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라는 나라 러시아의 역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러시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세계에 대해 정확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시대가 흐르면서 러시아의 세계가 점점 확대된데다가, 좁은 의미의 러시아와 넓은 의미의 러시아가 두루 혼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슬라브 인 이전의 시대는 일단 접어두고 그 후의 역사만 볼 때, 맨 먼저 '루시의 나라'라고 불린 동슬라브 인의 국가가 있었다. 키예프가 그 중심이었으므로 '키예프 러시아'라고도 한다. 키예프 대공국이 몰락하여 키예프 러시아가 분열한 후 짧은 기간의 블라디미르 대공국 시대에 이어 모스크바 대공국이 전면에 대두했다. 분열 과정에서 동슬라브 인은 언어의 통일성을 잃어버리고 모스크바 중심의 대러시아 인, 키예프 중심의 소러시아(우크라이나) 인, 서쪽의 백러시아..
한 마리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절실히 날기를 원할 때 나비가 될 수 있다. - 트리나 폴러스 노랑 애벌레가 고치를 짓고 있는 애벌레에게 묻는다. “어떻게 나비가 될 수 있나요?” “한 마리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절실히 날기를 원할 때 가능한 일이란다.” “목숨을 버리라는 말씀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 너의 겉모습은 죽어 없어질 테지만 너의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을 거야. 삶에 변화가 온 거지 목숨을 앗긴 건 아니란다. 나비가 되어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그 애벌레들과는 전혀 다르지.” 어린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이라는 그림책의 한 대목이다. 얇은 책자 속에 담긴 그 짧은 이야기는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참으로 넓고도 깊어서, 책..
1. 제국주의와 제1차 세계대전(1900-1918) 1900년을 전후하여 강대국들의 세계 분할이 끝났다. 아시아.아프리카는 물론 태평양의 섬나라들까지도 7-8개 강대국이 나눠 차지하며 거대한 식민 제국들을 형성했다. 선두 주자는 여전히 영국이었지만, 제국주의 열강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영국이 미국에 세계 제일의 공업국 자리를 내 주더니, 곧 독일에까지 따라잡혔다. 일본이 러시아를 물리치며 동아시아의 새끼 호랑이로 나서더니, 이내 우리 나라를 집어삼켰다. 유럽에서는 전통 강대국인 영국.프랑스.러시아(3국 협상)와 신흥 세력인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3국 동맹)간의 갈등이 깊어 갔다. 강대국들에 짓밟힌 식민지와 반식민지에서는 민족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멕시코와 투르크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 인도..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많은 사람들이 20세기는 평화와 번영의 시기가 되리라고 내다보았다. 과학도 충분히 발달했고 발명될 것도 다 발명되었으니, 이제 그 성과를 기반으로 모든 인류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곧 올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20세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과 폭력, 갈등과 대립, 지배와 억압과 저항으로 얼룩진 시대였다. 끝났다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후 점점 더 속도가 붙어 모든 방면의 변화를 부추겼고, 그 성과가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많은 문제를 낳았다. 모든 분야에서 광란의 질주가 벌어지면서, 인류를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의 시대’로 몰고갔다. 바야흐로 세기가 바뀐 지도 이제 어언 10년, 갖가지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는 있지만, 앞으로 100년 뒤..
달걀을 좋아하는 개가 있었다. 어느 날 조개를 달걀로 잘못 알고는 입을 크게 벌려 단번에 삼켜버렸다. 딱딱한 것이 들어가니 배가 몹시 아팠다. 개가 탄식하며 하는 말, “동그란 것은 모두 달걀이라고 생각했으니 이래서 싸지.” -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는 우물 속의 물과 머리 위의 동그란 창이 세상의 전부지만, 하루에 구만 리를 난다는 대붕에게는 온 세상이 손바닥처럼 훤히 보일 것이다. 힘세고 배부른 사자에게 세상은 더할 나위 없는 태평세월이지만, 춥고 배고픈 생쥐에게는 하루하루가 마치 살얼음판을 딛는 느낌일 것이다. 사람도 저마다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똑같은 사안을 두고도 전혀 다른 진단과 처방이 나오고, 어느 진단을 믿느냐, 어느 처방이 자신에게 유리하냐에 따라..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가닥이 잘 잡히지 않을 때면, 의심할 바 없이 분명한 것, 확실한 것부터 하나하나 짚어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다 보면 불확실한 매듭들이 풀리면서 전체가 눈에 들어오곤 한다. 생각해보면, 진리란 멀고 복잡한 데가 아니라, 지극히 단순한 것,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면서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에 있는 경우가 많다. 사물이 복잡하고 어지러워 보이는 것은 대개의 경우,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요소를 놓치거나 무시해버리고는 지엽적인 요소들에 지나치게 깊숙이 빠져 머릿속에서 추상적으로 상황을 정리해보려는 힘겨운 노력의 소산인 경우가 많다. 무리하게 어렵게 정리했으니, 당연히 복잡하고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경우는 비록 다르지만, 다소 과장되어 알려진 게 분명한 재벌총수들의 놀랄 만큼 단..
