척 긴데, 시간 없으신 분들은 앞의 요약만 보아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고양시정운영위원회와 고양지역 거버넌스, 어디로 가고 있나?


<핵심 내용 요약>


1. 고양시정운영위원회의 실상


- 야5당과 시민사회의 합의에 따라 출발한 연대연합정신의 구현체(시정 공동운영의 주체이자 주민참여 거버넌스의 기획 조직자이자 합의한 개혁정책의 이행 점검자)

- 지난 6개월간의 시정운영위는 이름뿐인 허깨비였다(세 가지 핵심 역할 중 어느 것에서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그 기초조차도 닦지 못했다).


2. 시정운영위의 지난 6개월


- 출발 : 야5당과 시민사회의 정책연대의 산물(합의한 개혁정책의 이행 점검자, 주민참여 거버넌스의 기획 조직자 - 2010년 3월말 합의)이자 지방정부 공동운영 합의의 산물(시정 공동운영의 주체 - 2010년 5월 중순 합의)

- 합의한 시정운영위의 역할 : 1) 시정 현안에 관한 협의, 자문(시의회의 권한과 충돌하지 않는 범위 내), 2) 지역 발전에 관한 주요 의제 토론 및 정책 제안, 3) 정책 매니페스토로 채택한 10개 분야 100대 정책공약에 대한 정책 조정, 추진상황 점검, 4) 고양시 자치헌장 초안 제정, 5) 시정운영위원회 산하, 실무그룹과 영역별 거버넌스 체제 조직, 6) 시장을 비롯한 지방선거 당선자의 정책 수행 모니터링 및 평가, 7) 주민자치아카데미 개설, 운영 등 - 조례제정에 시간이 걸리는만큼 조례제정 이전부터 위원회가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시장이 필요한 지원을 하기로 합의함

- 시장과 위원회, 위원들 사이의 갈등 : 위원회의 공식 발족 시기, 위원회의 위상과 역할, 위원회 구성, 위원장 제도, 위원장 선출, 시정현안의 실질적 협의, 시장 공약의 추진 점검, 위원회와 주민참여의 제도화, 시의 지원 문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 계속됨 - 핵심 사안은 위원회의 제도화 이전에는 지원도, 시정 협의도 불가능하다는 시장(공무원)과 위원들 사이의 견해차와 갈등

- 위원회의 파행과 ‘정상화’ : 위원장 선출 문제가 불거진 후 위원회는 곧바로 체제를 재정비하고 시장에게 협의를 요청했으나 시장은 한달 남짓 위원회의 요청에 응하지 않음. 결국 시장이 복귀했으나 이후에도 실질적인 협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음

- 조례제정과 개혁예산 확보 시기 놓침 : 결국 2010년 말까지 개혁예산 확보, 조례(‘고양시 주민참여 기본조례’) 제정에 실패함


3. 시정운영위 표류의 원인 진단


- 주민자치와 거버넌스에 익숙하지 않은 관료 집단

- 협치나 주민운동 경험이 없는 정치인 출신의 시장

- 기존의 관행에 물들어 있는 시의회, 민주당 일부 의원의 보수 성향

- 시정운영위 위원들 사이의 인식 차


4. 재출발의 가능성 점검


- 거버넌스의 원동력은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

- 모두들 아직은 열정이 남아 있고 시간도 조금은 있다

- 시정혁신의 출발점은 합의의 이행


5. 재출발의 전제 및 경로


- 각 단위별 숙의와 토론을 통한 연대연합정신의 복원

- 합의한 협약의 핵심 방향과 내용에 대한 이행의사 재확인(시장, 시도의원, 제 정당시민사회단체)

- 시장, 시도의원, 제 정당시민사회단체 간의 다양하고 실질적인 협의체계 구축과 지속적인 대화, 협의

- 전략단위 및 실행단위의 상시 운용

- 협약 및 협의 사항의 성실한 이행



<본문>


1. 고양시정운영위원회에 대한 오해와 이해


시장 위에 군림하는 시정운영위원회?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고양시정운영위를 둘러싼 말들이 많다. 장님코끼리만지기 식의 이해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든, 아니면 공동정부나 야5당, 시민단체에 대한 비하 또는 배척 의도가 담긴 것이든, 야5당과 시민사회의 합의에 따라 고양시정을 공동운영하며 주민들의 시정참여를 제도화하고 합의한 개혁정책의 추진상황을 점검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여 발족한 고양시정운영위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대체로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야5당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선출된 시장의 위에 군림하며 고양시정을 좌지우지하려 든다는 것, 또는 야5당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공동정부니 거버넌스니 하는 허황된 꿈을 꾸며 시장의 발목을 잡고 오히려 시와 시민들의 자연스런 소통을 차단하고 있다는 것, 또는 야5당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공동정부 운영이나 주민참여 거버넌스는 애당초 할 생각이 없던 시장과 씨름하며 헛고생만 하고 있다는 것 등등이다.



