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쟁점 1. 금정굴 희생자들은 극렬 좌익 또는 적극 부역자?


일각에서는 금정굴 희생자가 ‘극렬 좌익’이나 적극 부역자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 국군에 의해 고양지역이 수복이 되었을 때 인민군 점령하에서 군이나 면 단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던 ‘극렬 좌익’이나 적극 부역자는 이미 월북 또는 피신하고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인민군 점령하의 리 단위 인민위원회 간부들은 형식상 선거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로서 대개 각 리의 주민대표자들이었으며, 이전부터 마을에서 이장이나 그 밖의 마을 일을 보고 있었던 주민들이 많았다.

당시 주민들은 인민위원회 참가 혹은 협력 행위를 좌익 활동이라기보다는 일반 행정 지원활동으로 보았으며, 대부분 묵시적 압력에 의해 하는 수 없이 일을 보게 된 것이므로 수복 후에 엄한 형벌을 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피신도 하지 않고 그대로 마을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런 정도의 소극적 협력을 한 사람조차도 희생자 중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확인된 희생자 중 절반 이상은 부역혐의자의 가족 또는 부역과 무관하게 개인감정으로 지목된 사람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일각의 주장대로 희생자들이 ‘극렬 좌익’이나 적극 부역자였다는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쟁점 2. 즉결처형은 경찰서장의 합법적 권한?


일각에서는 당시는 전쟁 중이라는 특수 상황이었으므로 경찰 조사만으로도 즉결처형을 할 수 있었고, 따라서 불법 행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건이 진행될 당시 고양군 지역은 9.28수복 이후 치안이 회복되고 있던 상태로서 전투지역이 아니었고, 어떤 법령에 의해서도 교전 상태가 아닌 곳에서 경찰서장에게 즉결처분권이 주어진 적이 없다.

경찰이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국민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법적 공백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시 발효 중이던 모든 법령, 즉 제헌헌법, 구 형사소송법, 미군정 법령, 구 형법, 건국 이후의 대한민국 법령과 국제법으로서의 전쟁법이 모두 민간인 보호와 법에 따른 처벌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었다.

당시 부역혐의자 처벌에 적용할 수 있었던 ‘국방경비법’,‘국가보안법’, ‘비상사태하 특별조치령’의 어느 곳에도 재판 없이 형벌을 가할 수 있게 허용하는 조항은 없다.

나중에 위헌 판결을 받은 ‘군법회의에서의 단심’일지언정 반드시 재판을 거쳐 처벌하도록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부역혐의자의 무분별한 처형에 대한 반성에서 1950년 12월에 제정된 ‘부역행위특별처리법’과 ‘사형(私刑)금지법’에서는 부역자에 대한 선처, 법에 의거하지 않고 사사로이 형벌을 가하는 자에 대한 엄벌 등을 규정하고 있다.

국제법상으로도 금정굴 사건을 비롯한 전쟁기 민간인 집단살해는 비무장 민간인의 살해를 금한 ‘헤이그 협약’, 전시에서의 민간인 보호를 규정한 ‘제네바 협약’과 ‘제노사이드 협약’ 등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었다.


요컨대 비록 희생자의 일부에 부역혐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교전 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경찰이 혐의만 갖고서 비무장, 무저항의 민간인들을 강제 연행하여 불법 구금, 고문하고 재판도 없이 즉결처형한 것은 헌법상의 기본권인 생명권과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 명백한 불법 행위로서, 법치주의에 위배될 뿐 아니라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에 해당한다.



쟁점 3. 전쟁 중에는 불가피하게 억울한 희생이 따르는 법?


전쟁 중에는 사람들이 많이 죽고, 또 억울하게 죽는 사람들도 많다.

전쟁은 본디 승리를 목적으로 하므로 승리를 위해 불가피한 희생을 만들기도 하고, 또한 사람들을 이 편, 저 편으로 갈라 비이성적인 존재로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 중의 민간인 집단살해가 과연 불가피한 것이었느냐, 학살 명령이 모두 거역할 수 없는 것이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되던 전쟁 중, 똑같은 상황에서도 가끔씩 ‘선한 이웃들’이 나타나 우리에게 희망을 남겨주고 있는 것이다.

