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물과 불은 기氣는 있지만 생명이 없고 초목은 생명은 있지만 지각이 없으며 짐승은 지각은 있지만 예의가 없으니, 오직 사람만이 기도 있고 생명도 있으며 지각도 있고 예의도 있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가장 귀한 것이다. 그러나 힘으로 말하면 소를 당할 수 없고 달리기로 말하면 말을 당하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소와 말을 부리니 어째서인가? 사람은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나 소나 말은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 순자(B.C. 298?-235?), <순자> 왕제王制편



‘인간의 본성은 악하여 날 때부터 이익을 좋아하고 질투하고 증오한다.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쟁탈과 살육이 일어나므로 예의로써 그 악한 본성을 교정해가면서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성악설의 주창자로 우리 귀에 익숙한 순자. 그는 춘추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로, 유가儒家의 사상을 본류로 하고 거기에 墨家묵가, 법가法家, 도가道家, 兵家병가 등 제자백가의 사상들을 접목시켜 중국 사상사에 커다란 획은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가 살던 시대는 전국칠웅, 즉 전국시대의 7대 강국인 진, 초, 제, 연, 조, 위, 한 나라가 천하통일을 지향하면서 격하게 대립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진秦이 선두에 서서 통일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던 때였다.

당시 제자백가의 많은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순자 역시 여러 나라를 순례하며 자신의 뜻을 펼칠 곳을 찾았다. 태어난 곳은 조趙나라였으나, 자신의 학문체계를 세운 것은 제齊나라였으며, 간신배들의 참소로 제나라를 떠난 뒤에는 초楚나라에서 봉직했다. 모함에 걸려 초나라에서도 파직된 뒤에는 고향인 조나라로 돌아와 있다가 잠시 진나라에 초빙되어 법치주의를 구현하기도 했다. 그후 다시 초나라의 부름을 받아 장관으로 일하다가 주군인 춘신군이 암살당한 뒤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저술에만 힘썼다.

그는 당시 무르익고 있던 중국통일의 과제에 몰두하여 공동체 내에서 하나로 화합하는 질서를 지향하면서, 그 수단으로서 예의와 분별을 제시했다. 그와 함께 전통적인 하늘(天)관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당시로서는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하늘과 사람의 분리’ 이론을 폈다. 즉, 하늘은 자연물이고 인간은 생물이라면서 인간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하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순자의 사상은 예禮를 중시하는 유가의 실천도덕을 바탕으로 하지만, 거기에다 전국시대에 활짝 꽃핀 여러 사상을 비판적으로 지양, 수용하여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면모를 갖춤으로써, 흔히 그리스 철학을 집대성한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비견된다.

비슷한 시대에 각기 동서양의 철학을 집대성한 두 사상가의 공통점은 꽤 많은데, 둘이 모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현실사회에서의 덕치德治의 실현을 추구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둘은 또,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이성’ 또는 ‘분별’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데서도 의견을 같이했다.

물론 두 철학자의 사상은 시대적인 한계를 명백히 드러낸다. 순자가 군신간, 부자간, 남녀간의 분별을 중시하여 각자가 나름대로의 본분을 다할 때 사회의 질서와 평화가 유지된다고 말한 것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노예는 천성적으로 타인의 의지를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노예제도의 합법성과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자유민들만의 국가를 상정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그럼에도, 말 그대로 인간이 인간을 떠나서는 결코 인간이라 할 수 없고 이성과 분별을 가지고 공동체 속에서 공동의 삶을 영위해 나갈 때에 비로소 인간인 된다는 만고 진리를 깨닫고 또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두 사상가가 인간의 지혜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인간은 분명히, 생산 공동체인 사회를 떠나서는 삶 자체를 보장받을 수도 없는 사회적 존재다.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나 생산활동에 필요한 지식 없이 사회로부터 그냥 자연으로 내던져진 인간은 삶 자체도 영위하기 힘든, 지극히 힘없는 일개 동물일 뿐이다.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노동은 처음부터 집단적인 공동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씨족이나 부족 단위를 이루어 공동으로 생산, 분배하며 살아가던 원시시대 이래로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은 사실상 죽음을 뜻했다. 또, 저마다 다른 사람들의 개성조차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라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한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명제의 반박으로서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가 많이 들먹여진 적이 있다. 로빈슨 크루소는 18세기 초에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대니얼 디포가 쓴 소설의 주인공이다. 디포는 4년 남짓 무인도에서 혼자 살다가 구조된 한 선원의 경험담에서 힌트를 얻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야기 속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갖은 공포와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무려 28년의 무인도 생활을 훌륭하게 살아낸다.

그러나, 표류하여 무인도에 정착하기 전 37년 동안이나 그는 다른 이들과 함께 살면서 이미 여러 가지 삶의 지혜를 배워 가지고 있었던데다, 운좋게도 가까운 곳에 떠내려온 난파선에서 개와 고양이, 보리와 볍씨 몇 알, 총과 화약, 공작도구와 옷, 그리고 성경까지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무인도 생활은 사실상 사회생활의 연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물론, 저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자신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사회를 벗어나고자 하는 일종의 탈사회 욕구가 있다. 그것은 여러 양태로 나타난다. 최소한의 사회관계만을 유지하면서 대부분의 시간과 관심을 자신한테만 쏟아부어 자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기도 하고, 자신과 사회의 연관성을 의식적으로 부정 또는 폄하하면서 극단적인 개인주의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속한 사회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찾아 모험을 떠나기도 하고, 아예 속세를 떠나 자연이나 ‘신’의 품으로 귀의하거나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며, 때로는 현 사회를 파괴하려는 행위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배경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과 동시에 개개의 인간이 또한 그 자체로서 존엄한 삶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서 한시도 쉼 없이 사회와 개인간의 밀고당기기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인간의 탈사회 욕구는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욕구와 동전의 양면 관계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달리 말하면 자신이 지금 속한 사회의 틀을 부정하는 것이고, 현 사회의 부정은 종종 자신이 진짜 그 속에서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들거나 찾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러 면에서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 이야기는 순자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를 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보완해주는 것이며, 그와 더불어 당시 영국을 풍미하던 시대적 조류, 즉 영국이라는 땅덩이가 좁다고 느끼면서 새로운 부의 원천을 찾아 5대양 6대주를 누비던 당시 영국인들의 모험 정신, 그리고 그와 직간접으로 얽힌 탈사회 욕구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어쨌든 인간은 좋으나 싫으나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욕구와 더불어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더 나은 상태로 만들려는 욕구와 의지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인간은, 그 범주와 수준은 비록 천차만별이지만, 저마다 자기의식을 갖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면서 그런 욕구들을 실현하려 한다.

그러므로 인간 탐구는 사회 탐구와 별개로 진행될 수 없으며, 그중에서도 사회생활의 기본토대인 생산활동을 중심으로 하여 탐구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