어느 인식이든, 사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우선, 야5당과 시민단체 대표들은 고양시정을 좌지우지하기는커녕 시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보조차도 거의 제공받지 못한다. 일차적으로는 제도화되지 않은 조직과는 협의도, 지원도 곤란하다는 공무원들의 구태의연한 인식을 시장이 바꿔놓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으려면 제안이나 요구가 어느 정도나마 수용되는 것이 그 전제인데, 얘기해봤자 입만 아프고 통로도 마땅치 않으니 제안이나 요구조차도 사실상 거의 하지 않는다. 시장에게도 득이 되고 모두에게 득이 될 게 분명한, 정말 내놓고 싶은 방략이나 제안도 가슴속 깊이 묻어둔 채로.


그리고 시정운영위 때문에 시장과의 자연스런 소통이 어느 정도 차단되고 있던 곳은 그나마 시정운영위를 존중하여 지금껏 자제해온 연합 참가 시민단체들과 소수정당 일부일 뿐, 시장은 조금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자신의 지지 여부에 관계없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단체를 두루 만나고 다닌다. 모두가, 특히 지지자들이, 자신들에게는 곁을 주지 않는다고, 혹은 덜 준다고 서운해할 뿐이다. 그렇다고 시장이 공동정부 운영이나 주민참여 거버넌스를 전혀 할 뜻이 없느냐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한마디로, 온갖 장애와 한계를 극복하며 일을 추진할 수 있을 만큼 의식이 완숙되진 못했고, 그 결과 전략과 대책 마련 속도가 늘 한 템포 늦어 시기를 놓치는 일이 거듭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동정부와 거버넌스, 그리고 시의회

세간의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면, 연합주체들의 시정 공동운영(공동정부)과 주민참여 거버넌스의 제도화라는 조금은 이질적인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이냐는 문제제기도 있다. 이는 한마디로 넌센스다. 주민자치의 활성화를 비롯한 광범한 진보개혁정책을 협약한 야5당과 시민사회 연합이 공동정부 역할을 수행하면서 주민참여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제도의 틀을 구축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문제란 말인가? 이는 주민참여의 활성화를 꺼리거나 두려워하는 수구기득권세력이나 패권세력, 혹은 지금까지 자신들 뜻대로 결정해온 일을 주민들과 협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심히 부담스러운 일부 관료들의 입장이 짐짓 전문가 연하는 용어로 포장되어 재생산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주민참여의 획기적인 강화가 지방자치 혁신의 최대 과제이고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진보개혁 세력의 최대 임무 중 하나임을 잘 모르거나 또는 애써 무시하는 소치거나.


더 구태의연한 문제제기로 시정운영위 또는 주민참여위원회가 시의회의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도대체 현행 지방자치 제도의 문제점을 알고나 하는 소린지 모르겠다. 지방자치의 문제점 중 대부분이 시장과 그를 둘러싼 관료들에게 제왕적 권력이 부여돼 있는 데서 비롯되며, 시장(관료)의 제왕적 권력이 시의회, 그리고 주민들에게 대폭 이양돼야만 지방자치가 그 본령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은 지방자치를 조금만 공부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시정운영위 또는 주민참여위는 시의회의 권한을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으며, 시장과 야5당 시의원들이 모두 협약한 바에 따라 시 집행부의 권한을 주민들과 함께 나누려는 것뿐이다. 그리고 야5당과 시민사회 대표들은 협약의 당사자로서 약속이 잘 이행되도록 그 책임을 다하려는 것뿐이다. 만에 하나, 정치 정세가 변화하여 연합(공동정부)은 깨진다 하더라도 주민들의 활발한 시정참여 제도라도 확고하게 구축된다면, 그 또한 좋은 일 아니겠는가.


물론 지방자치사상 초유의 실험인 시정 공동운영과 주민참여 거버넌스의 제도화 방법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고양시에서는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꿈도 꾸지 못한 전면적 야권연합을 일구어내면서 야5당과 시민사회가 풀뿌리 주민자치를 기반으로 한 따뜻한 공동체 사회 건설을 핵심 지향으로 하는 정책연대와 시정 공동운영에 합의했고, 그 방안까지도  깊숙이 구체화했다. 왜 시작도 안 하면서 무슨 말이 그리 많을까. 책임정치는 약속과 합의의 이행으로부터 시작된다.