충북 괴산군 소수면에서는 지서장과 의용소방대장이 상부의 학살명령에도 불구하고 200명을 살려주었다.

그 결과 인민군 점령기나 국군 수복 시에도 다른 지역과 달리 아무런 학살 행위가 일어나지 않았다.

충북 청원과 영동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독립군 출신이던 제주도 성산포 경찰서장 문형순은 해병대 정보참모로부터 ‘D급 및 C급의 총살 미집행자에 대하여는 귀서에서 총살집행 후 그 결과를 (1950년) 9월 6일까지 육군본부 정보국 제주지구 CIC 대장에게 보고’하라는 공문 지시를 받았으나 지시가 ‘부당하므로 불이행’하겠다고 하여 그곳 관내에서는 다행히도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그는 또한 제주4.3 당시 모슬포 경찰서장으로 재직하면서, 자수자 110여 명을 무죄 방면하기도 했다.

충남 천안에서도 다른 시군과는 달리 경찰서장 등의 결단으로 보도연맹 학살이 없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이곳 고양 지역에서도 우리 마을은 덕망 있는 아무개의 지도하에 서로서로 보호해주는 분위기여서 점령 전후, 수복 후에도 학살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온다.

사람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전쟁기의 무자비한 학살을 피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쟁점 4.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은 과거 정부의 잘못된 판단?


진실화해위원회의 설립 근거법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은 2005년 5월 여야 합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여야 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누더기법’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조사 권한이 약화되는 바람에 이후 위원회의 진실규명 활동에 큰 지장을 초래할 정도였다.

또한 진실규명 결정도 15인 위원회의 합의를 거쳤기 때문에, 여야가 추천한 위원들 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질 수 없었다.

진실규명 결정은 과거 정부의 잘못된 판단이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일각의 주장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에 대한 모독이며, 국가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다.

더욱이 대한민국을 우리가 세웠다며 국가와 국체를 신성시하는 이들의 입에서 그런 주장이 나온다는 것은 일종의 자가당착이다.


최근에 와서는 사법부까지도 전쟁기 민간인 집단희생에 대해 국가의 명백한 잘못이라며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배상, 보상을 하여 그 책임을 이행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울산 보도연맹 사건과 문경 석달동 사건에 대해서는 3심인 대법원에서까지 국가가 유족들에게 배상, 보상을 하라는 판결이 내려졌고, 고양금정굴 사건과 고양부역혐의 사건에 대해서도 2011년 12월과 11월 각각 유족들에게 배상을 하라는 1심 판결이 내려졌다.

정부와 국회, 법원에서 내리는 결정과 판결을 부정한다면, 대한민국의 정의를 세우는 곳은 어디일까?



쟁점 5. 경찰을 살인자로 규정하면 과거 국가를 위해 싸웠던 유공자들의 삶이 부정된다?

애국자들이 범법자 되고 부역자가 애국자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문제다.

국가와 민족과 국민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다.

그런데 국가와 민족을 이루는 것은 국민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나,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나라의 근본인 국민을 해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더욱이 경찰은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을 핵심 임무로 부여받고 있는 국민의 공복이다.

그런 경찰이 법을 어기고 국민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경찰의 불법 행위는 법의 잣대로 엄벌돼야 하고, 그래야만 경찰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국민의 공복으로 거듭날 수 있으며, 그럴 때라야 국가가 진정한 국민의 국가로 재탄생할 수 있다.

민간인을 불법으로 집단살해한 살인자가 살인자로 규정되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싸운 유공자들도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두루뭉술하게 통칭 ‘애국자’로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도 불법 행위를 자행한 자들에게 엄중한 조치를 취할 때, 그러지 않은 애국자들이 사회와 국민의 진심 어린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희생당한 ‘부역혐의자들’(‘부역자’라는 법적 판단을 받을 기회조차도 부여받지 못하고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극진히 모시고 보살피는 것은 국가와 사회가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취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자, 과거 국가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하면서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다짐이다.



