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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B.C. 624?-545?)에게는 유명한 일화 두 개가 전해내려온다. 하나는 꾀부리다가 죽음을 자초한 나귀에 관한 이야기다.

탈레스가 어느 날 나귀 등에다 소금을 싣고 장에 가는데, 나귀가 개울을 건너다 발이 미끄러져 물에 빠졌다. 다시 일어선 나귀는 짐이 가벼워져서 기분이 좋았다. 얼마 후, 이번엔 솜을 싣고 같은 개울을 건너게 되었다. 지난번의 기억을 되살려낸 나귀는 미끄러지지도 않았는데 일부러 물 속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러나 물 먹은 솜이 이만저만 무겁지가 않아서 그 자리에서 끙끙대다가 일어서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다. 편안함을 꾀하여 얕은 수를 부리는 것을 매섭게 질타하는 이야기다.



머리에 인용한 경구의 출처는 두 번째 일화로서, 천문학과 점성술에도 관심이 많던 탈레스가 별을 보다가 웅덩이에 빠진 이야기다.

어느날 밤, 탈레스는 전과 다름없이 하늘의 별을 보면서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평상시에 보이지 않던 별 하나가 하늘에 떠 있는 게 아닌가. 탈레스는 별에 심취한 나머지 자신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만 웅덩이에 텀벙 빠지고 말았다. 근처를 지나던 할머니 한 분이 탈레스의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웅덩이 밖으로 그를 끌어냈다. 탈레스한테서 자초지종을 들은 할머니가 하는 말, “쯧쯧, 제 발 밑도 모르면서 어찌 하늘의 일을 알겠노?”

당시 그리스의 식민지, 밀레토스의 유명인사였던 탈레스의 이 일화는 금방 사람들 사이에 퍼졌다가, 플라톤의 손으로 기록되어 지금까지 전해내려 온다. 플라톤은 자신의 일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일상생활에는 너무도 무지한 학자들의 예로서 이 일화를 인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일화의 의미는 흔히 조금 다른 각도로 해석된다. 즉, 현실은 무시하고 고상한 이상만 추구하는 것을 비꼬는 경구로 많이 인용되는 것이다.

탈레스는 사실 인류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만물의 원질은 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세계의 근원을 추적하고 그 원리를 설명함으로써 신화로부터 철학을 분리해냈다. 하여 ‘서양철학의 비조’로 불리는 그는, 일식 날짜도 예언해서 맞히는 등, 천문학과 수학 분야에서도 여러 가지 발견을 하여 ‘과학의 아버지’로도 숭앙받고 있으며, 더구나 당시 밀레토스의 정치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그가 현실을 무시한 예로서 자신이 들먹여진다는 것을 알면 무척이나 서운할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당시 밀레토스의 민중들에게는 아마도 만물의 원질이니 일식이니 하는 문제가 먹고사는 것과 직접 관계도 없고 현실과도 별반 관계없는 문제로 비쳤을 테니, 탈레스가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그다지 서운해할 일은 아닐 것 같다. 많은 선각자들이 그런 일을 겪듯이, 사람들이 자신의 큰 뜻을 몰라준다고 한탄하는 건 또 모를까.

어쨌거나 현실과 이상,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 역사적인 것과 초역사적인 것, 물질과 관념, 부분과 전체 등등, 각기 범주는 달라도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겪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들의 사이나 관계나 우선순위를 이야기하는 말들은 이밖에도 무척 많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거나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는 등의 말은 눈앞에 닥친 현실에 급급하여 전체를 못 보거나 전망을 갖지 못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고, 반면에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거나 ‘천사를 흉내내려는 사람은 짐승을 흉내내게 된다’거나 ‘뭐가 밥먹여 주느냐’ 등등은 현실을 무시하는 태도를 비꼬고 질타하는 말들이다.

양 측면의 어느 한쪽을 강조하는 이런 말들의 홍수는 우리네 삶의 양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부분적인 것과 전체적인 것, 엄연한 현실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 등이 어우러져 우리네 삶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측면에 지나치게 치우치는 것은 진실에 접근하는 길을 가로막는다. ‘두 발을 땅에 굳건히 머리는 높이 쳐들고’라는 경구는 그런 두 가지 편향을 극복하여 하나로 통일해내는 올바른 삶의 자세를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를 바르게 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일을 찾아 매진하려 할 때에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자신의 일에 필요한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세계가 나아가는 방향과 전망을 보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의 본질을 이해하는 폭넓은 시야가 있어야만, 눈앞의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을 정확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으며 나아가 삶의 의미와 목적도 정립할 수 있다.

그런데 거기에서 크게 경계해야 할 경향이 하나 있다. 보편적인 것을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인간의 삶, 인간의 역사와 동떨어진 곳에서 사회의 동력을 찾고 거기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다. 그런 경향은 실현가능한 목표나 이상을 추구하는 데서 빗나가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것에 빠져버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와 같이 현실을 떠나 먼 하늘에서 이치를 구하고 길을 찾은 사람들은, 속은 시꺼먼데 겉으로는 점잔을 빼는 위선자나 교묘한 술수로 사람들을 속여 잇속을 챙기려는 사기꾼이나 이도 저도 모르면서 횡설수설을 늘어놓아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얼간이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은 사람들을 현실 사회에서 떼어내어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해간다. 위에 인용한 경구는 일화의 유래와 관계없이 그런 잘못된 경향을 신랄하게 비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엽적인 현상에 매몰되지 않되, 그렇다고 먼 하늘에서 길을 구하지 않고 우리네 역사와 현실에서 길을 찾아 그것을 넓게 확장시켜가는 것이야말로 진리에 이르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