시정운영위원회의 아픈 실상 - 허깨비

슬프게 고백하건대, 지난 6개월 동안의 시정운영위원회는 허깨비였다. 지난 선거에서 연합에 진정으로 함께 했고 사상 초유의 시정 공동운영과 주민참여 거버넌스의 제도화가 매끄럽게 정착하기를 간구하며 안타깝게 지켜본 많은 이들에게는 정말 죄송스럽게도, 시정운영위는 이름만 있을 뿐 실체는 없는 허깨비였다! 시정을 공동운영하며 지방자치를 혁신하고 따뜻한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약속의 당사자로서 협약에 함께 한 시장, 시의원들과 함께 무한 공동책임을 느끼고 있던 시정운영위원들은 그동안 걸음걸음 움직일 때마다 연신 철벽에 부딪히면서도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도 뻥긋하기 힘들었다. 함께 가기로 약속한 사람이 가지 않는다고 폭로하고 비난하는 건 합의 당사자, 연합의 주체들로서는 누워서 침 뱉는 격이었고, 그 후과도 께름칙했고, 무엇보다도 무지개연합(야5당+무지개연대)의 성공을 바라는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고 나아가 스스로 시민들에게 한 약속을 저버리는 과를 낳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뒤에서 이야기하는 딱 한 차례 예외를 빼고는!


그러는 사이에 권력은 제 갈 길을 갔고, 그 틈은 갈수록 벌어졌다.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합의는 ‘반드시’ 지킬 거라는 공허한 약속만 계속 메아리칠 뿐, 합의는 조금도 실현된 것이 없다. 이제 문제를 드러낼 때가 된 것 같다.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고, 때로는 문제를 분명하게 드러내어 치유의 기회를 갖는 것이 좋은 계책인 경우도 많으니까. 최소한 속앓이라도 조금이나마 덜게 될 테니까.


2. 시정운영위원회의 출발, 그리고 6개월


벅찬 기대, 힘찬 출발

시정 공동운영의 주체이자 주민참여 거버넌스의 기획 조직자이자 개혁정책 이행 점검자로 합의, 구성된 고양시정운영위원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출발지점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우선, 무지개연대에서 지방자치 혁신과제로서 주민참여를 획기적으로 강화한 지역 거버넌스 체계 구축을 핵심 정책공약으로 제안했고, 그 제안을 고양시장 후보를 비롯한 지방선거 후보들이 흔쾌히 수용하면서 주민들이 활발하게 시정에 참여하는 지역 거버넌스 체계는 고양시의 미래상이 되었다. 물론 그와 더불어 고양시정 10대 개혁의제 100대 정책공약으로 상징되는 무지개정책에 대한 합의도 이루어졌다.


이후 야5당과 시민사회 연합이 완성되면서 시정 공동운영 문제가 대두했다. 고양지역 야5당과 시민사회는 고양시정운영위원회를 두고 시정을 공동운영하면서 주민참여 거버넌스의 기획, 조직자 역할과 합의한 정책공약의 이행 점검 역할을 시정운영위에 맡기기로 합의했다. 지역 거버넌스 체계에 최종 합의한 것은 2010년 3월 말이고, 시정 공동운영에 합의한 것은 선거 직전인 5월 중순이다.


합의에 따르면 2010년 7월 1일 시장 취임과 더불어 고양시정운영위원회가 발족하여 야5당과 시민사회가 시정을 공동운영하며 주민참여 구조를 만들어가야 했다. 시장 인수위 활동이 마감되고 시장이 취임하기 바로 전날인 6월 30일, 야5당과 시민사회 대표들은 시정 공동운영 방식에 최종 합의했다.


시정운영위의 역할은 1) 시정 현안에 관한 협의, 자문(시의회의 권한과 충돌하지 않는 범위 내), 2) 지역 발전에 관한 주요 의제 토론 및 정책 제안, 3) 정책 매니페스토로 채택한 10개 분야 100대 정책공약에 대한 정책 조정, 추진상황 점검, 4) 고양시 자치헌장 초안 제정, 5) 시정운영위원회 산하, 실무그룹과 영역별 거버넌스 체제 조직, 6) 시장을 비롯한 지방선거 당선자의 정책 수행 모니터링 및 평가, 7) 주민자치아카데미 개설, 운영, 8) 기타, 고양시 시민사회와 주민 전체의 의사형성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자치기본조례를 제정하여 시정운영위가 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기로 했으나, 조례 제정에 시간이 걸리는만큼 조례 제정 이전에도 위원회가 기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시장이 필요한 지원을 하기로 했다.


