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금정굴사건과 향후 과제, 그리고 위령제의 포인트를 고양시민회원이기도 한 고상만 기자가 잘 정리해놓은 글이 오마이뉴스 메인에 올랐군요. 클릭!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84566&PAGE_CD=ET000&BLCK_NO=1&CMPT_CD=T0000 며칠 전 한겨레신문 박경만 기자가 2012 고양평화예술제/박람회를 소개한 기사입니다. 기자의 절제된 균형감각이 돋보이네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553618.html 장소는 모두 일산신도시 한복판에 있는 일산문화공원(구 미관광장)입니다. 위령제는 10월 2일 오후 3시에 봉행되고요, 2~3일 이틀 동안 다채로운 평화예술제/박람..
다른 홍보물들이 너무 약소한 탓에 행사를 알리는 데 한계가 있어. 행사 내용을 종합 정리해보았습니다. 이만하면 국제행사급!!?? --------------------------------- 평화, 그 다양한 만남 2012 고양평화예술제/박람회 전시마당/체험·놀이마당/오프닝 퍼포먼스/사전무대행사/평화음악회/풍물대동제/평화걷기대회 10. 2. 13:00 ~ 10. 3. 19:30 일산문화공원 (구 미관광장) 주최 : 고양시 주관 : 2012 고양평화예술제/박람회 조직위원회 후원 : 경기도, 고양신문 협찬 : 농협고양유통센터, 이마트, 배다리박물관 외 문의 : 조직위원회 사무국 (고양시민회 031-967-9944) 평화는 인류사회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이자, 전쟁과 폭력, 분단과 대립, 반인권과 반생명을 거부..
내용 조금 보강하여 옮깁니다. 시간 순은 아래쪽이 먼저입니다. ----------------- 금정굴 유품 보존처리 상황 점검, 노근리 평화공원 답사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시, 유족회, 시민단체 함께요. 아직 매듭이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고양평화공원 문제에 대한 시의 성의 표시라고나 할까요? 여튼 함께 가보니 느끼는 건 비슷하더군요. 전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는 속도에 대한 감각 차가 여전히 문제긴 하지만... 근데 오늘의 핵심은 후줄근해보이는 처음 사진 두 장이었는데, 잘 안 보이죠? - 2012. 7. 4. ------------------ 노근리 쌍굴다리. 멀리 굴벽에 점점이 보이는 것이 총탄자국으로 그날의 참상의 한 자락을 보여준다. 4만 평 노근리 평화공원은 휑뎅그렁하고, 아직도 노근리 평화공..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이 있은 지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이 지나도록 그 후속조치에 손을 놓고 있던 이명박 정부에서 전국 합동유해봉안소와 합동위령공간을 추진하고 있다네요. 이제 하나둘 세상을 뜨고 있거나 칠순, 팔순 노인네가 된 유족들이 이역만리 타향을 어떻게 찾아가 어떻게 제사를 지내고 어떻게 성묘를 하라고요. 고양시와 경기도 차원의 금정굴 유해안치 및 고양평화공원 조성과 엇나가는 방침입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를 뿌리지는 말아야 할 텐데... 이래저래 다시 뜻을 모을 때입니다. 전국유족회에서 그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전국 합동유해봉안 및 합동위령공원 조성에 대한 전국유족회의 입장 유해안치 및 위령공원 조성은 유족들의 희망을 우선해야 한다 미흡하나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전쟁기..
쟁점 1. 금정굴 희생자들은 극렬 좌익 또는 적극 부역자? 일각에서는 금정굴 희생자가 ‘극렬 좌익’이나 적극 부역자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 국군에 의해 고양지역이 수복이 되었을 때 인민군 점령하에서 군이나 면 단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던 ‘극렬 좌익’이나 적극 부역자는 이미 월북 또는 피신하고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인민군 점령하의 리 단위 인민위원회 간부들은 형식상 선거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로서 대개 각 리의 주민대표자들이었으며, 이전부터 마을에서 이장이나 그 밖의 마을 일을 보고 있었던 주민들이 많았다. 당시 주민들은 인민위원회 참가 혹은 협력 행위를 좌익 활동이라기보다는 일반 행정 지원활동으로 보았으며, 대부분 묵시적 압력에 의해 하는 수 없이 일을 보게 된..
오는 9월 24일은 16년 만에 금정굴 유해를 고양시에 모셔오는 날입니다 1995년 유족들의 힘으로 발굴한 금정굴 유해는 고양시 등 관계기관들의 매몰찬 외면 속에 고양시를 떠났습니다. 몇 해만 기다리면 될 줄 알았던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무려 16년이 지났습니다. 학살이 있은 지 61년 만에, 금정굴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른 지 18년 만에, 금정굴 유해가 고향에서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고양시를 떠난 지 16년 만에, 2011년 61주기 위령제를 맞아 마침내 금정굴 유해가 고향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아직 영원한 안식처를 찾은 것은 아닙니다. 사나운 마음들에 막혀 아직까지도 양지 바른 곳에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고봉동 소재 납골당 청아공원에 임시 안치됩니다. 유해라도 외지에 떠돌지 않고 고양시로 모..