쟁점 6. 부역자의 명예회복은 안 된다? 부역자 유족들이 먼저 사과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전쟁 유공자들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데 부역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은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전시에 국가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젊은 시절을 전장에서 보낸 국가 유공자들은 마땅히 그에 합당한 예우를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에서 그들을 찾아내 합당한 예우를 해주고 국가 유공자에 대한 처우도 개선해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들도 어떤 면에서는 전쟁의 ‘피해자’였고, 그 공적과 피해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재판도 받지 못하고 불법적으로 희생당한 ‘부역혐의자’와 그 가족들은 전쟁의 최대 피해자였고, 이후 유족들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이중, 삼중의 피해를 겪어왔다.

금정굴 사건과 같은 국가범죄나 전쟁범죄, 반인륜적 범죄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그 어떤 피해자보다도 극진한 보살핌과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이미 오래 전에 합의한 인권규범이다.

그 후유증도 크고, 또 2차, 3차 피해가 유족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옥죄기 때문이다.


국제법에서는 국가범죄의 피해자와 유족들에 대해 진상규명, 피해 및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 및 사죄, 재방방지책 마련 등의 조치를 지속적으로 취하며 피해자와 유족들이 피해 의식을 벗고 사회의 당당한 성원으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진실화해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국가 위원회들에서 사건의 진실을 밝힌 후 전쟁기 민간인 집단희생 피해자나 권위주의 시대의 ‘의문사’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피해 및 명예회복, 위령사업, 재발방지책 마련 등의 조치를 신속하게 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불법적으로 집단살해당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인, 폭넓은 진실규명 후속조치의 한 부분일 뿐이다.

국가범죄의 해결과 희생자의 치유는 그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광범한 조치들이 함께 취해져야 하는 전 국민적 사업이고, 거기에는 국가와 모든 사회 성원들의 진심 어린 동참이 뒤따라야 한다.

또한 국가범죄의 경우, 가해자인 국가 또는 가해자 개인과 피해자 간 화해의 첫걸음은 국가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다.

국가와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죄와 피해자의 용서, 그리고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각종 조치들이 취해지면서 전 국민적 화해의 기반이 조성돼가는 것이다.

하물며 피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국가폭력의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또 다른 폭력으로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는 피해자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안겨주는 반인도적 행위다.



쟁점 7. 희생자 위령사업 등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국가가 할 일?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 6월 고양금정굴 사건 진실규명결정서에서 금정굴 사건은 고양경찰서장 책임하의 민간인 불법 집단살해임을 분명히 하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무하고 지역민과 국민들에게 역사적 교훈을 남기기 위해 금정굴 지역에 평화공원을 설립하고 적절한 위령시설을 설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에 앞서 경기도의회에서도 1999년 12월 일산금정굴사건 조사보고서에서 중앙정부에는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경기도에는 희생자 위령사업을 시행할 것을 건의한 바 있다.


금정굴 사건은 고양경찰서장 책임하에 저질러진 불법 행위이고, 그 최종적인 지휘 책임은 군검경 합동수사본부를 거쳐 국가와 대통령에게로 귀속된다.

따라서 위령사업 등 제반 진실규명 후속조치를 취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국가와 중앙정부에 있다.

그렇다고 지방정부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민의 복지증진을 기본 임무로 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지역민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살필 책무가 있다.

그러기에 진실화해위원회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위령사업을 시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고, 경기도에서도 중앙정부와 경기도에 건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중앙정부에서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희생자 명예회복이나 유해안치와 위령사업 등의 진실규명 후속조치를 미룰 경우, 피해 구제는 계속 지연되고 피해는 그만큼 가중된다.

지방정부에서라도 먼저 나서서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로해주면서 중앙정부에도 후속조치를 촉구, 건의하는 것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다.