글쓰고 번역하며 사는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쓰거나 옮긴 책을 읽어주는 일일 것이다. 책을 많이 사 경제적 도움까지 준다면 물론 금상첨화다. 조금만 틈이 났다 하면 딴짓을 하느라 글쓰기와 번역에 전념하진 못했지만, 한 깜냥에 비해서는 나도 아마존과 남양주의 나무를 뭉터기로 베어내는 데 일조해온 글쟁이인 셈이다. 저술가로서는 시원치 않았지만 번역가로서는 과분할 만큼 책이 많이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일일이 들먹이면 책선전하는 것 같아 보일 테니 생략하고, 올 한해 동안 낸 책, 특히 최근 출간서를 중심으로 책을 소개하면서 그 소회를 간단히 읊어보려 한다. 블로그를 열자마자 책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게 솔직한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2년 동안은 경제사정이 ..
자유시장경제는 무한경쟁을 부추긴다. 무한경쟁은 필연적으로 독점과 불평등을 낳고 무수한 탈락자를 양산한다. 독점은 또한 불공정 경쟁과 정경유착을 낳고, 그 과정에서 불평등과 부정부패가 더욱 심화된다. 이는 자본주의가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안고 있는 피할 수 없는 덫이다. 이윤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자본에게는 인간도 사회도 자연도 모두 부차적인 고려요소일 뿐이니,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그 화려함이 더해갈수록 인간성과 공동체와 자연환경은 점점 황폐해지고, 마침내는 체제의 기반 자체를 갉아먹기에 이른다. 20세기 전반기에 커다란 위기에 직면한 순수한 의미의 자본주의는 그 무서운 독소를 완화하는 두 가지 대안을 현실에 등장시켰다. 하나는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수정자본주의, 달리 말하면 국가가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
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 어느 랍비가 하인에게 시장에 가서 뭐든 맛있는 걸 사오라고 시켰다. 하인은 혀를 사왔다. 이틀쯤 지나서 랍비가 같은 하인에게 오늘은 비싸지 않은 걸로 아무거나 사오라고 명했다. 하인은 또 혀를 사왔다. 랍비가 물었다. “전에 내가 너에게 맛있는 걸 사오라고 하자 혀를 사오고, 오늘은 싼 걸로 아무거나 사오라고 했는데 또 혀를 사왔다. 어찌된 일이냐?” 하인이 대답했다. “혀가 좋으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또 나쁘면 그보다 더 나쁜 것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세치 혀는 매일같이 숱한 말들을 쏟아낸다. 개중에는 모두에게 피와 살이 되는 값진 말이 있는가 하면, 아무데도 쓰잘 데 없는 말, 오히려 자신과 남을 해치는 말도 있다. 또, 어둠을 물리치고 진실을 밝혀주는 ‘좋..
우선 생소하다. 그리고 설렌다. 마치 딴세상에 들어선 것처럼. 카테고리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모르겠어서 일단 글쓰기로 들어와 몇자 끼적여본다. 그냥 흰소리를 적느니보다는 앞으로의 불로그 운영 계획과 구상을 간단히 정리해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93년쯤이니 한 16년 됐나보다. 번역을 시작한 것은 그보다도 몇해 전이었다. 그리고 편집쟁이 일을 시작한 것은 1984년부터니, 무려 25년간이나 글을 만지며 살아온 셈이다. 물론 중간에 딴짓도 많이 했다. 굵직한 것만 추려보면, 내가 사는 삶터에서부터 세상을 바꿔보자고 이른바 지역운동에 한동안 목을 매었다. 고양지역의 금정굴사건 진상규명운동에 발을 디딘 연으로, 한동안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의 일선에 서서 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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