찌는 듯한 여름, 답답한 날들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시장 붕괴의 여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상전벽해란 말이 무색할 만큼 한때 잘 나가던 공장들이 속속 문을 닫았고, 나라마다 식량자급과 내수충족을 위한 생산을 늘리느라 아우성들이다. 달러화의 폭락이 세계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불러오면서 그렇잖아도 휘청거리던 세계무역에 치명타를 가하더니, 국제사회가 연일 머리를 맞댄 끝에 이제야 겨우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국가간 결제통화로는 이제 달러보다 유로와 위안화가 더 강세다. 핵전쟁의 고비는 겨우 넘겼지만, 지금도 중동과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는 총성이 끊일 날이 없다. 세계의 경찰 행세를 하던 미군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면서 국지전이 더 빈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
1. 들어가며 “내 생전에 이 얘기를 하고 죽을 날이 올까 생각했다.” “가슴 깊이 파묻어 애써 갈무리해둔 이 아픈 상처를 다시 도지게 했으니, 치료비 내놓고 가라.” “세상이 본시 그런 세상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우리 같은 농투성이 인생은 예나 제나 늘 그 모양 그 꼴이지 뭘.” “이 한 많은 인생, 누가 되돌려줘? 누가 해결해준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문제에 한 발짝이라도 들여놓은 사람이라면 귀가 닳도록 들은 말들이다. 절망, 상흔, 통한, 체념, 냉소, 원망이 뼛속 깊은 곳에서 배어나오는 이런 말들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전율도, 분노도,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세상은 으레 그러했고, 또 언젠가는 이런 상태가 역전되어, 아니 교정이라도 되어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번번이 좌절돼..
10. 과거청산은 시대의 명령 한국전쟁전후 100만 민간인학살 문제의 본질은 국가권력이 수많은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죽이고도 그에 대해 반성도 않고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오랜 기간의 진실규명 요구에도 묵살로 일관해왔다는 것이다. 즉, 국가권력의 도덕성의 문제이고, 직무 유기의 문제이며, 국가권력의 존재 의의의 문제이고, 나아가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물을 수밖에 없는 문제다. 국가가 수많은 민간인을 죽이고 또 문제를 묵살함으로써 그들을 다시 버린다면, 수백만 유족들에게, 그리고 현장을 지켜보고 이야기를 들어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국가란 무엇이겠는가? 국가에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막중한 임무는 없을진대, 하물며 국민, 그것도 전투와 무관한 민간인들을 불법적으로 죽이고 또 이를 묵살하는 국가는 과연 ..
7. 민간인학살 진실찾기, 그 의미 요즘 ‘과거청산’ ‘과거사 정리’ ‘과거사 규명’ ‘진실규명’ 등의 말이 혼용되고 있다. 어느 경우나 은폐되고 왜곡된 진실, 그것도 대체로 과거 국가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행위의 진실 규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는 하나, 그 추구하는 목표와 담고 있는 의미는 조금씩 다르다. 가장 많이 쓰이는 ‘과거청산’이라는 말은 ‘범죄자가 손 씻고 새 삶을 산다’는 의미를 짙게 풍기니, 그 주체를 국가,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으로 좁혀보면 ‘국가, 즉 대한민국이 자신이 저지른 이전의 범죄행위를 청산하고 거듭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과거청산’의 포괄적인 의의를 돌아보고 나서, 그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민간인학살 진실찾기의 의미를 새겨보기로 하자. 과거청산의 의의 오늘의 한국사..
6. 진상규명, 그 멀고도 험한 길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은 학살 당시부터 일어났다. 1951년 2월 거창 신원면 일대에서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에 의해 주민 719명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인 그해 3월, 거창 출신 국회의원 신중목이 국회 본회의에서 거창 학살을 폭로했다. 이에 국방장관 신성모는 사실을 부인하고 통비분자 187명이 죽은 것으로 사건을 조작했으나 내무, 법무장관이 사실을 부분 시인하면서 국회에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현지 시찰에 나섰다. 그러나 현지에 내려간 국회와 정부(내무, 법무, 국방) 합동조사단은 가해 군인들의 집요한 방해를 받던 중 당시 경남지역 계엄사 민사부장 김종원이 신성모 국방과 모의하여 짜낸 무장공비 위장 습격 계략에 말려 그만 철수하고 만다. 이후 가해..
5. 학살 이후 - 학살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반백년 이어진 극우반공체제하에서 전쟁 전이든 중이든 후든 학살당한 이들의 대부분은 ‘빨갱이’가 되었고 그 가족들은 ‘빨갱이 가족’이 되었으며, 학살 사실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불순분자’가 되었다. 그야말로 ‘멸균실’ 수준의 순수한 극우반공체제하에서는 중립도 상식도 통할 수 없었고, 민주니 인권이니 평화니 통일이니 하는 것들에도 색안경이 씌워졌다. 대학살의 그늘은 실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짙었다. 학살에 책임있는 사람들 중 다수가 우리 정부와 미국, 그리고 우리 사회의 권력자들이니, 그 정황이 어땠을지 능히 짐작이 갈 것이다. 사람들은 바로 눈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할 이유도 없이 개처럼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유족들은 억울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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