갈라지는 틈새, 갈등의 시작

그러나 7월 1일 시장 취임과 더불어 상황은 달라졌다. 취임한 시장은 업무파악과 행사 참석 등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고, 시정운영위에는 위원회의 발족을 늦추어줄 것을 주문해왔다. 야5당과 시민사회의 예비 시정운영위원들은 준비모임을 갖고서 7월 15일에 시정운영위 첫번째 회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첫 회의에 참석한 시장은 조례로 위원회를 제도화한 뒤 시정운영위를 정식 발족하기로 하고 우선 준비위원회를 꾸려 제도화를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위원 다수는 조례 제정과 상관없이 위원회는 제 역할을 하기로 한 합의를 상기시키면서 제도화와 상관없이 위원회는 이미 발족한 것이라 했다. 결국 조례 제정과 상관없이 위원회는 발족했으나, 문제는 시의 지원이었다. 배석한 공무원은 제도화 이전에는 사무공간도, 자료도, 교통비도 지원할 수 없고 시정 협의도 할 수 없다면서 위원회의 활동에 제동을 걸었고, 시장도 달리 방법을 찾지 않았다.


위원회 발족 이후에도 시장과 위원들, 그리고 의견이 다른 위원들 사이에 몇 차례 갈등이 빚어졌다. 위원회의 위상과 역할, 위원회 구성 문제, 위원장 제도, 위원장 선출 문제, 시정현안의 실질적인 협의, 시장 공약의 추진 점검, 위원회와 주민참여의 제도화, 시의 지원 문제 등에서 시장과 위원들, 그리고 위원들 사이에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 못한 것이다. 위원들은 초기 얼마 동안은 일이 진척되지 않는 데 대해 답답해하면서도 밖으로는 상황을 알리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고 어이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소리 내지 않고 일을 풀어가 보려는 계산이기도 했다.


거버넌스와 합의 이행에 대한 메울 수 없는 인식 차

갈등의 중요한 고리는 시장과 다수 위원들 사이의 공동정부와 거버넌스, 합의 이행에 대한 인식과 견해 차였다. 야권연합의 한 주역인 동시에 94만 전체 시민의 시장이라는 시장의 이중 포지션은 그 자체로서 언제나 갈등의 여지를 안고는 있지만, 시장은 협약의 핵심 당사자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책무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정치적 약속은 일반적인 약속과 달리 상황에 따라 언제나 바뀔 수 있다는 듯... 한국의 정치판에서 약속 뒤집기는 다반사인 관행처럼...


  일각에서 지금까지도 문제를 삼는 위원장 선출 문제도 그런 상황에서 불거져 나왔다(많은 이들이 불편해하는 기억이라서 굳이 상기시키고 싶진 않지만 지금까지도 상황을 왜곡하여 전하는 이들이 있어서 짚고 넘어가야겠다). 시장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위원들의 의견은 두 갈래로 갈렸다. 합의의 즉각 이행을 촉구하는 의견과 합의의 대폭 수정 또는 이행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 - 각기 이유는 달라도 그 시점에서 시장의 뜻과 맥을 같이하던 의견 - 이었다. 위원들의 의견이 갈리자 시장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자 위원장 선출에 깊숙이 개입했고(시장이 위원장 또는 공동위원장을 맡을 수도 있었지만, 시장은 애초부터 위원장을 맡지 않겠다고 했다), 개입은 성공하는 듯했으나 곧 시민사회의 반발에 부딪혔다. 시민사회의 추천으로 시정운영위원이 된 뒤 시민사회 성원들과의 협의 없이 시장의 지원 하에 시정운영위 위원장으로 선출된 위원이 시민사회의 대표성, 책임성, 상호협의 및 소통 정신에 대한 문제제기를 받기에 이른 것이다. 시민사회(당시 ‘고양무지개연대’)는 길고 긴 논의 끝에 소통과 책임에 대한 합의를 전제로 시민사회 대표 5명 위원 전체의 추인을 잠정 결정했으나, 당사자가 이를 거부하자 마침내 거부한 위원의 소환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위원을 추천했다. 세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이것이 위원회 6개월 과정에서 유일하다시피 바깥으로 불거져 나온 위원장 선출 문제의 핵심 골자다. 현실정치를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점 등 아쉬움은 많지만 - 무지개연대는 그런 올곧지 못한 현실정치를 타파하고 ‘좋은 정치’를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 일각에서 제기하는 다른 문제들은 어떻게든 시정운영위 또는 지금의 시정운영위를 흠집 내려는 지엽말단적인 지적일 뿐이다 - 시정운영위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위원회는 곧바로 신임 위원장을 선출하고 위원회의 체계(상임위원단, 조례추진단, 공약추진점검단 등)를 구축한 뒤 시장에게 협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시장은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한달 남짓 동안 위원회를 백안시했다. 위원회는 시장에게 합의를 이행할 것인지 말 것인지 - 합의이행 거부는 야권연합의 파기를 의미했다 - 태도를 분명히 해줄 것을 주문했다.