문제의 해결을 미루는 것은 그 또한 책무를 방기하는 것으로서,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사고하면, 금정굴 사건은 전쟁기의 유사한 사건들 중에서 사건 현장과 유해, 유품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희귀한 사건이다.

한국 현대사의 아픈 자취일지언정, 그 자체로서 고양시가 갖고 있는 소중한 역사 유산이기도 하다.

평화도시를 지향하는 고양시에서 금정굴 일대에 전쟁기의 상흔을 보듬어 안아주며 평화를 성찰할 수 있는 평화공원을 조성할 경우 평화도시 고양시를 상징하는 명소가 될 수 있다.

고양시와 고양시민들이 뜻을 모아 억울하게 죽어간 전쟁 희생자의 유해를 안치하고, 금정굴 현장을 보존하여 후세의 성찰 장소로 삼으며, 평화교육 시설 등을 만들고 평화 예술작품 등을 설치한다면 수도권은 물론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평화도시 고양시의 중요한 기초자산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려면 중앙정부보다 먼저, 아니 경기도보다도 먼저, 고양시에서 앞장서서 위령사업의 단초를 놓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고양시와 고양시민의 주도하에 중앙정부와 경기도의 지원을 이끌어내며 수도권의 상징적인 평화공원을 조성해가는 것이다.



쟁점 8. 희생자 위령사업과 명예회복은 시기상조?


‘정의의 지연은 부정의’라는 유명한 법언이 있다.

잘못을 바로잡고 정의를 세우는 일은 빠를수록 좋고, 그것이 옳은 줄 알면서도 정의를 세우지 않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는 것이다.

금정굴 사건의 경우,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사건이 일어난 직후 실시된 군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조사 과정에서라도 즉각 바로잡아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로하고 책임자와 가해자를 처벌하여 법의 권위를 세움으로써 후세에 경계를 삼아야 했던 일이다.

만일 그랬더라면 그 뒤로는 유사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국가폭력이 기승을 부리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유족들의 가슴에 맺힌 한도 조금이나마 풀리고 유족들의 삶도 한결 편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군검경 합동수사본부에서 조사한 뒤 사건을 덮어버리고 없던 일로 만듦으로써 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뒤로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유족들의 호소와 청원에도 눈을 감고, 발굴된 유해도 방치하고, 경기도의회의 건의도 묵살하고, 유족들의 삶도 돌아보지 않는 등,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 명예회복과 위령사업 등의 후속조치를 취해야 하는 책무를 방기함으로써 유족들의 가슴에 거듭거듭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왔다.

정의를 지연시키는 부정의를 계속 저질러온 것이다.


2007년 6월 국가기관(진실화해위원회)은 뒤늦게나마 고양금정굴 사건을 부역혐의자와 그 가족들을 당시 고양경찰서장 책임 하에 불법 처형한 것으로 결론짓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희생자의 피해 및 명예회복, 위령사업 등의 후속조치를 조속히 취할 것을 권고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의를 세우고자 하면 조금도 지체 없이 희생자의 피해 및 명예회복, 희생자 위령사업 등을 즉각 시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정의의 지속 기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하여 국가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가중되는 피해도 줄일 수 있다.

국가가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공식 인정한 후로도 벌써 4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진실규명 후속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

정의의 지연을 통해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하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잘못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불법 처형당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위령사업과 희생자 명예회복 사업에 선결조건을 다는 것은 위로받고 기림받아야 할 희생자와 유족들의 가슴에 또 다시 깊은 생채기를 내는 일이다.



쟁점 9. 평화공원을 왜 만드나? 평화공원은 부역자들의 공을 기리는 곳?


고양평화공원은 전쟁기에 민간인이 불법으로 집단살해된 현장이 있는 금정굴 일대에 사건 현장과 유해 안치소를 중심으로 평화공원을 조성하여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금정굴 사건 희생자들은 ‘부역자’가 아니라 ‘부역자’라는 판정을 받을 기회조차도 부여받지 못한 채 경찰에 의해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집단살해된 국가폭력, 국가범죄의 희생자들이다.

