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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금정굴 사건은?


금정굴을 우리의 아픈 기억의 공간으로 남긴 금정굴 사건은 6.25전쟁 중에 이곳 고양 땅의 착한 백성들이 금정굴로 끌려가 무참하게 떼죽음당한 사건이다.

2007년 6월 26일 국가 차원의 진실규명기구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년 남짓의 조사 끝에 고양금정굴 사건에 대해 이렇게 결론지었다.


“고양금정굴 사건은 고양경찰서장의 지휘아래 1950년 10월 9일부터 31일까지 고양지역과 파주 일부지역 153명 이상의 주민들이 부역혐의자 및 부역혐의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고양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에 의해 금정굴에서 불법적으로 집단총살당한 사건이다.” - 진실화해위 결정문





지금까지 밝혀진 사건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언제 : 1950년 9.28수복 직후 약 한달 동안

• 어디서 : 지금의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당시 고양군 중면 일산리) 뒷산 등성이의 수직굴

• 희생자 : 부역 혐의자와 그 가족들, 개인감정으로 지목된 무고한 사람들 약 200명 (이는 고양경찰서를 거쳐 금정굴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이고, 당시 고양군 전역에서 같은 혐의로 희생된 사람은 1,000여 명으로 추산됨)

• 가해자 : 경찰, 의용경찰대, 치안대, 태극단 (경찰 책임 하에 살해하고 치안대 등은 연행, 호송, 보초 등 지원 역할)

• 어떻게 : 경찰서로 개별 연행하여 심문한 후 여러 차례에 나누어 금정굴로 끌고 가 집단 총살(5-6명 1개 조로 굴 밖에 묶어세운 뒤 총을 쏘아 굴속으로 떨어뜨림)

• 왜 : 인민군에게 부역했거나 부역혐의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적극 부역자는 후퇴하는 인민군을 따라 월북 또는 도주한 후)

• 법적 절차 : 경찰서장 또는 경찰의 즉결처분으로서, 명백한 불법 행위 (나중에 위헌 판결을 받은 당시의 ‘비상사태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에 따르더라도 반드시 재판을 통해 처벌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명백한 불법 집단살해임. 더구나 당시 고양지역은 9.28수복 후 치안이 회복되고 있던 시기로 전투 지역도 아니었음)

• 희생자 유족들의 삶 : ‘빨갱이 가족’이라는 멍에를 씌워 생명 위협, 재산 박탈, 연좌제, 감시(요시찰인), 사회적 냉대와 멸시, 출향, 벙어리 냉가슴

• 책임 : 국가. 개인적으로는 당시 이무영 고양경찰서장, 경기도경찰국장, 내무부 치안국장, 군·검·경 합동수사본부장, 최고 책임은 대통령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법적 절차도 걸치지 않고 불법 처형을 당했을까?

그것도 국가기관의 진두지휘 하에?

전쟁 때는 그래도 되는 걸까?

자세한 내용은 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