무늬뿐인 재출발, 그리고 연합의 사실상 파탄

마침내 시장이 위원회를 인정하고 합의를 이행하겠다며 복귀했으나, 사실상 달라진 건 없었다. 공무원들의 비협조적 태도는 여전했고, 자치기본조례 제정은 지지부진했으며, 위원회에서 시민사회와 정당의 협조를 받아 자체적으로 구성하여 활동한 공약추진점검단 또한 시장과 공무원들의 비협조로 표류했다. 사실상 개혁의 원년인 2011년도 예산을 심의하고 자치기본조례 등 개혁 조례들을 제정해야 할 시의회 정기회(11-12월)가 진행중인 중요한 시점에, 시장은 해외협력 차 미국으로 날아가 바쁜 나날을 보냈다.


결국 중요한 개혁예산들은 논의조차 못한 채 거의 물 건너갔고 - 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시정운영위의 거듭된 요구로 막판에 딱 한 차례 협의 테이블을 마련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 다른 조례는 접어두고 자치기본조례조차도 상정되지 못한 채 시의회 정기회는 끝났다. 시의회 내의 보수적인 일부 민주당 위원들은 그나마 얼마 안 되는 개혁예산(자치, 평화, 노동, 생태 관련 예산) 잘라내기를 사실상 주도했다. 야권연합은 내용적으로는 이미 파탄 나 있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미국 방문중 주민자치의 모범도시인 로체스터에 다녀온 시장이 주민자치와 거버넌스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막연하던 상이 구체화된 모습을 보면서 의식이 각성된 것이다. 귀국한 시장은 며칠 남지 않은 기간에 뒤늦게 2011년도 예산을 챙기느라 경황없는 시간을 보낸 뒤 - 주민자치아카데미 등의 몇 안 되는 개혁예산마저 뭉툭 잘려나가며 크게 한방 먹었지만 - 12월 임시회에서 자치기본조례부터(논의 끝에 ‘고양시 주민참여 기본조례’로 명칭이 바뀌었다) 통과시켜보자고 뒤늦게 발동을 걸었다. 그러나 이 역시 한발 늦은 행보였다. (원래 조례의 취지상 시장이 발의해야 했으나 시간 절약 등의 이유로 의원 발의하기로 한) 조례안을 갑자기 받아본 시의원들은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후 차기 의회에서 다루기로 하고 조례안을 상임위에 계류시켰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조례안의 의원 공동발의에도 동참하지 않았다.


결국 작년 7월 15일부터(준비모임부터 치면 7월 초부터) 올 1월 6일까지 22차 회의를 열고 상임위원단, 조례준비팀, 공약추진점검단까지 가동하며 6개월 동안 활동해온 고양시정운영위원회는 시정 공동운영과 주민참여 거버넌스의 제도화, 개혁정책의 추진상황 점검이라는 본연의 목적에는 접근도 못하고 디딤돌 하나도 놓지 못한 채 존립 자체에 위기를 맞고 있다. 말 많은 시정운영위는 그야말로 허깨비였고, 이제 허깨비가 제 몸을 얻을지 아니면 그대로 운명을 다할지 판가름 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3.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관료, 시장, 시의원들의 시정혁신에 대한 문제의식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렇게 기세 좋게 야권연합도 일구어내고 시정 공동운영까지 합의한 고양시가, 고양시의 연합 주체들이 6개월이 가도록 시정 혁신의 디딤돌 하나도 놓지 못하고 헤매는 이유와 원인은 무엇일까? 회생의 처방전을 찾으려면 진단부터 정확히 해야 한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강력한 중앙집권 하에서의 지방자치와 지방재정의 구조적 한계 등등), 혁신의 주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가장 근원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지방자치 혁신에 대한 문제의식의 차이 아닌가 싶다. 지방자치 혁신의 핵심과제는 뭐니뭐니해도 주민들을 지방행정의 객체가 아니라 주민자치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다. 그러자면 시장과 관료들에게 집중된 ‘제왕적’ 권력(예산편성권, 인사권, 도시계획권, 인허가권 등)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것, 즉 주민들에게 웬만한 결정권을 부여하거나 결정 과정에 주민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각각의 의식과 입장은 다르다.


