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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조금 보강하여 옮깁니다. 시간 순은 아래쪽이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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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굴 유품 보존처리 상황 점검, 노근리 평화공원 답사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시, 유족회, 시민단체 함께요. 아직 매듭이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고양평화공원 문제에 대한 시의 성의 표시라고나 할까요? 여튼 함께 가보니 느끼는 건 비슷하더군요. 전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는 속도에 대한 감각 차가 여전히 문제긴 하지만...
근데 오늘의 핵심은 후줄근해보이는 처음 사진 두 장이었는데, 잘 안 보이죠?

- 2012.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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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쌍굴다리. 멀리 굴벽에 점점이 보이는 것이 총탄자국으로 그날의 참상의 한 자락을 보여준다. 4만 평 노근리 평화공원은 휑뎅그렁하고, 아직도 노근리 평화공원의 상징물은 희생자 위령탑도 아니고 기념관도 아니고 공원 밖의 쌍굴다리다. 아직까지는 거창위령공원에 이어 또 하나의 반면교사다. 존재 그 자체로 평화가 느껴지는 소박하고 아늑한 그런 평화공원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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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주에서 영동 노근리로 가는 버스 안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고양'이라는 춤추는 로고가 아로새겨진 고양시청 관용버스, 처음이던가? 점심에, 낮술 한 잔씩에 탑승자 대부분이 달콤한 오수에 빠져 있군요. 세상이 조금은 달라진 거 맞나요? 금정굴이 전쟁기 부역혐의 학살의 대표지라면 노근리는 미군폭격 학살의 대표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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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존처리 되고 있는 금정굴 피학살자 유품들. 위가 62년 전 군화이고, 아래가 검정고무신이다. 62년의 세월, 발굴 후만 해도 17년의 세월 동안 켜켜이 묻어 있던 흙과 먼지를 떨어내고 거듭나, 세세토록 그날의 일을 증언해줄 것이다. 웬 군화냐고? 당시엔 민간인들도 군에서 흘러나온 군화를 많이 신고 다녔다. 신발은 모두 162켤레가 확인되었고, 여자의 머리칼도 26명의 것으로 잠정 분류되었다. 머리카락, 비녀, 도장, 빗, 금니 등등 다른 수많은 유품들은 나중에...

  • 유품 보존처리는 박선주 교수 책임하에 충북대 박물관과 청주 한국선사문화연구원에서 맡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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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던 62년 전 군화가 말끔한 모습으로 재등장헀습니다. 17년 전 고양 금정굴 학살현장에서 발굴된 금정굴 유품들이 청주 충북대 박물관과 선사문화연구원에서 보존처리되고 있는 햔장입니다. 웬 군화? 당시엔 민간인들도 군에서 흘러나온 군화를 많이 신고 다녔습니다. 튼튼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