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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은 벌거숭이잖아.
-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




어른이 돼서 어린 시절에 읽은 동화를 다시 읽는 느낌은 색다르다. 짧은 이야기 속에 함축된 깊은 진리에 새삼 놀라고 자유롭고 기발한 스토리 전개에 탄복한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어릴 때 그토록 엄청난 진리와 정의와 사랑과 용기와 상상력의 세례를 받으며 자랐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다.

그런 자각은 세파에 휩쓸려 많은 것들을 잊은 채 무딘 감각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현실 속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반추로 이어져, 가슴 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이토록 나의 오감을 무디게 하고 내 눈에 꺼풀을 씌운 것이 무엇이며, 이토록 나의 마음을 갉아먹고 내 머리를 녹슬게 한 것이 또 무엇이며, 이토록 나의 손발을 묶고 내 발목을 붙잡는 것이 또 무엇인가?

안데르센 동화집에 실린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도 예리한 현실 갈파와 조용한 풍자, 의미심장한 교훈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이야기에도 뒤지지 않는다. 교과서에까지 실린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도 예리한 현실 갈파와 조용한 풍자, 의미심장한 교훈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이야기에도 뒤지지 않는다. 학교 문턱이라도 밟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줄줄이 꿰는 동화지만, 이야기를 풀기 위해 잠시 스토리를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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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나라에 사기꾼 둘이 찾아온다. 그 나라 임금이 새 옷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라는 소문을 듣고는 한바탕 일을 꾸며 한몫 잡으려는 계산에서다. 이번 카드는 자격 없는 사람이나 바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이다. 옷의 빛깔이며 무늬가 세상 어느 옷에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아름답지만, 무자격자나 바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금님의 사가꾼들이 퍼뜨린 소문에 혹하여 많은 돈을 주면서 사기꾼들에게 옷을 지으라고 명한다. 사기꾼들은 돈을 받아 챙긴 뒤 빈 베틀 앞에 앉아 열심히 옷감 짜는 시늉을 한다.

하루 빨리 그 신기한 옷을 입고 싶어 안달이 난 임금님은 신하에게 옷이 얼마나 만들어졌는지 보고 오라고 명한다. 신하는 아무것도 없는 베틀을 보고는 가슴이 덜컥하지만 자신의 무능함을 내비치기 싫어 정말 아름다운 옷감이라고 칭송한다. 두 번째 신하도 마찬가지다.

마침내 임금님까지도 옷 짓는 곳에 가서 거짓의 증폭 과정에 동참한다. 신기한 옷에 대한 소문으로 이제 온 나라가 들썩거린다.

이윽고 ‘옷’이 완성되었다. 임금님은 불안감과 당혹감을 애써 억누르면서 그 신기한 ‘옷’을 차려입고 행차에 나선다. 사람들의 입에서 한결같이 그 멋진 ‘옷’에 대한 칭송이 터져나온다. 거짓의 절정이다.

그러나 한 어린이의 멋모르는 발설로 그 완강하던 거짓의 틀이 깨진다. ‘임금님은 벌거숭이잖아.’ 사방에서 숙덕거림이 일면서 취약하기 짝이 없는 거짓의 토대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리지만, 아무 일 없는 듯 행차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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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거짓의 생성, 증폭 과정과 그것이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폭로하면서 거짓이 횡행하는 세태를 풍자한다. 그와 더불어 진실을 아는 것과 진실을 말하는 것의 차이, 진실 말하기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한편, 마지막 장면에서 천진난만한 어린이를 등장시켜 아주 가볍게 진실을 폭로함으로써 일견 견고해 보이는 거짓의 기반이란 것이 사실 얼마나 취약하고 또 그렇게 어려워 보이는 진실 말하기가 꺼풀 하나만 벗어던지면 또 얼마나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인가를 꼬집는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 무슨 일이든 처음 하는 데는 많은 고민과 갈등이 따른다. 이브의 사과 따먹기가 그랬고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이 그랬으며 이승만의 집권 연장을 위한 발췌개헌안 통과가 그랬다. 그 다음부터는 큰 갈등 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다.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이야기에서 임금의 첫 번째 명을 받고 옷의 제작을 살피러 간 덕망 놓은 신하는 몇 번이고 자신의 눈을 비비며 빈 베틀을 뚫어져라 살피지만, 마침내 자신이 무자격자로 판명되는 것이 두려워 거짓말을 한고 만다. 이어서 다음 신하. 그리고 임금님까지도 거짓의 확대재생산 과정에 참여하고, 거짓은 이제 자체 동력을 얻어 자신을 계속 정당화하고 증폭시켜가면서 마침내 ‘시장의 우상’으로 부상한다.

이제 그 거짓을 부정하는 사람은 정신 나간 사회 일탈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모든 이의 눈에 엄청난 무게의 꺼풀이 씐 것이다. 그 꺼풀은 이제 거꾸로 나를 보존하는 안전판 구실까지 한다. 그리고 그 꺼풀을 쓰고 보면 임금은 실제로 벌거숭이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은 멋진 군주다!

많은 선각자와 철학자들이 인간 세상에서 이런 현상이 지배하는 것을 그토록 경계하고 또 경고해왔건만, 인간이란 원래 부족한 존재인 탓인지 아직까지도 그런 세태가 횡행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의 눈에 그런 꺼풀을 씌우는 요소들은,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뜬구름과도 같은 권력과 부와 명예를 좇는 욕구에서부터 다른 사회성원들로부터 ‘건전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고자 하는 기초적인 욕구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모순으로 가득 찬 사회가 개개인의 삶 속에 반영되어 빚어내는 욕구들의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 어린 소년의 ‘철없는’ 한마디가 많은 이들의 눈에 씌어 있던 꺼풀을 걷어내어 진실을 바로 보고 바로 말할 수 있게 하듯이, 꺼풀을 쓰고 있다고 해서 진실 자체가 사라지거나 진실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거짓에 가려진 진실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틈만 나면 바깥으로 비어져 나오려고 한다. 이야기에서처럼 천진난만한 아이나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 꺼풀이 벗겨지기도 하지만, 거짓을 만들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이들의 아차 하는 실수나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 꺼풀이 벗겨지기도 한다.

꺼풀이 벗겨지는 순간, 흐릿하던 진실이 갑자기 환하게 다가오면서 한동안의 어지러운 꿈에서 깨어난다. 많은 사람의 눈에서 꺼풀이 걷힘과 더불어 거짓은 설 자리를 잃는다.

그러나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다. 거짓과 진실간의 피나는 싸움의 시작임과 동시에 거짓의 새로운 변형과 새로운 음모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