우선, ‘관치행정’이라 불릴 만큼 이제껏 지방행정을 좌지우지해온 지방 관료들은 주민자치와 거버넌스에 익숙하지 않다. 주민들의 참여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공무원들이 많으며, 정보공개에도 매우 보수적이고, 주민들이 참여하는 공청회나 토론회 등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쯤으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이들은 관행에 따라, 혹은 지역의 유력자들의 입맛에 맞게 예산을 주무르며, 참신하고 개혁적인 예산 편성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행정 경험이 없거나 얕은 시장에게 ‘행정 전문가’인 이들이 전하는 ‘이러는 게 좋습니다’ 혹은 ‘이건 곤란합니다’ 하는 메시지는 거의 절대적이다. 더욱이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개혁적인 시 정부가 들어선 적이 없는 고양시의 경우, 관료들의 보수성의 뿌리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깊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시장이 거버넌스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을 경우, 지방차치 혁신은 단기간 내에도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개혁적인 시장이라 할지라도, 비서 몇 명만 달랑 데리고 들어가 관료조직에 풍덩 빠져버리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건강한 공무원노조가 있을 경우에는 협력관계를 맺고 시정혁신을 이끌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대부분 정치인 출신인 시장은 민관 협치나 시민사회운동, 주민운동 경험이 거의 없는데다, 오히려 시민대중을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단기적 권력기반 형성과 대중적 인기몰이, 미디어 노출에 집중하며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데 익숙하다. 공동정책과 지방정부 공동운영에 합의한 선거연합의 파트너들조차 그런 면에서는 걸림돌로 여겨질 수 있다. 이미 자기 손에 쥐어진 제왕적 권력을 공유하기는 달갑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인물이 시민이나 시민대표 또는 정치연합의 동반자들과 실질적인 협의를 하고 시민들과의 일상적인 협의구조를 제도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힘들다. 결국 시장은 자신에게 줄서기하는 공무원들과 협의하고 그들에게 지시하며 혼자서 외롭게 시정을 꾸려가다가, 마침내 관료들의 포로가 되고 개혁 마인드마저도 실종되게 된다. 지금의 고양시장이 이런 진단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집행부(시장과 관료)의 막강한 권한에 눌려 제 밥그릇도 제대로 못 챙기는 시의원들도 시장이나 관료들과 일정 부분 이해를 같이하기 때문에 역시 주민참여에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시의원의 경우, 시장이나 공무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지역의 숙원사업이나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데 우선이기 때문에 주민참여를 부차적으로 생각하거나 오히려 꺼리는 경향이 있다. 저마다 자기 동네에서 자신이 독보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력을 나누는 게 달갑지 않은 것이다. 시민사회운동이나 주민운동의 경험이 없는 보수적인 의원의 경우, 참여가 일상화된 주민들이 자신의 지지기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는 그리 쉽지 않다.


게다가 기초의원 중선거구제가 시행된 이번 6.2지방선거의 가장 밑바닥에서 자당 또는 연합의 우군과도 사투를 벌이며 힘겹게 배지를 따낸 일부 민주당 시의원의 경우, 범야권이 합의하고 자신도 서명한 지방자치 혁신 공약들에 대한 충성도도 그다지 높지 않다. 이번 고양시의회에서 원 구성과 예결위 구성 과정에서의 파행, 자치예산과 금정굴 사업 등의 개혁예산 삭감, 자치조례 계류 - 한나라당과 민주당 일각의 연합의 결과 - 등의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배경의 근저에는 이런 요인들이 깔려 있다. 연합의 일원이긴 하지만 보수 성향을 보이는 민주당 일부 의원들 - 한나라, 민주, 야3당이 13:13:4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13명 민주당 의원 중 일부 - 에서 범야권과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표방한 진보개혁적 색채를 찾기는 쉽지 않다.


잡탕 비빔밥이던 시정운영위원회

그렇다면 준비되지 않은 관료, 준비되지 않은 시장, 준비되지 않은 시의원들이라는 조건 속에서, 연대연합정신의 구현체로서 시정 공동운영과 주민참여 거버넌스의 제도화, 개혁정책의 추진상황 점검이라는 임무를 띠고 있던 시정운영위 멤버(야5당과 시민사회 대표)들의 인식은 어떠했던가? 시정운영위원들은 결코 단일체가 아니었다. 우선, 시민사회운동이나 주민운동 경험이 있는 멤버들(시민사회와 진보정당 일부)과 그렇지 않은 멤버들의 인식 차는 꽤 컸고, 후자 중에서도 진보와 개혁 마인드에 상당한 편차가 있었으며, 지난 선거과정에서의 연합에 대한 입장과 연합에서의 역할, 연합에 따른 책임의식, 연합의 과실에 대한 주체적 판단, 그리고 향후 정치적 전망과 그 속에서의 자신의 입지에 따라 저마다 조금씩 입장이 달랐다.


그러니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여건 하에서 시정운영위가 굳게 뜻을 모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올곧게 수행해간다는 건 처음부터 사실 불가능했다. 시정운영위는 연합 주체와 그 성과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로 유포된 세간의 부정적, 배타적 인식, 시장의 미온적 태도, 공무원들의 비협조, 시의회의 삐딱한 시선, 그리고 내부 균열이라는 사중오중의 질곡 속에서 처음부터 갈짓자 행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몇 차례의 위기를 넘긴 후 위원회는 대오를 재정비하고 제 역할을 수행하려 했지만, 그 사이에 외부 여건은 더 악화돼 있었다.