국가범죄의 희생자들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극진한 위로와 대접을 받아야 한다.

가해 책임이 국가에 있어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게 되므로 그 치유에 더욱 공을 들여야 하거니와, 또 그래야만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고 국가가 진정한 국민의 국가, 인권과 평화를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국가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상징적인 곳에다 전쟁 희생자의 유해를 안치하고, 금정굴 현장을 보존하여 후세의 성찰 장소로 삼으며, 평화교육 시설을 만들고 평화 예술작품 등을 설치한다면 수도권의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될 것이다.

그럴 경우 고양평화공원은 평화도시를 지향하는 고양시의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고양시민의 뜻을 모아 전쟁기에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을 추모, 위령하고 나아가 후세에 평화의 소중함을 성찰하게 하는 평화공원이야말로 과거의 아픈 상흔을 미래의 소중한 자산으로 승화, 발전시키는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쟁점 10. 평화공원에는 수백억 원의 고양시민 혈세가 들어간다?


현재 고양평화공원을 추진하고 있는 부지는 탄현근린공원 부지 13만여 평의 동측 1만여 평(4필지)이다.

탄현마을 뒷산의 마을 공원 조성 예정지 중 금정굴 현장이 있는 곳 일대를 평화공원으로 조성하자는 것이다.

실은 말이 1만여 평이지, 대부분 심한 비탈지여서 평지는 거의 없다.

평탄지가 없음에도 이곳에 평화공원을 조성하려는 것은 이곳에 역사적 사건 현장이 있고, 또 요란한 시설물보다는 산책로 중심의 조용한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평화공원의 성격에 잘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곳 부지는 공원 예정지이므로 시에서 곧 사게 돼 있는 땅을 우선 매입하는 것이고, 계획상의 평화교육관과 현장 보존 시설 등은 경기도에서 별도의 지원 조례를 만들어 지원할 예정이며, 그 밖의 추가시설 경비는 설계안을 토대로 국비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시에서 실시설계를 한 뒤 부지(1필지)를 1차 매입하고, 도에서 기본 시설비(평화교육관, 유해안치 추모관, 현장 보존 시설) 등을 지원하여 1단계 사업을 마치며, 후에 국비 지원을 받아 추가시설(전시관, 강의실, 도서관 등) 등 2단계 사업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최근에 나온 서울대 정근식 교수팀의 ‘고양시 평화공원·평화교육관 설립 타당성 조사’에 따르면, 초기 핵심시설 사업비로 약 88억 원, 발전단계 추가시설 사업비로 약 240억 원을 계상하고 있다.

그리고 1단계 사업비 중 토지 매입비가 약 44억 원이고, 나머지 44억 원이 시설비와 프로그램 예산이다.

그러니까 고양시에서는 1단계 토지매입비 및 부대경비 약 50억 원을 투입하고, 경기도에서 시설비 예산 등을 지원받아 1단계 사업을 마친 뒤, 나중에 국비 지원을 받아 2단계 사업을 추진하면 된다.

2단계 사업의 추진 여부와 시기는 고양시의 평화도시 및 평화산업 추진계획과 연동하여 시행하는 것이 좋다.

‘타당성 조사’에서는 2단계 사업까지 완료하고 시설들을 활성화하여 평화산업으로 발전시킬 경우 연간 150~200억 원의 경제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추정한다.


1단계 사업 완료 후 2단계 사업을 언제,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는 고양시민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과 고양시의 평화도시 및 평화산업 전망, 국비 지원 등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1단계 사업은 전쟁기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후세에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평화를 사랑하는 고양시민의 기본적인 의무다.

1단계 사업비 88억 원 중 고양시비는 약 절반이고 나머지는 경기도에서 지원받을 수 있으며, 고양시비의 대부분은 고양시에서 탄현근린공원 부지로 곧 사들이게 되어 있는 토지 매입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