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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기를 좋아하는 자는 구름 속의 번개와 바람 앞의 등불 같고, 가만히 있기를 즐기는 자는 불꺼진 재와 메마른 나무 같다. 모름지기 멈춘 구름과 잔잔한 물 가운데에 소리개 날고 물고기 뛰노는 기상이 있어야 하느니, 이것이 바로 도를 깨친 자의 마음이니라.
-- 홍자성(1600년경), <채근담> 22장




세상을 살다 보면 별의별 사람을 다 보게 된다. 바람처럼 번개처럼 휙휙 날아다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으나 나중에 알고 보면 별 실속도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월이 약이라면서 마냥 죽치고 앉아 만년 그 모양 그 꼴인 사람도 있다. 반면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은데도 세상을 훤히 꿰면서 정곡을 찌르는 비범한 사람도 있다.

중국 5천 년의 지혜가 담겨 있다는 책, <채근담菜根譚>. 책 이름이 얘기하듯이 <채근담>은 무나 배추 뿌리를 씹는 맛과 같은 담담한 매력을 간직한 채로, 때로는 따끔하게, 때로는 온후하게, 세태에 영합하여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기에 급급한 우리들,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정신이 계속 고갈돼만 가는 우리들을 질책하고 위로하면서 참된 삶의 길로 안내한다.

거기에서 뽑아낸 위의 경구는 시류에 민감하여 냄비처럼 금방 끓었다 식었다 하는 사람과, 그와 정반대로 썩은 나무토막처럼 한 곳에 둥지를 틀고 앉아 세상이야 어찌 되건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을 조용히 나무라면서, 쉬 달아오르지는 않으나 일단 열이 오르면 쉬 식지 않고 냄비의 몇십 배 일을 해내는 가마솥 같은 사람이야말로 참된 인간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파닥거리는 냄비나 썩은 나무토막 같은 사람은 많아도, 진득하지만 그 속에 뜨거운 열정을 감추고 있는 가마솥 같은 이는 참 드물다. 가마솥의 진가는 평상시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보통 때에는 냄비가 사용하기도 간편하고 열효율도 높다. 그러나 큰일을 치를 때, 비바람이 몰아칠 때, 가마솥은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자와 가만히 있기를 즐기는 자, 가만히 있는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가 보는 세상 역시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자는 작은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서 그로 인해 마치 온 세상이 달라진 양 호들갑을 떤다. 가만히 있기를 즐기는 자는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며 크고 작은 변화를 다 무시해버리는 초연한 자세를 취한다.

겉보기에는 가만히 있는 듯하나 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는 작은 변화에 호들
갑을 떨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크건 작건 모든 변화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런만큼 삶이나 운동의 조건도 달라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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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히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것을 가장 실감케 하는 것은 이제 어느덧 생활의 한 부분이 돼버린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의 놀라운 발달이다. 몇 년 전에 산 컴퓨터는 고물이 되어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블로그나 트위터를 모르는 사람은 석기시대의 유물정도로 취급된다.

그뿐인가. 멀티미디어니 가상현실이니 사이버스페이스니 하는 것들을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최소한 그게 뭔지 모르고서는, 이제 대화에도 끼기가 쉽지 않다. 온갖 정보와 이미지가 홍수를 이루어 흘러다니면서 현실과 마구 뒤섞이고, 디지털 혁명이니 웹2.0 시대니 하는 말들이 난무하면서 우리에게 낡은 사고방식을 바꾸라고 위협한다. 바야흐로 컴퓨터가 몰고온 정보통신혁명이 마치 세상의 뿌리를 뒤흔들면서 우리의 삶과 사회를 완전히 뒤바꿔놓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 걸음만 떨어져서 보자. 이제 컴퓨터를 모르고서는 먹고살기도 힘들고 인터넷 없이는 세계를 꾸려가기도 힘들어졌다는 점에서 그건 분명히 커다란 변화다. 누구나 다 이제 인터넷을 익혀야 하고 모든 사회활동이 컴퓨터기술이 제공하는 토대 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다고 또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제 가난한 노동자나 그 자녀들도 동등한 조건에서 지식과 정보를 맘껏 쌓아 얼마든지 힘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일까.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그중 능력있고 운좋은 일부는 빠른 변신을 거듭하여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반적인 추세다. 컴퓨터기술도 그 자체로서는 가치중립적인 과학기술의 일반 성격 바깥에 있지 않다. 부의 창출 수단으로서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가고 있는 지식과 정보도 다른 생산요소들과 마찬가지로 돈과 권력이 있는 쪽으로 점점 더 집중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그에 따라 일반대중의 소외는 점점 더 증폭돼가고.

사실,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뒤흔드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변화가 가져온 것이라고는 이제 주판이나 부기장부, 종이나 펜 대신에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는 것, 손으로 직접 기계를 돌리지 않고 컴퓨터를 이용한다는 것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강도가 약해진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삶의 여유가 없어지고 실업할 가능성이 더 커지는 등, 그 역작용도 만만치 않다.

세상을 볼 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과 내재해 있는 본질을 구분해서 관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움직임 가운데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읽고 잔잔한 가운데에서 변화를 읽어내며 그 관계를 밝히는 첫째 관건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현혹되거나 압도당하지 않되 그렇다고 작은 변화도 무시하지 않는 것, 당면한 현실의 변화를 구명하고 그 방향을 잡되 목표와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은 예나 제나 세상을 바로 보는 핵심적인 잣대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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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자성과 <채근담>

<채근담>을 지은 이 홍자성洪自成은 1600년 전후인 명明나라 신종 때 사람으로, 생몰 연대도 확실치 않고 경력이나 인물됨에 대해서도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스스로 환초도인還初道人으로 불렀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채근담>의 내용으로 보건대 그의 사상은 유교를 근본으로 도교와 불교 사상을 융합하고 거기에다 자신의 폭넓은 체험을 가미한 것으로서, 깊고도 넓은 맛을 준다.

홍자성의 <채근담>은 총 359장(전집 225장, 후집 134장)으로 된 짧은 어록의 묶음인데, 그 하나하나가 시적 표현이 넘치는데다 대구법을 활용하고 있어 멋스러움을 풍긴다.

소재 또한 매우 넓고 풍부하며 내용 역시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 인간 심리와 세태를 거의 망라하여, 누구라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음미하는 데 적합하도록 엮여 있다.

다만, 세상의 더러움을 멀리하면서 지혜롭게 사는 길을 추구하다 보니 현실에 지나치게 초연한 느낌을 주어 다소 소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인격과 도덕을 다지는 것이 자아실현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보면, 이를 잘 활용하고 못하고는 자신이 얼마나 진취적인 자세를 갖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참고로, <채근담>에는 18세기 청淸나라 고종 때 홍응명이란 이가 지은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