관건은 시장(시 집행부의 수장)의 파트너인 시정운영위가 미온적인 시장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며 임무를 수행해내느냐는 것이었다. 제도화 여부를 떠나 칼자루를 쥔 시장이 그간의 합의를 존중하여 시정운영위에 힘을 실어주지 않을 경우 위원회는 허깨비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관계풀기, 관계맺기는 쉽지 않았고, 파트너인 시장과 시정운영위는 시종 겉돌았다. 시정운영위의 의사는 이익집단 또는 시민단체 또는 전문가 하나쯤의 의견 정도로 치부되었다. 최근에 와서 조금 호전될 기미가 비치는 듯도 하지만, 이미 간극은 벌어져 있다.


연합에 함께 한 시민사회단체들과 진보정당 일부, 그리고 무지개연대의 취지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시정운영위를 응원하며 주민참여의 제도화와 개혁적 시정운영을 주문하고 있지만, 칼자루 쥔 사람들에게 그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시정 혁신을 이끌어갈 동력을 구축하고 강화시켜가기는 결코 쉽지 않다. 풀뿌리 주민자치를 근간으로 한 따뜻한 공동체사회의 실현이라는 고양무지개의 꿈은 결국 신기루로 끝나고 말 것인가?


4. 재출발은 가능할까?


어찌할 것인가 - 원론적 접근

어찌할 것인가? 선한 의지와 명료한 인식을 가진 위정자와 관료들이 주민참여를 활성화하는 다양한 제도들을 만들어 권력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진정한 지방자치를 구현해가는 데 앞장선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공무원들 사이에서 진보개혁적인 마인드를 갖고서 시장의 개혁정책을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 출신인 시장 또한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기는 하지만 고양시의 백년대계와 그 기틀을 준비하기보다는 주민집단과의 만남이나 현안 처리, 언론 노출에 더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시의회는 2011년도 시 예산 심의과정에서 얼마 안 되는 시장의 개혁예산을 뭉툭 깎고 자치조례를 계류시켜 시장의 개혁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야5당과 시민사회의 대표자들이 모인 시정운영위원회에서는 어떻게든 시장과의 시정협의 체계를 구축하고 주민참여형 거버넌스의 조직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 하지만, 제도화되지 않은 기구의 한계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고 시장과의 관계도 썩 원만하지 않다. 초창기 한때 거버넌스의 전국적 모델로 주목을 받았던 고양시정운영위에 대한 관심은 이미 시들해졌다.


결국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근본적으로는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권리를 확장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시장과 의원들이 지방자치 혁신과 주민참여 거버넌스 체제 확립을 공약 또는 협약한 것은 중요한 조건이다. 시장과 의원, 그리고 공무원들에게 주민참여의 활성화가 지방자치의 근간이자 모두가 윈윈한 수 있는 길임을 끈기 있게 설득하고 또 다양한 경로로 시민들의 힘을 결집하여 공약 또는 협약의 이행을 촉구하며 주민참여 구조를 확립해갈 수밖에 없다.


재출발의 근거, 그리고 자세

그래도 여운은 남는다. 이렇게 간단히 정리하고 나면, 그간의 고심과 노력이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시대의 총아였던 고양무지개가 시정개혁과 거버넌스 체계 구축 등등의 면에서 한참 뒤따라오던 다른 지역들보다도 오히려 뒤떨어지고 지역에서, 전국에서 안타깝고 민망한 시선을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고양에서 무지개를 띄워 그 빛을 만방에 퍼뜨리자던 고양무지개의 약속은 결국 공수표가 되고 마는 것인가?


재출발의 근거는 분명하다. 주민자치의 모범도시인 미국 로체스터까지 방문하고 온 시장, 그리고 개혁적인 시의원들, 한 발 떨어져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도의원들(고양시 출신 경기도의원들 대부분이 12월 말 경기시민단체연대회의 선정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애가 타는 시정운영위원들은 고양무지개연대와 전면적 야권연합에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보내던 시민들의 시선과 전국적인 주목을 잊지 않고 있다. 상황 인식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두 어깨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열정이 남아 있다. 무지개연대와 야권연합에 함께 했던 시민사회단체원들과 정당원들, 그리고 일반시민들 또한 책임 있는 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격려하면서 적어도 아직까지는 떠날 생각을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공동의 방향에 대한 합의를 재확인하고 적정하게 역할을 분담하여 맡은 바 일을 착실하게 수행해 나간다면, 고양무지개의 꿈이 언제라도 현실이 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주민들이 도시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의 일을 결정하며 참된 자아를 찾고 사람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간다는 꿈이 아직은 완전히 물을 건너진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꿈을 좇으려면 지금 당장 신발 끈을 바짝 죄어야 한다. 여기서 한두 달 더 허송하면 고양무지개의 꿈은 이제 사막의 신기루가 되어 영영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보수 기득권 세력이 한 번도 지배권을 놓은 적이 없던 고양시에서 초기 1년 안에 개혁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고양무지개가 추구했던 진보개혁적 가치와 정책들의 시정 구현이라는 꿈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


경우는 다르지만, 외환위기 직후 IMF에 휘둘렸던 김대중 정부(말레이시아의 대응책과 그 결과를 비교해보라), 그리고 우리는 관료의 바다 위에 떠 있던 기름이었고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자기고백을 했던 노무현 정부의 초기 개혁 드라이브의 실패가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에게 주는 교훈은 의미심장하다. 야5당과 시민사회의 연합으로 등장한 시 정부가 초기 개혁에 실패할 경우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개혁진영 전체의 앞날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판가름할 두 개의 큰 선거가 있는 2012년도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다.


