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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경제는 무한경쟁을 부추긴다.
무한경쟁은 필연적으로 독점과 불평등을 낳고 무수한 탈락자를 양산한다.
독점은 또한 불공정 경쟁과 정경유착을 낳고,
그 과정에서 불평등과 부정부패가 더욱 심화된다.
이는 자본주의가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안고 있는 피할 수 없는 덫이다.

이윤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자본에게는
인간도 사회도 자연도 모두 부차적인 고려요소일 뿐이니,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그 화려함이 더해갈수록
인간성과 공동체와 자연환경은 점점 황폐해지고,
마침내는 체제의 기반 자체를 갉아먹기에 이른다.

20세기 전반기에 커다란 위기에 직면한 순수한 의미의 자본주의는
그 무서운 독소를 완화하는 두 가지 대안을 현실에 등장시켰다.
하나는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수정자본주의,
달리 말하면 국가가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다.
계속되는 전쟁과 냉전, 그리고 그에 힘입은 기술혁신과 사회주의라는 대안의 존재가
복지국가 모델에 중요한 기반을 제공한다.

1970년대에 이르러 자본주의는 두 번째 대위기를 맞았다.
낮은 생산력의 토대 위에서 자본주의와 별반 다름없는 축적방식을 채용하여
자본주의를 따라가기에 급급하던 현실사회주의에도 그 위기는 똑같이 닥쳤다.
자본주의는 한 걸음 앞선 과학기술혁명의 결실을 재빨리 수용하고
무한경쟁을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끌어들여 위기를 넘기는 데는 일단 성공한다.
반면에, 관료주의에 질식된 현실사회주의 체제는
위기 돌파 메커니즘을 창출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다가 끝내 무너지고 만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최후의 승자’로 남았다.
그렇다면, 이제 싸움은 결판난 것이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바라는 이들은 오로지
자본주의가 쏟아내는 쓰레기나 조금씩 주워담으면서
그 안에서 작은 개선을 꾀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물론, 그런 작은 노력들이 단기적으로는 체제의 폐해와 횡포를 막아
사람들의 삶을 어느 정도 지켜내는 데 기여하리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그와 관계없이 상황은 계속 악화돼갈 수밖에 없다는 데 바로 문제의 핵심이 있다.

더욱이, 자본주의의 새로운 구세주로 떠오른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의 무서운 독소를 완화하고 그 수명을 연장해가기 위해 채택한
복지국가의 이념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피어난 ‘악의 꽃’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전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악의 꽃’이 뿜어내는 독은
예전의 ‘순수한’ 자본주의가 뿜어내던 독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곳곳에서 진행되는 사회보장의 후퇴, 실업의 증대,
급속도로 벌어져가는 빈부 격차와 지역간 격차, 새롭게 포장된 능력주의나 인종주의,
새롭게 대두되는 악마와 마녀군들이 모두 그와 깊은 관련이 있다.

신자유주의란 요컨대, 이제 수명이 다해가는 자본주의가
어떻게든 체제를 연장해보고자 고육지책으로 빼어든 마지막 카드일 뿐이다.
그 속에서는 지금까지 어렵게 쌓아온 인간의 예지와 슬기가 조롱받고,
거칠 것 없는 야만이 자라난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적나라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그런 세태에 재빨리 적응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어떻게 해서든 경쟁에서 이긴 자만이 ‘인간적인’ 아니 ‘초인간적인’ 삶을 누리고,
나머지는 가차없이 버림받는다.
인간이 한데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연대와 협력과 공동체 정신은 오히려 타기의 대상으로 내몰린다.

만일 이 추세가 그대로 이어질 경우, 머지않아 세계는
국가 차원에서든 세계 차원에서든,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사람들로 나누어질 것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아비규환 속에서 절규하는 이는 계속 늘어만 갈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사회와 우리의 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갈 것이고.

이런 체제가 과연 오래갈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긴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도,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가 딛고 선 땅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은 다음과 같은,
당연하고도 평범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쪽에서는 술고기가 썩어나고 한쪽에서는 떼지어 굶어죽는 곳을
과연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넘쳐나는 부를 만인이 고루 향유하면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면서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은 진정 유토피아에 불과할까?

이윤을 위한 생산을 집요하게 추구하면서 온갖 쓰레기를 덧쌓아가는 이 체제를,
사람을 우선하는 체제로 바꾸는 것은 정말 불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