시정혁신의 출발점은 합의의 이행

6.2지방선거가 선거에 승리한 진보개혁진영에 부여하는 과제는 참으로 막중하다. 기존의 보수 정권들이 개발지상주의에 빠져 소홀히 했던 민주주의와 민생, 초록평화의 가치를 지역 차원에서 각종 정책에 스며들게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이번 선거에서 뽑힌 지방자치의 주역들이 말뿐인 지방자치를 자치의 본령에 맞게 발전시켜가는 것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다. 다시 강조하지만, 자치의 핵심은 주민들에게 결정권을 최대한 돌려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시장이 갖고 있던 ‘제왕적’ 권력, 관료들이 전유했던 정책 결정권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그 핵심이다.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주민들은 주어진 권한을 보다 책임 있게 행사하면서 지역 공동체의 책임 있는 성원이 될 것이고, 이런 과정이 제도화되어 정착할 때 민주주의의 기반은 눈에 띄게 강화될 것이다.


요컨대 주민들의 분야별, 지역별 시정 참여 기회와 폭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은 민주주의와 공동체 사회 건설의 기본 전제다. 주민들이 시정에 활발하게 참여할 때 풀뿌리 주민자치가 생동하는 따뜻한 공동체 사회의 건설이라는 고양무지개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있고 민주주의의 기반은 대폭 강화된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그 출발점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고양지역의 야5당과 시민사회, 그리고 후보자들을 포함한 그 성원들은 무지개정책 협약을 통해 정책연대를 완성했고, 시정 공동운영에도 합의했다. 약속도 안 지키는 ‘진보’라는 세간의 인식을 깨끗이 불식시켜야만 진보의 미래, 고양지역 진보개혁세력의 미래가 탄탄한 반석 위에 놓일 것이다.


그리고 쓸데없는 포장과 허장성세는 금물이다. 이제 남들도 다하는 무상급식, 대부분 중앙정부와 도의 매칭 예산인 복지 예산, 그만 좀 포장하자. 이번에는 잘 몰라서 시기를 놓쳤고, 다음부터는 쓸데없는 예산 줄이고 알토란같은 정책공약 예산 미리미리 협의해가며 착실하게 챙기겠다고 솔직히 고백하자. 속았다고 느끼는 순간 믿음은 무너진다. 무리한 포장이나 과장보다는 약속의 성실한 이행이 훨씬 더 큰 자산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지난 6개월을 차분히 성찰하며 새로운 출발의 기틀을 구상할 때다.


5. 재출발의 전제 및 경로


흐트러진 마음과 대오를 재정비하고 힘 있게 재출발하려면 다음과 같은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


첫째, 각 단위별 숙의와 토론을 통해 연대연합정신을 복원해야 한다. 연합정신의 복원 없는 시정 공동운영과 지역 거버넌스는 껍데기일 뿐이고, 주민참여의 성과도 내기 힘들다.


둘째, 연합에 참여한 시장과 시도의원, 제 정당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합의한 협약의 핵심 방향과 내용에 대한 이행의사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견이 있을 경우 그 부분을 명확히 해야 하며, 이행의사가 없는 협약 당사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시장, 시도의원, 제 정당시민사회단체 간의 실질적인 협의체계를 다양하게 구축해야 하며, 합의 당사자들 간의 지속적인 대화와 협의를 통해 상호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넷째, 전략단위와 실행단위를 상시 운용할 필요가 있다. 제도화할 수 있으면 더욱 좋지만, 제도화 여부와 상관없이 전략단위와 실행단위를 상시 운용해야만 시정 공동운영 체계의 안정을 기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다섯째, 협약 당사자들은 협약 및 협의 사항을 성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제도화는 물론 중요하지만 제도화가 합의 이행의 전제일 수는 없다. 합의를 재확인하고 그것을 착실하게 이행해 나간다면, 제도화의 장벽은 그리 높지 않을 수 있다. 마음과 몸을 함께 모으고 힘과 지혜를 모을 수 있는 체계를 종횡으로 다양하게 엮어내고 진지하게 대화하며 협의해 나간다면, 지금이라도 고양무지개는 다시 뜰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